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07. 29 목요일
파토
지난 28일, SBS (이하 씨방새) 뉴스가 여성들의 성폭행 살해 사건을 다루면서 여성들의 미니스커트를 자료화면으로 내보냈다. 마치 미니스커트가 성폭행 살해 범죄의 원인인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가는 것 같아 본 우원, 오랜만에 한 마디 해야겠다.
이거 동영상 아니니 플레이 버튼 누르지는 마라..
남자가 여자에 대해 가지는 심리는 복잡미묘하다. 천사 혹은 여동생 같은 순수함에 대한 동경을 가지면서도 섹시함에 환장하고 야한 여자에 홀딱 반하기도 한다. 그래서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가 되는 여자가 최고라는 말이 아직도 종종 회자되는 거다.
남자들의 이런 이중적인 관점은 어느 정도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건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란 존재의 의미가 무척 가변적이기 때문이다(여자한테도 남자가 그럴진 모르지만 이 글은 기본적으로 남자들 읽으라고 쓰는 글이니 넘어가자). 가까운 관계 속에서만 보더라도 어머니로서의 여자와 연인이나 아내로서의 여자, 딸로서의 여자는 관계의 기본 바탕에서 성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른 존재들이다. 동료나 친구로서의 여자, 타인으로서의 여자 등등은 말할 것도 없다.
‘정상적인’ 남자들은 이 각각의 여자를 구분하고 그 속에서 큰 혼란을 느끼거나 경계를 허무는 행동(때로 강제와 폭력이 수반되는)을 마구 해대진 않는다. 허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걸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여자는 그 사회적 지위나 관계 등과 무관하게, 인간 이전에 그저 성교의 대상으로서의 여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원인이 남성호르몬 과다분비던 열등감이던 억압이던 트라우마던 간에 말이다.
대부분의 성폭행 사건은 이런 류의 사람들(혹은 이런 상태에 순간적으로라도 휩쓸려 버리는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고, 특히 그것이 불특정한 길거리의 타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다른 사람의 인격과 정체성과 성적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고 힘과 강제로 유린하는 행위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며, 여자를 인간 이전에 암컷으로만 보고 스스로도 수컷으로만 살려고 하는 자는 문명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
암튼 씨방새 뉴스의 뉘앙스는 미니스커트나 야한 복장이 수컷들의 어쩔수 없는 본능을 촉발해 여자 스스로 범죄를 이끌어낸다는 건데, 남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참 뻔뻔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유사이래 인간 수컷들이 해온 짓거리를 좀 생각해 보자. 조선시대 장옷을 입고 얼굴도 안 내놓는 여자들이나 히잡을 입은 무슬림들, 수녀, 애기 업은 아줌마 등 야한 것과는 도무지 관계없는 여자들도 기회만 있으면 겁탈해온게 우리 수컷들이다. 아니냐…?
요는, 성폭행을 일삼는 일부 남자들은 노출을 하던 안 하던 어떤 상황에서든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본다는 거다. 그들의 눈엔 장옷이던 히잡이던 수녀복이던 비구니복이던 임부복이던 다 똑같이 여자를 상징하는 기호일 뿐이고, 성욕을 끌어내는 근거가 된다.
일부 남자들의 이런 비뚤어진 속성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에는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남자의 정신을 현혹시키고 이성을 잃게 하는 요물로 규정되었고, 따라서 집구석에 꼭꼭 숨어 살도록 강요받았던 거다. 결국 여자의 옷차림을 갖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논의는 필연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흘러오게 되고, 성폭행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여자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그렇지 않았을때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근본적으로는 여자 책임이라는 남성주의적 결론으로 향하게 된다.
이게 옳은 생각이냐.
게다가 성폭행 살해 사건의 피해자들이 특별히 노출이 많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믿을만한 통계도 작성된 바 없다는 사실에서, 미니스커트 등 여성의 ‘가벼운 복장’(노출이 많다고 반드시 야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고정관념도 울나라에선 심하다. 노출에 ‘관대한’ 구미에서는 그저 가볍고 시원한 복장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식의 근거없는 사고방식을 공중파 뉴스에서 퍼뜨리는 것은 문제가 심각한 거다.
…위 팻말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특히 남성 열분들, 거부감이 오시는가?
그렇담 차분하게 함 생각해 보자.
여자들을 상대로 밤길 함부로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는 일반화 되어있다. 험한 세상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실은 잘못된 소리다. 알다시피 성폭행의 가해자는 99.9%가 남자다. 그런데도 잠재적 가해자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로이 밤길을 활보해도 되고, 피해자인 여성은 되려 숨어 다녀야 한다는 논리가 마냥 정당한 걸까?
오해하지 말자. 당장의 현실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고, 남자 전체가 잠재적 성폭행범으로 낙인 찍혀야 한다는 소리도 아니다. 그러나 여자 입장에서는 으슥한 길에서 낯선 남자가, 그게 우원이던 열분들 중 하나던, 어떻게 돌변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항상 살아가야 한다는 것, 우리 남자들은 절대로 알지 못한다.
얼마 전 메리메리님의 글에도 있었지만 인류역사의 전 기간 동안 여자들은 강간살해의 두려움 속에서 지금껏 버텨왔다. 우리가 법과 제도를 만들고 인식을 진보시키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이유는 그런 공포와 함께 살아야 하는 터무니없는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서인 거지, 그게 바뀔 수 없는 본질인양 용인하면서 잘못된 인습적 사고를 재생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성폭행을 유도하는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는 것도 모자라 멀쩡한 길거리의 여자들 허벅지나 도촬해서 전국민이 보는 공중파로 퍼뜨려 버리는 짓거리,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여자 하반신 찍어 이너넷에 올리는 것과 무슨 질적인 차이가 있는 건지 우원은 알 수 없다는 거다.
...얼마 전 중국에 살던 친구한테서 이런 이야기들 들었다. 북경에서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자들이 많은데, 와중에 팬티가 심심찮게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한번은 이 친구가 아는 중국인 남자한테, 중국 여자들은 왜 그렇게 팬티를 보여가며 자전거를 타냐고, 창피하지도 않냐고 물었단다.
그때 이 사람의 대답은 이랬다.
그걸 왜 쳐다보고 있는데…? 니가 눈을 피해야지.
이게 북경 남자들의 일반적인 정서인지 아닌지 우원은 모른다. 그러나 그 질문을 한 후배는 물론, 우원조차도 이런 답은 상상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리고 좀만 생각해 보면, 일견 황당하게 들리는 이 대답이 싫은 옳다는 사실이다.
그 여자들은 그저 편하게, 원하든 대로 입고 일상생활을 할 뿐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치마 속이 언뜻언뜻 보인다고 해서 굳이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무슨 성적인 의미나 기회마저 찾아보려는 것...
그건 바로 (우리) 남자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