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 제 3기 집행위원장 후보 채송화입니다.
네 명의 후보 중 상대적으로 가장 덜 알려진 '채송화'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서 제 소개를 하려 이 글을 시작합니다. 공약이나 3기 집행부의 방향성에 대한 입장은 다른 글로 올리고 있으니, 이 내용은 집행위원장 후보로 나온 채송화라는 사람이 개혁세력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는지를 회원분들께 소개하는 프로필 정도로 가볍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도 콩이고, 대구에서도 콩인...
교과서적인 의미로만 알았던 '참여'라는 단어가, '노무현'이라는 시대정신을 통해 생생한 현실로 제게 다가왔던 2002년 2월 어느날, 저는 지하철 3호선 전철 안에 서 있었습니다. 민주당 국민경선 직전이었지요.
손에는 노사모 피켓을 들고 승객들을 향해 연신 인사를 하며 "안녕하세요? 노사몹니다"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속 마음이야 "노무현입니다" 외치고 싶었지만 후보 이름을 부를수 없다는 선거법 탓에 노사모에서 꼼수를 좀 부린 것이었습니다. "노사모가 뭐요?" 물을 게 뻔하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자연스럽게 답변함으로써 홍보하자는 작전이었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라며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전철 안의 밝디 밝은 조명 아래서 정치 성향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걸려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은 울렁울렁했습니다.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나라당 지지자인 것만 같고 입은 딱 달라붙은 채 말 한 마디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짱을 위해 그 정도도 못하냐고 큰소리 치고 나온 저는 속이 타들어 갔지요. 어찌어찌 몇 마디 겨우 한 것 같기는 한데, 그나마도 쿵쾅거리는 심장박동 소리 탓에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아찔하기만 한 시간이 얼마나, 어떻게 지났는지 다음 역에서 갈아타야 한다며 팔을 잡아끄는 동료 손에 이끌려 전철 밖으로 내려섰습니다.
허둥지둥 전철에서 내려서는 순간 한 마디씩 합니다. "정말 뻔뻔하게 잘하네" "혼자 타고 가면서 해도 되겠어요" 긴장이 풀리며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애써 바로 잡으며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다행이다 얼마나 쫄았는지 눈치채지 못했구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동료들은 다 알면서 격려의 말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상황을 지켜봤는데 모를리가 없겠지요. 언제 한번 물어봐야 겠습니다.
지하철 투어로 뻔뻔함에 입문한 후엔, 서서히 더욱 더 뻔뻔해져 갔습니다. 전철 안에선 왜 그렇게 떨렸는지 이해가 안될만큼 어떤 상황에나, 누구 앞에서나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우산을 길게 말아쥐고 때리는 시늉을 하는 할아버지를 피해가며 조아세 신문을 나눠 주는 일, 길거리에서 행인을 붙잡아 세워 놓곤 희망돼지 채워 달라고 호소하는 일, 법원 앞에서 희망돼지 관련자 기소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일,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뻔뻔함이 아니라 내가 홍보하는 내용에 대한 자신감과 당당함이었던 것이지요.
노사모 활동을 하던 많은 회원이 거쳤던 과정대로 개혁당, 열린우리당 당원, 대의원 활동도 했고 지역 여성위원장이기도 했습니다.
비방을 당해도, 모욕을 당해도, 돌팔매를 맞아도 타협하지 않고 왔습니다.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장에서 느꼈던 전율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기간당원이 직접 선출한 대의원 앞에서 연설하는 순간을 행복이라고 연설하던 유시민, 그 유시민이라는 이름에 투표를 할 수 있는 대의원인 것이 저는 행복했습니다.
열린우리당 대통령후보 예비경선을 통과하던 날의 환희와, 제주에서 사퇴선언을 하던 날의 서러움, 그리고 대구총선 거리유세... 유시민과 함께 호흡해 온 세월이 쌓여 가면서 저는 또 꿈을 꿉니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늘 똑같은 삶과 구질구질하고 뻔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참여'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역사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진보한다는 희망을 노무현을 통해 학습했고, 한발 한발 나아갈 그 길을 '유시민'이라는 버팀목이 동행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11월 22일, U-리그가 열리는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몹시 망설여졌고, 부산에 도착해서는 쑥스럽고 어색해서 되돌아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신듯 반갑고 따뜻하게 환대해주신 부산광장 회원분들과 그 곳에 함께 했던 분들의 배려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지난 2002년 그 겨울을 생각하면서 "채송화! 넌 할수있어"라는 당당한 주문을 저 자신에게 보냈습니다. 어디선가 여러분들로부터 대답의 주문이 함께 들려오는 듯도 했습니다.
"그래, 채송화는 할수있어, 늘 그랬던 것처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