노공이산의 요즘 생각 -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은 지배하기 어렵다.
▲ 봉하마을을 방문한 방문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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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봉하마을의 여름도 여느 곳과 다를 바 없었다. 한여름의 대지가 뜨거운 숨을 연신 토해내는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그늘을 찾는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전직 대통령의 귀향 첫날부터 시작된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 가족 단위로 혹은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동네서 단체로 버스타고 마실 오셨다는 어르신들가지 다양한 이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서프라이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요즘 생각을 듣고자 봉하마을을 찾았다. 대통령과 봉하마을 방문객의 여섯차례의 만남 그리고 참여정부에 몸 담았거나 뜻을 함께 했던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의 명쾌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다. '불통'이 아닌 '소통'의 내용을 지면에 옮겨 싣는다. <시사서프라이즈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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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26일. 전직 대통령은 미안했다. 우선 멀리서부터 오시게(?) 한 것이 죄송스러웠고 임시 천막을 쳐놓기는 했지만 뜨거운 햇볕아래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했다. 그나마 시원한 물 한 잔 대접할 수 없는 것이 못내 서운한 눈치다. 그래선지 노 전 대통령은 예정에 없이 마당 아래로 내려섰다. 그리고 일일이 방문객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전직 대통령과 악수라니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방문객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절로 터진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합니다."
민주주의 2.0 그리고 생태농업
퇴임 후 가장 중점을 두었던 일이 민주주의 2.0인데 예정보다 반년이나 지체되었습니다만, 다른 장애사유가 있는 건 아니고 해보니까 그게 매우 복잡합니다. 구조나 시스템이 복잡하고, 좀 더 잘해보자 욕심을 내다보니 오픈이 좀 늦어졌습니다.
그리고 생태농업, 봉화산과 화포천 일대의 생태계, 말하자면 보전과 복원 사업 전체에 대한 일환으로서 하고 있는 사업인데 재임 중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발생해) 이런 모든 일들을 지체되게 하고 있는데, 예상외로 손님들이 좀 많이 오는 것하고, 정부에서 좀보자 하는 일들(기록물에 관한 것) 그런 부분들 때문에 계획들이 조금 늦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봉하마을로 손님들이 찾아오시는 것은 재임중에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뜻밖의 상황인데, 사실 퇴임하면 개인적으로 쉬고도 싶었는데 그것도 조금 차질이 생긴 셈이고, 농사일에도 타이트하게 참여해 노동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깊이 참여하기가 어렵게 됐고, 2.0도 초기에 시스템 개발과정을 주도해가다가 놓쳐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전부 다 지장이 있었던 셈인데, 다행히 여기 농사도 우리 참모들이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하는 거보다 훨씬 많은 몫을 해주고 있고 마을사람들도 협력을 잘하고,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2.0도 내가 놓쳐버리고 못 따라가서 바라만 보고 있던 것을 비서진들과 시스템 개발팀이 잘 해주고 있어요. 물론 보는 사람 따라서 평가가 다르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평가를 쉽게 할 수 있지만 개발과정이나 토론을 함께 하는 사람으로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해를 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기대이상으로 잘하고 있습니다.
▲ 화포천 살리기에 나선 봉하마을.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어려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화포천 정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진보주의는 민주주의에 내재된 가치
민주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을 구별하는데 대해서 사실은 지금까지 그런 구별을 생각해 보지 않았고 그런 구별을 들어도 기준에 대해서 얼른 감이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대체로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구별을 하지도 않고 또 얼른 감을 못 잡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왜 그러냐면 그 둘을 구별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예전의 강연에서도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진보주의라는 것은 민주주의에 내재한 가치다'그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진보주의는 민주주의에) 내재한 가치죠. 민주주의가 가장 획기적인 진보의 역사거든요. 민주주의가 가장 전형적인 진보의 역사이고 그 다음에 이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진보의 이념, 이런 것들도 민주주의의 가치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개혁진영과 진보진영으로 굳이 구분을 하자면)정당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여러 가지 고심을 참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 가운데 세월이 한참 지나고 오늘의 현상을 보면서 "내버려둬라" 그것은 우리가 논의로써 통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논의를 통해서, 토론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그 논의의 과정을 거쳐서 통합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정치에 있어서 정치적 자유의 장이 마련되면 진보적인 정치노선, 보수적인 정치노선이 있게 마련이고, 그 논의 안에서 또 항상 타협적 점진주의 내지 타협주의가 있고, 급진주의 내지 타협주의가 항상 존재하거든요.
그 세력이 좀 커지고 어느 세력이 그때 그때 더 커지냐 하는 것은 역사적인 조건, 말하자면 정치세력의 뿌리죠. 역사적인 조건과 그 시기의 정치적인 상황 그리고 정치세력의 그 시기의 노선 여기에 따라서 세가 결정이 되는데, 그 세의 흐름을 결정하는 힘은 그들 사이에 있지 않고 국민들 사이에 있습니다. 복잡한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서 분열과 통합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아까 말했던 그런 제반조건과 상황을 종합한 가운데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서 움직이게 돼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논의로써 풀 문제가 아니다. 각자 갈 길을 가다보면 그 갈 길 중에는 아마 협력도 있고 통합도 있고 그럴 수 있다고 보구요, 협력도 있고 통합도 있고 분열도 있고 그런 것이 정치의 자연스러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 자유있는 나라서 검찰 장악은 불가능
검찰을 장악했던 정권은 없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이후, 5공, 6공 이후에 검찰을 장악했던 정권은 없습니다. YS정권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검찰을 많이 활용했겠죠. 활용 했는데 결국 검찰권에 의해서 무너졌지 않습니까? 그 다음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말하자면 정권을 도와주던 검찰이 있었겠죠. 일부 검찰은 정권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노력한 세력이 있지만,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정권을 흔들었던 검찰 역시 존재했습니다. 이제 검찰은 하나라고 보면 안 됩니다. 그래서 YS의 손발처럼 YS를 도운 검찰이 있는가 하면, 말년에 와서 YS를 때려잡은 검찰이 공존하고 있는데, 그걸 인정해야 됩니다. 일사불란하게 검찰을 장악한다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한 시대에 있거든요.
언론의 긍정적인 의미에 있어서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부 옛날 생각하는 분들이 날더러 '왜 全, 盧나 YS 만큼이라도 검찰을 장악하지 않았느냐?' 그러는데 그 말대로 실행하려 했으면 일부 검찰과 결탁하는 결과를 낳았을 겁니다. 그러면 일부 정치 검찰과 결탁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검찰을 장악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 점에 대해서 사람들이 참 몰라요. 그래서 어떤 정권이 일부 정치적 성향이 강한 검찰과 결탁하기도 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검찰의 분위기를 끌고 갈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검찰을 장악할 수는 없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결국은 말년에는 검찰 손에 처분을 당했죠. 김대중 대통령 시절도 검찰이 정권의 편은 아니었다는 것, 참여정부 때는 더 상황이 나빠졌다고 봐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일부 검찰과 결탁하고 마는 그런 검찰장악 같은 것은 안하는 것이 좋았던 거죠.
장악이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장악하고, 일부 검찰과 결탁 했을 때, 그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고, 결국은 정치에서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진보도 이루지 못하고, 나도 뒷 날 타살당하는 것이죠. 난 그렇게 상황을 봤기 때문에 별 뜻 없이 검찰은 자기 갈 길 내버려두고, 검찰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도록 최대한 그렇게 관리를 한 것이죠. "당신들할일이나 해라" 그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뒷받침 해 줬습니다. 검찰이 할 일을 하라고, 그러다 과한 일도 있고 내가 봐도 지나친 일도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본은 그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은 원칙대로, 원리대로 한 것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한미 FTA는 개방속도의 문제
우리 보고 진보, 진보라고 하고, 진보하느라 최선을 다했지만, 물론 한나라당하고 비교하면 명확하게 차별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 점은 굉장히 차별성이 있어요. 한나라당과 비교해서 명확한 차별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성격에 있어서, 우리나라 정부의 성격에 있어서, 유럽의 어떤 보수정권 하의 정부, 또는 정책보다 더 보수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그만큼 보수에 기울어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가 너무나 미미하다 그런 뜻이죠. 대통령이 되면 더러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됩니다. 이라크 파병이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하는 일에는 기분 좋아서 하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한미FTA, 개방이냐, 쇄국이냐 이 논쟁은 의미 없는 것이고 개방의 속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거 아닙니까? 나는 개방의 속도에 있어서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 것이지요.
개방을 반대하는 것이 진보라고 하면 진보 개념이 잘못된 겁니다. 만약 진보가 개방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진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고 문제를 삼는 것은 개방의 속도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FTA 반대론자들이 개방의 속도에 관한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만한 속도가 필요하다고 봤다는 것이죠. 즉, 나는 개방적 진보주의자다 이렇게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개방을 속도가 아니고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좋든 그르든 세계 대세를 외면하자는 얘긴데, 옳지 않습니다. 결국 논쟁은 속도 논쟁만 있을 수 있다, 속도 논쟁을 갖고 얘기를 한다면 금방 결론이 납니다.
▲ 봉화산 숲가꾸기 체험 행사에 참석한 노 전 대통령이 가지를 치고 있다.
'중·일 다음 미국' 주장은 현실과 안 맞아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쭉 변화해가고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이것은 약간 도전적인 선택으로서 적정하다, 도전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과 하나는 불가피한 성격의 측면이 있습니다.
불가피한 성격의 측면은, 만약 중국과 FTA를 한다고 하면 언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상황이 온다면 굉장히 충격일 겁니다. 우리가 중국과 FTA를 언제 할 것인가를 전제를 두고, 역산해서 거기에 필요한 만큼의 국내의 구조조정을 해야 되거든요. 준비를 해야 되거든요. 그 준비는 경제의 구조조정이거든요. 사람 쫓아내는 것이 구조조정이 아니고 경제 체질 개선을 해야 되는 것이거든요.
경제의 체질을 중국과의 FTA에 맞추어서 지금부터 체질을 준비해나가야 되는 것인데 그 준비를 아무 충격 없이 준비가 되느냐, 충격 없으면 준비를 안 해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다가 중국하고 FTA를 했을 때 벌어지는 사태가 훨씬 바람직하겠느냐, 그 앞에 그보다 충격이 작은 FTA들을 거치면서 국내의 구조 조정을 강요해 나가면서 중국과의 FTA에 대해 사전 대비를 하고 면역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적절하겠느냐, 그런 점에서 중국과의 FTA를 생각하면 불가피한 것이었고, 우리 경제의 역량과 수준을 봐서는 다소 도전적인 선택으로서 적절하다고 봤습니다.
일부 반대론자들 중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먼저하고 다음에 미국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건 현실적인 조건을 전혀 도외시 한 얘기입니다. 품목 하나하나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거든요. FTA라는 것은 그 경제의 분야와 품목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따져서 예측해 나가야 되는 거거든요. 그 동안의 개방이 있었는데, 개방 반대론자들이 걱정했던 사건은 여러 번의 개방에서 다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가지, IMF와 금융개방, 금융개방과 IMF사태 그것은 상관관계가 있죠.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예견해서 반대하거나 그런 것이 있었던 기억은 없거든요. 상관관계는 한가진데 국내에서 그것을 예견했던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칠레FTA까지 하여튼 그렇게 떠들었던 사태는 다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개혁-실용 논란은 무의미, 현실 존중이 실용
나는 개혁과 실용의 차이를 아직 모릅니다. 현실적인 조건을 존중한다는 것이 실용 아니겠습니까? 근데 어떤 개혁주의자가 현실에 맞지 않는 개혁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개혁주의자도 현실을 무시한 개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개혁과 실용을 구분하고 논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고, 개혁이 추구해야 될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실용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고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 당정분리가 너무 일렀던 것은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는 그거는 내가 당정분리 한 것이 아니고, 이미 다 당정분리가 되어 있었어요. 내가 대통령 당선될 시절에 당정분리가 거의 국민적 합의수준에까지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당헌당규에 당정분리가 되어 있었고, 물론 나도 동의했고, 그러니 존중해야지요. 그걸 존중 안 하면 어땠을까요.
당정분리를 안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구체적으로 뭐가 있었겠습니까? 공천권 행사하겠다, 당직을 내가 임명하겠다, 당헌에 위배되는데 어떻게 내가 할 수 있어요? 당정분리 안 하면 그걸 해야돼요. 당직 임명권을 행사해야 되거든. 근데 당헌상 불가능해요. 공천권 그것도 당헌상 불가능하고, 그 다음에 정무수석 가지고 자꾸 그러는데 그건 총재가 당을 지휘할 때 승지 노릇을 하는 사람이 정무수석인데, 정무수석이 전 분야에 관해서 당정협의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정협의는 장관들이 다 분야별로 하게 돼 있습니다. 그건 정무수석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요, 옛날에 승지 시절에 하던 일이지요. '대통령의 의중이 이거요'하고 은밀히 말 전하러 다니고 침 놓고 다니던 사람이죠. 세상이 바뀌었는데 생각을 안 바꾸니까 자꾸만 정무수석 부활하라고 했던 것이죠. 당정 관계에서 본질의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남북관계, 본질에 충실하게 대응해야
남북 관계는 본질에 충실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본질에 맞게 대응해야지요.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지 않습니까? 분단국가라는 것이 통합이 지상명제이나, 현실 권력은 통합을 위해서 자기 권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양보할 수 없는, 그래서 항상 통합을 지상명제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정쟁의 수단이거든요. 수단으로 되어있는 이 모순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정치적 결단과 국민적 역량이 있어야 되는 거죠.
정치의 속성이라는 것은 저한테 손해나는 것은 안 합니다. 그것을 하는 것은 국민적 압력이죠. 그러면 역사적 결단이고. 이런 모순 관계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통합이라는 것을 제발 정치인들이 무슨 방안 무슨 방안이라며 갖고 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직한, 국민과 역사 앞에 항상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이 국면의 성격은 대화의 국면인데 대결적 사고를 가지고 남북관계를 대하면 안 됩니다. 이게 본질에 관한 문제거든요.
대결적 국면으로 가선 안 되고, 동맹관계와 남북관계를 놓고 무슨 선택적 문제로 생각하는 사고 이런 것들이 본질적인 장애요소라고 한다면, 어떻든 간에 이런 요소 이외에는 외교적 요소, 외교적 속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대화나 협상이랄까. 외교적 행위에 일반 원칙을 다 존중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남북관계에 있어서 통합의 명분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놓고, 본질적 접근에 의지가 없고, 대화의 국면을 말하면서 내내 대결적인 발언들, 행동들만 해왔고, 그렇게 되니까 계속 경쟁 관계, 적대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외교의 일반 원칙조차도 지키지 않는단 말이에요. 쌍방 다 그렇지만 외교의 일반 원칙조차도 지키지 않으니까 문제 아니냐. 기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직분에서 민주주의 가치 수호해야
지금 우리 사회를 요동치게 하는 것은 정치세력의 문제, 어떤 한 사람의 선택의 문제 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국민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한사람 한사람 자기의 직분에서 그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일을 해줘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 보니까 (현 정부에서) 일괄사표 내라니까 줄줄이 일괄사표 내버리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의 수준인 거지요. 그러니까 자유를 지킬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내가 일반 국민이 아니고 권력기관에 있는 공무원, 중요한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국민이지 않습니까? 두려움에 떨고, 눈치 보고, 꼬리 내리고 그게 지금 행동 양식이지 않습니까? 중요한 직책에 있다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이 그렇게 변화해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은 지배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쉽게 무릎을 꿇으니까 그런 것이지요.
사고의 프레임 잡아야 민주주의 수행할 수 있다.
저는 지금 정치행위를 하는 게 없어요. 왜냐하면 정치라는 것은 직업 정치인으로서 편을 갈라서 싸우는 정치의 장에 뛰어 들어야 정치지, 그냥 당사자로서 내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시민으로서 진보가 뭐냐, 보수가 뭐냐 설명하고, 국민들한테 진보의 정책이 무엇이고, 보수의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런, 필요할 때 해설도 해 주고 가끔 얘기하는 것이죠. 그리고 정치적 공방에 가담하는 것은 시민적 권리죠. 현안문제에 대해서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니 편, 내편, 편가름 하는 것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정치와 경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근본적인 사고의 틀을, 사고의 프레임을 제대로 갖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내가 요즘 정치 얘기하고 있는 것은, 현실 정치에 대해선 전혀 얘기 않고 사고의 프레임을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고의 프레임을 제대로 잡아나가야만 민주주의를 수행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사고의 프레임이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이고 딱딱하거든요. 그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설명해 나가는 것이 정치하는 사람이 해야 되는 일이죠. 저는 그런 점에서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시사서프라이즈 <특집호 200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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