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재에 대한 금기
영국 태생의 동물 전공학 박사인 매트 리들리 가 쓴 이타적 유전자를 읽다가 맘에 드는 부분이 있어서 발췌하여 소개 하고자합니다. 회원님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적 소유권은 환경 보존과 동지적 관계인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정부의 통제는 환경 보존의 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결론은 환경 보호주의자들을 화나게 할 것이다.환경 재해는 사적 소유권과 탐욕으로 얼룩진 서구적 전통의 탓이므로 정부의 개입이 해결책이라는 것이 그들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같은 생각을 갖는 이유는 아주 단순한 데 있다. 공동 소유의 비극을 막기 위해 사적 소유나 소집단의 공동 소유를 도입하자는 것은 논리적으로 올바른 결론이지만, 본능적으로는 그렇지가 않다.
인간에게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더 명료하게 표명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잔존하고 있는 뿌리 깊은 인간 본성, 즉 모든 형태의 축재에 저항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축재는 금기이며, 분배는 미덕이다.
에스키모 사회에서는 마지막 담배 한 개비라고 해도 나눠 피우지 않으면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사실을 털어놓아야 한다. 여러 명의 상속자에게 유산을 나눠주도록 규정한 나폴레옹 장전이나 힌두 법은 이 같은 전통의 일부이다.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 피에르조제프 프루동은 소유는 도둑질 이다. 라고 말했다. 인류는 강박적이라고 할 정도로 평등주의에 사로 잡혀 있으며 이 경향은 수렵 채집 사회에서 특히 강했다. 인류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부족 사회인들은 선물을 받으면 그것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선물인지 모욕을 주고, 다른 사람이 짐승을 잡아오면 그것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헐뜯는 습성이 강하다. 엘리자베스 캐시던은 쿵 족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의 성과물을 별것 아니라고 깎아내리지 않으면 곧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그것을 깎아 내린다. 그리고 그가 호의를 베풀지 않으면 쉴 새 없이 선물을 졸라대고 독촉하는 방식으로 분배의 규칙은 고양 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두드러지는 것이 허락 되지 않는다. 평등이 알파이
자 오메가이다.
침팬지 사회나 인간사회의 연합에서 지나치게 강한 개체의 야심을 길들이는 습성이 드러나는 데서 그것을 확인 할 수 있다.이것은 축재에 대한 강한 혐오감에서 다시 확인 된다.그러나 정착적이며 안정적인 생활 방식이 등장하게 되면, 한 강력한 개인이 나눠주기라는 사회 보험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신의 소유권에 의존할 수 있게 되므로 분배의 강제는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캐시던은 평등주의적인 쿵 족을 계층 서열적인 가나 족과 비교하고 있는데, 가나 족은 일 년 내내 야생 멜론 밭에 달라붙어 생활하며 그 열매를 축적한다.
정주(定住) 사회에 축재에 대한 금기가 남아 있는 예는 드물지만, 간혹 사례가 있기는 하다. 뉴기니 근처의 마누스 섬 앞바다에는 3킬로미터쯤 길이에 180미터 정도의 폭을 가진 작은 모래섬이 있는데, 섬은 작지만 북쪽으로 18킬로미터쯤 산호초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 섬의 이름은 이 섬에 살고 있는 부족의 호칭을 따 폰 암이라고 불린다. 1981년 폰 암 족의 숫자는 500명 이었으며 아직까지 300명쯤이 살고 있다. 코코넛을 따고 돼지 몇 마리를 키우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주된 활동이자 식량 공급원은 산호초 지대에서 하는 어업이다. 어업에는 작살총과 그물이 사용된다. 산호초는 여러 개의 어업 권역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각 권역은 가부장적인 씨족 집단들에 하나씩 소속되어 있다.카누와 그물은 그것을 제작한 개인의 개인 소유물이다. 그러나 그물 소유주가 그물을 사용해 고기를 잡으려면 보조 선원을 채용해야 한다. 하루의 고기잡이가 끝나면 잡은 고기의 분배는 다음과 같이 한다. 즉 선원 각자에게 한 배당씩, 어업권 소유주에게 한 배당,카누 소유주에게 한 배당,그물 소유주에게 한 배당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한 배당 이상을 갖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업권과 카누와 그물의 소유자가 동일인이라면 그는 한 배당 밖에 받지 못한다.이것이 규칙이며 누구나 이 규칙을 따른다. 어획량이 아주 많을 경우에만 소유주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많은 몫을 차지한다. 어획량이 너무 적을 때에는 소유주가 제 몫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보다 더 평등적인 사회는 상상하기 힘들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에 따라 분배함으로써 그들은 자산 소유자의 부를 직접 분산시킨다. 때문에 생산 수단의 집중은 강력하게 억제된다. 씨족의 규모가 클수록 노동력은 많고(돌아오는 것이 있다) 자본력은 적다(돌아오는 것이 없다). 나폴레옹 장전의 상속법처럼 폰암의 관습은 공동소유를 권장하고 개인 소유를 억제한다. 이것은 일종의 축재에 대한 금기로 보인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이유에서 그물과 카누를 제작하겠는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폰암족은 자신들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좀더 집요하게 질문하자 그들은 소유주가 으레 더 많은 배당을 받는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더 파고들자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소유주에게는 무형의 보답,즉 그가 속한 씨족 구성원들의 존경이 돌아간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소유의 동기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었다.
폰암족의 이야기는 교훈적이다. 부나 재산의 사적 소유는 존경과 지위를 보장해 주지만 동시에 그것은 질시와 배척을 초래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적 소유권의 옹호가 성공적인 환경보존의 수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사적 소유권의 옹호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다. 현대 환경 보존론자들은 진퇴양난의 지경에 처해 있다. 논리대로 하자면 사람들에게 환경을 보존할 동기를 주기 위해 사적 또는 공동체적 소유를 추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축재에 대한 터부가 그런 생각 자체에 대해 반기를 든다. 결국 그는 공동소유에서 탈출구를 찾고 완전한 정부라는 신화로 자위 하는 것이다. 아래 인용문의 교묘한 속임수에 주목하기 바란다.
파푸아뉴기니 지역의 대부분(97%)은 문서기록도 없는 관례적 점유권에 속해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방대한 영토, 문화, 다양한 생물 종의 극히 일부분만이 법적인 보호 영역 안에 들어와 있다. 오세아니아 국가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이 같은 특이한 소유권 형태 때문에 정부는 전통적 보유권을 국가 관리로 이관해 환경보존 수단을 강구할 방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부가 완전하다면 국유화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완전하지 못한 것에 못지않게 정부도 완전하지 못하다. 정부는 부패를 통해서든 파킨슨의 법칙을 통해서든 항상 부를 그 자신에게로 돌린다. 환경 문제를 처리하는 데도 정부는 해결자가 아니라 문제의 원인 제공자이다. 정부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동 소유의 비극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정부에 속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뉴기니 사람들이 벌목이나 극락조 사냥을 중지할 것인가? 뉴기니 정부가 헬리콥터 군단을 동원해 밤낮으로 산림을 순찰 비행하고 위반자를 사살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정부를 원하지 않으며 설령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이라고 해도 그런 정부 아래 살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태적 미덕은 밑으로부터 생겨나야 하며, 위로부터 생겨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간 본성의 이기성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 것이다.
[모닝 포스트 Morining post ] (1847.1)에서.
[모닝 포스트]는 우리가 법과제도를 만드는 의도가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과 제도가 사회를 만든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철학적 입장에 따르면 사회는 개개인들이 지닌 본능의 자연적 산물이다.
[이코노미스트 Economist](1847.1)에서.
[우리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
내가 나의 본성을 이기적이라고 믿고 그에 걸맞게 친족 등용을 일삼는다면 너도 그렇게 할 것이며, 우리의 사회는 그에 상응하는 해악으로 물들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에 각인된 이타적인 덕성을 찾아 그것을 유지 발전시키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것이다. [경쟁]을 통한 진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을 통한 진화도 존재하며, 오히려 그것이 훨씬 더 강력할 수 있고 실제로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협동]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명제는 과학적으로 옳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옳다. 신좌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