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헌의 사람IN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인터뷰
생전 노무현의 입, 천호선이 말한다 - 1부
생전 노무현의 입, 천호선이 말한다 - 2부
생전 노무현의 입, 천호선이 말한다 - 3부
생전 노무현의 입, 천호선이 말한다 - 4부(끝)
천호선 인터뷰 (요약)
지난 10여일 기간이 꿈에서 일어난 일 같다. 실감나지 않는다. 봉하마을 사저에 가면 아직도 (노 대통령이) 서재에 계실 것 같다.
- 검찰 수사
전체적으로 (검찰 수사) 이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의 일환이다. 정권이 바뀐 뒤 노 대통령에 대해 전면적인 탄압이 들어왔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그를 ‘유죄’라고 정해놓고 이를 맞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불법적인 행위였다. 누구라도 불법의 의혹이 있으면 차별 없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형태의 문제가 있었다.
검찰 뿐 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등이 동원돼 대통령 주변과 참여정부 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대통령 주변의 주변 사람까지도 국세청에서 조사를 받고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의혹이 있어서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혹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한 것이다.
매일 박연차 회장의 일방적 진술을 공공연하게 중계하며,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을 선점하려 한 매우 고의적이고 불법한 범죄 행위다. 현 정권의 이해관계와 검찰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공명심, 두 가지가 상승 작용을 해 빚어낸 것이다.
- 임채진 검찰총장의 사퇴
사퇴는 사퇴일 뿐이고 어떤 형태로든 검찰 문화와 수사관행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게 중요하다.
사퇴 자체가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건 적합하지 않지만 검찰의 수사 방식이 과잉 수준을 넘어 불법적이고 부도덕적이었다. 검찰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사퇴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지만 원칙적으로는 검찰의 책임있는 분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검찰이 바로 선다.
-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청와대는 이번 일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진정성이 동반된 사과를 해야 한다. 진정성이 있으면 이미 사과했겠지만 정치기술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앞으로 사과가 있을 지 모르지만 하더라도 진정성이 기반될까 회의감이 든다. 그래도 (사과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국민의 마음을 달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이명박 정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 촛불 집회때 어떤 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었는데 이번에도 서울광장에 차벽이 만들어졌다. 현 집권세력이 이렇게 벽을 쌓아가면 제2의 촛불이 될 수 있다. 이대로 간다면 현 정부 입장에서는 파도로 올 것이 해일로 오게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500만 명이 조문했다는 것은 국민이 한마음이 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문제를 회피하려 하거나 국론분열을 말하는 사람들이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것 아니냐.
- 대통령의 선택
노무현 대통령은 주변에서 활동했던 이들에게까지 굴레가 씌워지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주변인들이 당신 때문에 고통받는 것에 감성적 소년처럼 고통스러워했고 이번 일도 그런 것이 중요한 동기가 되지 않았나 본다. 전에는 회의도 많이 했지만 3일 전쯤에는 회의 소집도 없고 지시도 없었다.
일부에서 노 대통령의 선택이 온몸으로 결백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는데 그 차원을 뛰어 넘었다. 노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 자체가 고통을 준다고 생각해 그 굴레를 벗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짐을 지고 갈테니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의 굴레나 이름을 버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자리를 비켜주셨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진실이 국민 다수에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살아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느낀 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그 뜻을 키워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 조문 저지 논란
그분을 비난하고 모함했다고 보여지는 이들에 대해 지지자들이 흥분한 것으로 안다. 건설적인 비판을 한 사람은 조문을 하게 했다고 한다. 김형오 총리가 왔을 땐 문재인 전 실장이 직접 나가 말리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노 대통령에 대해 건설적 비판을 넘어서 험담과 모함을 일삼던 사람들이 있었다.
노 대통령의 탄핵 때 앞장선 분들 몇몇이 영결식 때 또는 노제 때 제일 앞줄에 서려고 하는 모습을 봤을 때 저희로서는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 장례의 아쉬움
행정적인 도움은 열심히 해줬는데 정치적인 선, 편협한 선을 넘지 못해 아쉽다. 가장 커다란 게 노제였고 두번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 문제였다. 노 대통령과 사이가 막역했던 분이라 굉장히 의미있다고 생각해서 추진했던 것인데 정부가 통 크게 받아줬으면… 그런 부분이 아쉽다.
- 향후 과제
노무현의 꿈을 이뤄야한다는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데,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과연 지금 이런 국민들의 뜻을 담아낼 수 있는 구조와 문화, 가치를 갖고 있는 지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름을 걸고 정치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이라면 피하는 게 도리는 아니라고 본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원칙과 상식을 지키고 개혁하려 하는 ‘제2의 노무현’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노 대통령이 겪었을 좌절과 고통을 겪지 않을 사회를 만드는 게 남은 사람들이 할 일이다.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정치 참여 활성화, 언론과 검찰 개혁이 이뤄지도록 힘써야 한다.
2009.6.3 | 야후! 코리아
(영상으로 다시보기) http://kr.news.yahoo.com/live/?idx=song04
“대통령은 평생 거짓말을 몰랐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목숨을 걸고 당신을 지키려고 싸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시길 빈다”라고 대통령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 5월 23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시신을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봉하마을로 운구하고 있다.
‘노무현의 남자’ ‘좌희정’으로 불리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을 만났다. 그는 2002년 대선 직후 감옥에 가면서 노 대통령을 가장 많이 울린 사람이기도 했다. 봉하마을 빈소를 지키던 그에게 인간 노무현에 대해 물었다.
안희정 인터뷰 (전문)
- 대통령이 떠났다. 심경은 어떤가?
슬퍼야 될 것 같은데 슬픔에 앞서서 분노가 인다. 슬픔과 분노를 국민도 느낄 것이다.
- 대통령이 희정씨라고 불렀나?
‘희정씨’ 이렇게 부르시다가 술 한잔 하셔서 기분 좋으시면 ‘희정이’ 이랬다.
-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왔을 것 같은데 첫인상이 어땠나?
그냥 시골 사람 같았다. 아주 촌스러웠다. 정말 촌스러웠다. 정말 시골 동네 가면 볼 수 있는. 정신적으로는 늘 스승 같고 아버님 같았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표현하기 참 어렵다. 시골 아저씨였다. 딱 느낌이. 여느 정치인에게 볼 수 없었던 솔직한 인간다움을 보았다.
- 시골 아저씨와 인생에서 한 배를 타겠다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그분이 가지고 있는 정치 노선과 개혁 이런 것들도 참 좋았다. 그것은 논리적 틀이었다. 1988년 12월 감옥에서 나와 통일민주당 의원의 아르바이트 비서관을 했다. 잘나가는 의원이었다. 그 방에서 근무를 하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대학교·고등학교 동기들이 와서 밥 사고 용돈도 주었다. 그런데 그분이 1990년 3당 야합을 해버렸다. 그때 노 대통령은 안 따라간 국회의원, 나는 안 따라간 당직자로 ‘꼬마 민주당’을 만들었다.
1994년 노무현 대통령이랑 연구소를 하는데 1년이 다 가도록 밥 한 끼 사주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아! 한국 사회가 이런 거구나. 그것이 나를 굉장히 놀라게 했다. 전태일 형제를 잃으면서 한국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있는 줄 알았는데, 힘없는 사람 편에 서면 후원자도 밥 사는 사람도 없었다. 거기에 서 있는 노무현 대통령 옆에 서 있어야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일했다.
- 어렵고 힘든 길이었다.
대통령 모시면서 명함을 참 많이 갖게 되었다. 지방자치연구소 사무국장, 선거 컨설팅 회사 사장, 선거 홍보기획사 사장…. 보험사 지점 명함도 있었다.
- 노 대통령이 선거에 계속 떨어지니까 그런 명함을 갖게 된 것인가?
당선되고도 계속 팠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편들고 없는 사람 편드는, 그것도 적당히 편드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없는 사람 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후원금 안 들어온다. 후원자도 안 생긴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팠다.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명함은 생수회사 ‘장수천’ 사장이었다.
- 돈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당의 부총재나 리더라면 지구당에 돈을 내려 보내줘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해줄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구당 위원들이 “변호사님이 보증 좀 서주십시오”라고 하면 덜컥덜컥 서주셨다. 돈을 떼이다 못해 발목까지 잡혀버린 게 장수천이다. 노 대통령이 1996년 총선에서 떨어졌는데 달랑 남아 있는 아파트 한 채에 압류가 들어왔다.
1998년 보궐선거에서 6년 만에 국회의원이 되셨는데 대통령의 고민을 해결해드리는 것이 장수천을 맡는 일이라고 생각해, 내가 나서서 그 일을 해보겠다 해서 생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업인 모임에 가면 “나도 기업 좀 했어요” 이렇게 얘기한다.
▲ 2008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안희정 최고위원(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 궁핍한 생활, 가난한 정치였다. 돈 없이 정치하는 게 어떤 것인가?
사모님(권양숙 여사)이 늘 그런 것 때문에 어려워하셨다. 대통령이 대전에서 판사를 끝내고 1978년인가, 변호사 개업을 하셨다. 2~3년은 부산에서 굉장히 잘나가는 조세 전문 변호사였는데 갑자기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을 만나서 데모하고 다니면서 사모님한테는 그야말로 ‘고생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있던 집 한 채마저 생수 사업한다고 보증을 서서 다 떼먹혔으니 사모님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드셨을 것이다.
- 노 대통령과 정치를 하면서 언제 가장 기뻤나?
2002년 대선 후보 경선할 때 광주에서 노 후보가 이겼을 때.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와,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서 대통령 취임식에 갔을 때가 가장 기뻤던 날이다.
- 대선 승리를 함께 지켜보았다.
여의도에 있는 한 호텔방이었다. 그때 대통령은 “나는 잘란다. 너희가 봐라” 하고는 방에 들어가서 주무셨다. 우리만 응접실에 남아서 개표 방송을 봤다. 당선 직후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 당선되자마자 대선자금 문제로 감옥에 갔다.
2003년 4월과 6월 두 번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그런데 2003년 12월에 공개 소환당했을 때에는 구속을 면하기 어렵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소환 전날에 전화를 드렸다. 걱정하실 것 같아서.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때 참 아무 말씀도 못하고 “알았네. 알았네”라는 소리만 하셨다….
- 감옥에 다녀와 만났을 때 대통령께서 뭐라 하던가? 많이 울었다고 들었다.
아니다. 제 앞에서는 잘 안 울었다. 경상도 사람이다. 자기 감정을 얘기 잘 못하신다. 국무회의 때나 청와대 보좌진 회의 때는 제 얘기를 하면서 “희정씨 문제는 내 문제인데” 이러면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나가서 기자회견 하겠다는 것을 청와대 보좌진이 말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 노 대통령은 참 솔직한 사람이었다.
2002년 대선 때 대선 후보 토론을 하는데 이회창 후보가 먼저 하고 그 다음 날이 노무현 후보 차례였다. 옥탑방을 물어봤는데 이회창 후보가 “옥탑방이 뭐죠”라고 되묻는 바람에 귀족 후보로 엄청나게 공격당했다. 다음 날 노무현 후보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때 노무현 후보가 자기도 모른다고 대답을 했다.
내가 놀라서 “아니 서민 후보라며 그걸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내가 어제 몰랐다는 사실을 건호가 알고 있어서. 그런데 다음 날 내가 아는 척을 하면 그거 거짓말 아니냐. 그래서 나도 모른다고 대답했다”라고 하시더라. 그런 분이다.
- 대통령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최측근조차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이야기했다.
유시민 전 장관이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한 것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동일한 구조에서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렇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정부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여론이 안 좋다. 차기 정권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실패한 정부가 되는 건 아니다.
- 말을 좀 아끼셨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그 얘기는 더 솔직해지지 말라는 충고와 똑같다. 남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불편한 진실 앞에 그걸 좀 적당히 가장하고 예의와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적절하게 거짓말하면서 살 기회를 사람들은 원했을지도 모른다.
역대 대통령 어떤 분들의 어록과 녹화 테이프와 비교해보라. 노무현 대통령이 무슨 품격 없는 말을 하고 가벼운 분이신지. 그분을 공격했던 우리 사회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편한 진실 앞에 그분이 솔직했기 때문에 그렇다.
-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고 많이 놀랐을 것 같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내려오면서 슬픔을 떠나 정말로 화가 났다. 사람 하나 이렇게 잡는구나.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누가? 사람들은 다 검찰이라고 이야기한다. 검찰이 잘못한 거 맞다. 그렇지만 검찰은 행동대원에 불과하다. 핵심에는 청와대와 언론 권력이 있다.
- 영정을 들고 운구했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서울에서 내려와 부산대 병원에 가서 운구했다. 저 마을회관에 운구를 마쳤을 때까지도 아무런 느낌을 못 가졌다. 수많은 분들이 와서 통곡하고 슬퍼하고. 제 손을 잡았다. 평범한 아주머니, 아저씨가 대성통곡할 때 그때 참 고통스러웠다. 그분의 죽음이 실감났다.
- 대통령이 말년에 많이 외로웠던 거 같다.
대통령 자신으로 인해 자기의 일가, 관계자들이 모두 다치지 않았나. 강금원 회장부터 이광재 의원, 이강철 수석, 정상문 비서관…. 이분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괴롭힘을 당했다.
- 마지막 만났을 때 대통령은 어떤 얘기를 했나?
지난 4월 30일 검찰에 소환되던 날이었다. “면목이 없네. 자네들한테.” 그래서 제가 그랬다. “무슨 면목이 없습니까. 대통령께서 대통령 권력을 가지고 무슨 부정을 저질렀습니까? 비리를 저질렀습니까. 대통령께서는 권력을, 권력형 부정비리를 저지른 것이 없습니다. 있다면 자기 부모로부터 수백억, 수십억씩 물려받거나 아니면 자기가 열심히 돈 벌어서 그 재산 가지고 정치를 못한 죄밖에 없는 겁니다.”
오랜 후원자한테 자기 가사일을 도움받은 것이다. 법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국민 앞에서 면목이 없다고 사과했는데 그 사과한 대통령의 말을 또 뒤집기 위해서 공격을 하고, 그것이 거듭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생살을 오려내는 압박이 있었다. 한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공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과 함께해온 가치, 시대정신 자체가 역사에 수장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가치를 인격적으로 모욕하면서 역사의 바다에 수장하려는 그 순간에 대통령은 바위에서 떨어져서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2009.6.1 | ⓒ 시사인(http://www.sisain.co.kr) 봉하마을·주진우 기자
(기사보기)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