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화 되지 않는 조직화는 과연 불가능한 이상일까.
2002년 3월 '16부작 주말 명작 드라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노사모도 훌쩍 10만여명에 다다르게 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이다. 문제는 ... 본선까지 남은 기간이 너무 길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때까지 도무지 뭐하고 지내지. 만약 경선이 10월쯤이었으면 바로 본선 준비하며 얼마나 깔끔했을까. 십만여명의 인원이 슬기롭고 효율적으로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어떤 이가 동네 소년소녀가장 돕기 운동을 하자고 했다. 모두들 좋다며 따라 나섰다. 딱 한번으로 그쳤지만. 다른 이가 우리끼리 당을 만들자고(개혁당 말고 홍건당 종류 비슷한..) 제안했다. 일부 따라 나섰다. 또 다른 이가 노사모 전용 호프집을 만들자고 제안해 일부 따라 나섰다. 곧 셔터 내렸지만. 무슨 짓?을 벌여도 본선까지 남은 시간은 지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총회여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퇴근 후 바로 달려 왔기에 배가 고팠다. 이 때 두껍한 안경을 낀 한 사내가 흰 종이 뭉치를 꺼내 사람들에게 돌렸다. 뭔가? 지역 규약이란다. 남들이 열심히 보는 척 하길래 덩달아 보는 척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회사에서 엑셀 쉬트 보는 것만도 눈깔 빠지겠는데 이게 뭐야...)
그 사내는 진지한 표정으로 규약 제정의 변을 아주 장황하게 늘어 놓았다. 다른 이가 손 들고 일어나 아우 건설적인 제안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그가 생각하는 규약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앞선 이 못지 않게 장황한 일설을 날렸다. 또 다른 이가 손 들고 일어나 뭐라 뭐라~~~~~. 아~~~~~ 배고팠다. 이게 왠 날벼락인가. 허기는 괜찮은데 지겨운걸 못참겠더라. 손 들었다. "밥 좀 먹지요." 분위기가 화악 좋아졌다. 밥 먹고 술 한잔 때릴 무렵 앞서 발언한 이들이 다시 규약에 대해 토론하자고 했다.
다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처음 오신 분들은 이게 뭔가 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분위기. 몇몇의 발언자들은 자기 이야기에 도취되고 고무되어 점점 발언이 길어졌다. 작은 목소리로 옆 자리에 "형. 저 분 뭐하는 분인가요?" "응~ 법대 시간강사라던데" (자기 일기장에나 쓸 이야기를 왜 떠들까).... "그럼 저 분은 누구요?" "글쎄 민노당에서 왔다고 하더라만" (어쩐지 마이크병이 좀 있네)
처음에 했던 말에 말이 말의 꼬리를 물고 자정이 다 되도록 그 짓을 반복했다. 내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그 양반들 참 배려가 없다 싶었다. 사람들도 오래 참은 듯 씩씩거리는 분위기. 사회를 보던 분이 갑자기 나를 지목하며 "영민한 솔트씨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오래 참은 한마디를 질렀다. "형님들. 어차피 11월이 되면 할 일 쌓입니다. 우리 흰소리 그만 하고 그냥 술 먹고 놉시다. 그게 남습니다. "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그 후로 규약스런 이야기는 다시 없었다. 대선 때 우리 지역이 가장 열심히 또 잘 하지 않았나 자부한다.
노사모가 안은 그 긴 남은 시간을 내 나름 이렇게 정의했다. 무엇을 잘하기 보다 무엇을 그르치지 말자고. 시간이 남는 거대 조직은 대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기 십상이다. 우리에게 총칙 1조 '노사모는 노무현을 위한 조직'이란 것 외에 다른 규약 따위가 뭐 필요했을까.
시민광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노사모의 그 9개월도 그렇게 길고 길었는데 벌써 4년째다. 앞으로도 2년이다. 끔찍하지만 7년이 될 수도 있겠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참 별의 별 일이 다 있었다. 입에 담기에 차마 쪽 팔린 해괴한 일도 있었다. 이쯤에서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겠다. "시민광장이 과연 오직 유시민만을 위한 조직인가요. 토론합시다"
내게 시민광장은 불가근 불가원이다. 너무 가까이 하여 상처받지 않을 것이고 멀리 하여 차갑게 외면하는 인생을 살지 않겠다. 목적을 이룰 때까지 다 좋은게 좋은거다. 유하다. 허나 한가지 이 지점,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제 1조 '유시민을 위한 시민광장'이 아닌 '시민광장을 위한 유시민' 또는 '시민광장을 위한 시민광장' 도모하는 자들. 하여 유시민을 빙자해 자신들의 사적 편익을 도모하는 비열한 인간들에 대해서는 눈 감지 않겠다. 그들과는 소통을 거부한다.(본래 그렇지만 이 정권 들어 이 단어가 너무 싫어졌다. 모르거나 불리하면 대략 소통이란 단어부터 들이댄다)
진정한 소통이란? 방법에 대한 의견은 달라도 최소한 공유하는 목적은 같아야 한다. 애초 목적이 다르면 소통은 어렵다. 더구나 목적이 저렇게 개같은데야... 토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