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자료를 정리하다 위 사진이 우연히 눈에 밟혔다.
작년 시민광장 단합대회의 한 장면,
당시 무도한 공권력 앞에 촛불이 다 죽어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복원할 수 있는, 하기를 원하는 세상이 있었기에 즐거웠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말 그대로 '사람사는세상'을 원했다. 만나면 반갑고 부르면 즐겁고 악수하면 친구가 되는, 갈 길은 뚜렷했다. 우린 그 때 절망스러웠지만 갈 길이 있기에 즐거웠다.
내가 절망적인 것은 따로 있다. 어차피 역사의 미래, 진보를 이루기 위한 이 싸움은 노통의 당선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일찍이 깨달았다. 알았으나 절망적인 것은 우리가 마주한 싸움의 당사자가 여전히 30년전 박정희란 점이다. 그를 끝없이 추종하는 유권자들이 절대 상수 35%를 유지하는 한 우리의 싸움은 늘 이렇게 저렇게 밀리고 치일 수 밖에 없다. 언젠가 다시 통합이란 미명으로 우리가 가진걸 다 내어주고 기어 들어가도 어차피 그것이 우리의 운명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렁이가 용트림한다는 비웃음이 안들려도 들린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것인가.
빛나던 뉴밀레니엄의 약속을 비웃듯 다시 도래한 지금의 '선거 파시즘'은 이에 적극 협력하는 다수의 군중 없이 이루어 질 수 없었다. '탐욕'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선거'라는 수단으로 권력자와 유권자가 타협한 명백한 '협잡'이었다. 하여 나는 조금 더 절망하겠다. 옆집에서 6명이 불타 죽어도, 권력자가 친지에게 국부의 상징인 기업을 선심 쓰듯 선물을 줘도, 국민과의 약속을 이잡듯 뒤집어도 흔들리지 않는 이 '협잡'에 나는 더 깊이 절망하겠다.
희망은 여기에 있다. 절망할 이유가 없는 이에게 희망은 무의미하다. 절망은 금세지만 희망은 담대하다고 믿기에 그 희망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유시민, 작년 6월 그는 대구의 한 체육 행사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약속했다.
전직 각료가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촛불을 든다거나 옹호하는 것은 어찌보면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행위다. 그러나 만약 이명박 정부의 촛불에 대한 탄압이 정부의 관리나 방어 차원을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수준에 달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
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도 우리처럼 이 정권의 무지막지한 행동 반경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우리는 그렇게 그렇게 밀리다 노짱이 부엉이 바위 위에 서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시시각각 돌아가는 한국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사람사는세상'을 복원하자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좀 살자는 것. 꼭 유시민이 아니어도 좋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면 온 몸으로 도우리라. 그러나 그 밖에 없다. 그 분 스스로 그렇게 믿지 않는다해도 진정 그렇다. "유시민님 제발 도와주시오. 저희도 돕겠습니다" 이 절절한 한마디를 그에게 건네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세우기에 미안해서 차마 미안해서 그럴 수 없었다.
사진 한장에 많은 생각을 담는다. 지난 봉하마을에 갔을 때 노짱의 무덤 앞에서 기도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님 유시민은 우리가 잘돌볼테니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부엉이 바위를 바라봤다. "부디 대한민국의 신이 국민과 역사를 보우하사 유시민을 지켜달라고. 우리를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희망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