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죽지 않았습니다
/ 방랑객
5월23일 아침, 어제 모임에서 먹은 술로 몽롱해 있는 나에게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사람은 울먹이며 인터넷과 TV에서 노 대통령님이 돌아가셨다고 난리라며 빨리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인터넷과 TV를 켠 후 그 말이 사실인 것을 확인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변고인가?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도 모르고 어제 술을 많이 마셨다니... 참으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황망한 마음에 그곳에서 조문도 하고 무언가 도와주어야만 할 것 같아 당장 봉하로 달려가려다 노 대통령을 너무나 좋아하는 집사람과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에 집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함께 봉하로 향했다.
봉하에 도착하니 6시경, 봉하는 이미 조문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조문객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조문객이 늘어남에 따라 도와줄 것이 없을까 둘러보았으나 조문객으로 자리보전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익일 조문객 텐트 주변 정리 작업을 좀 도와주고 내일은 본격적으로 지원 작업을 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오후 늦게 봉하를 떠났다. 이때 봉하는 뉴스에 나왔듯이 밀려드는 조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상태였다.
부산 벡스코 분향소에서
월요일 아침 준비를 하고 봉하로 출발하려는데 부산시민광장에서 연락이 왔다. 부산시민광장이 부산 벡스코 분향소에서 상주 역할을 맡았는데 상주 역할이 가능한 분들은 많이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연락을 받고 봉하로 가려던 생각을 접고 벡스코로 향했다. 벡스코에 도착하니 입구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란 현수막과 '노무현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라는 부산시민광장의 현수막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1박2일, 2박3일 동안 상주 역할을 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당신의 서거를 애도하며 얼마나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당신의 영면을 슬퍼하는지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조그마한 농촌인 봉하를 찾은 조문객이 100만을 넘었고 전국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의 수가 500만을 넘었다고 한다. 이는 역대 최고 기록이며 다시는 깨어지기 힘들 기록이라고도 한다.
노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하는 분위기에는 부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산시민광장이 상주를 맡은 벡스코 분향소가 한나라당 색채가 강한 부산, 그 중에서도 한나라당 정서가 특히 강한 해운대구에 위치해 있다는 점과 지리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교통이 상당히 불편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평일인데도 3만을 넘어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 중에는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 어린 학생들, 자식들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 조문객들, 연인과 함께 온 예비 커플들, 많은 불자들 그리고 특히 여성들이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
00지역 장애우 대표라는 한 장애우는 방명록에 "몸이 불편한 저희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며 "편히 쉬십시요"라고 기록했고, 또 어떤 분은 "우리같이 없는 사람에게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은 서민대통령이었습니다"라는 뜻의 장문을 남기기도 했다.
휠체어를 타신 장애우 한 분은 분향소에서 향불을 지핀 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많은 여자분들이 '사랑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며 울먹거리도 했다. 또 어떤 이는 분향소가 날아갈 정도의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조중동이 불쌍한 노무현을 죽였다"를 거푸 외치며 언론의 노무현 까대기를 성토하기도 했다.
조문객들의 이러한 분위기는 조문객들이 노 대통령 당신의 따뜻하면서도 소탈한 인간미에 매료되었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건설'이란 당신의 신념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것에 대해 존경하며 자식들에게 노 대통령님을 삶의 모범으로 보이려는 것과 재임 중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복지 정책을 폈던 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노무현은 죽지 않았습니다 - 적어도 우리에게는
영결식이 있었던 29일 새벽 분향소에서 상주 역할을 맡았던 회원 분들의 노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조문행사가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제사 음식을 장만해 제례에 따라 노 대통령 영정에 술을 따라 올리며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영면을 기원하는 절을 올렸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회원 분들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나는 마지막 절을 올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 절을 올리는 순간 내 마음 속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아서... 실은 영정에 한 번도 절을 하지 않았지만...
노 대통령님 서거 당일 봉하에서 노 대통령님이 서거하셨는데 어찌 살면 좋겠는냐는 시민광장 회원 한 분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당신이 나의 삶의 지표요 희망인데 이제 돌아가셨으니 나는 어찌 살면 좋겠느냐며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에 대해 "노 대통령 당신께서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하셨는데 당신의 모습과 신념이 마음 속에 살아있으면 당신이 돌아가셨어도 살아있는 것이요, 살아 계셔도 마음 속에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느냐"며 "정녕 힘들면 방에 당신의 활달한 생전 모습을 걸어놓고 당신의 신념을 생각하면 마음 속에 당신께서 계속 살아계실 것이니 너무 상심치 마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님은 돌아가셨지만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의 신념을 믿고 지지했던 분들에게는 당신의 생전 모습과 신념이 마음 속에 살아있는 한 노 대통령님은 결코 우리의 뇌리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남은 자의 과제
이제 노 대통령님을 존경하고 지지했던 분들에게 남은 것은 당신과 당신의 업적을 바로 알리고 당신의 신념을 실현시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노 대통령님은 생전에 봉하를 사랑했고 봉하가 친환경적이고 살기좋은 농촌으로 거듭나길 바랐으며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해 화포천 정화작업과 친환경 농법인 오리농법을 이용한 벼농사를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봉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봉하마을 주변을 소개하며 볼 것이 많은 곳이니 꼭 둘러보고 가시라고 마을 소개를 아끼지 않았던 분입니다.
이처럼 노 대통령님의 봉하마을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습니다. 노 대통령님을 존경했던 우리들은 당신의 유지인 봉하마을 가꾸기에 더욱 더 신경을 쓰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봉하가 당신의 뜻대로 살기 좋은 마을이 되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민주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또 한가지 봉하마을 바로 알리기를 통해 노 대통령님이 재평가받고 참여정부가 재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노 대통령님의 퇴임 무렵 조중동의 노무현 까대기는 봉하마을에 집중되었습니다. 봉하에 호화 풀장을 갖춘 어마어마한 아방궁이 있다는 둥, 봉하에 노무현이 퇴임을 대비해 450 억원을 투자했다는 둥,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해댔고, 급기야 한나라당에서는 봉하에 1000억원이 투자되었다며 노 대통령이 자신의 퇴임을 대비해 마치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혹세무민을 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정보를 봉하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바로잡아 주는 것이 조중동이 얼마나 엉터리 신문인지를 알리는 길이며 노 대통령을 바로 알릴 수 있는 출발점이며 참여정부의 업적이 재평가받을 수 있는 출발점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홍보 활동을 조금 해보았는데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인지라 이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노 대통령님을 존경하는 남은 자들이 당신의 서거를 애도하는 것을 넘어서 당신의 유지를 받들고 당신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시스템을 갖추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PS.
목부상이란 후유증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다가 이제사 컴퓨터에 앉아 글들을 봅니다. 무언가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늦었지만 글을 올립니다.
저 많은 이들은 도대체 그간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란 생각에 하냥 서글펐습니다.
너무 늦었어요.
왜 이제야 웁니까.
그를 몰라준 당신들이 다 밉습니다.
하며 잠시 고개도 돌렸더랬습니다.
내 이웃들한테 가장 서러웠습니다.
헌데 이젠 그리 묻지 않으렵니다.
대신 다른 질문을 다시 제게 던져봅니다.
아니 무릎 꿇으렵니다.
아니 나부터 설파해 나가렵니다.
더 많은 할 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