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켰던 훈할머니의 외손녀 쟌니.
할머니와 같이 한국에 입국해 98년도에 00대학교 사회과학부에
특례입학 했다가 1년만에 캄보디아로 돌아간 쟌니.
이 솔트씨를 아는 쟌니에게 사과합니다.
복학 후, 취업 준비에 목 메던 어느 날, 정대연(정신대 대책 연대기구)에
활동하던 앰네스티 후배 꽁지머리 인정이가 당신을 부탁해 왔습니다.
4년 등록금 전액면제가 보장되는 특례입학을 위해서는 한국말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선배가 일주일에 3~4번씩 만나서 가르쳐 달라.
선배뿐만 아니고 3~4명이 로테이션 할테니 부담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겪고 돌아온 환향녀들에게
이 나라가 자행한 끔찍한 핍박의 역사에 분개해온지라 선뜻 관심이 갔습니다.
선한 일이라면 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고려치 않고 덥석 받는 못난 버릇 덕분에
알았다고 답했습니다. 그 후로도 이 못난 버릇을 잘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전 쟌니를 알게 되었습니다.
같이 맡기로 했던 분들이 개인적 이유로 다 그만두고 한 학기 동안 전 쟌니의
유일한 친구이자 한글 선생이 되었습니다.
나름 소중한 인연이건만 특례입학 소식을 듣자 곧 소원했습니다.
쟌니가 몇번이나 동아리 방에 찾아 왔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입학식에 꽃다발을 전하거나 한번쯤 만나 커피한잔 하는게 뭐가 어렵다고
참 미안합니다. 내가 잘난 것도, 쟌니를 쉽게 본것도 아닙니다
그냥 저도 저 혼자 힘들어 속 좁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학당까지 쟌니와 함께 걸어가면 주위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습니다.
학교에서 보기 힘든 캄보디아인의 외모에 호기심이 동한 모양입니다.
그 시선에는 옆에 같이 다니는 한 남자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습니다.
주변 시선을 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저도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후배들이 선배 요즘 연애하냐고 깔깔거리며 물을 때 평소답지 않게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어느 날, 여학생회에서 주최한 '성과 사회' 세미나에서 여성으로서 어머니 이야기에
쟌니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습니다. 내전을 겪은 여느 나라처럼 캄보디아도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은 드물었나 봅니다.
그 때 쟌니의 아픔을 보듬어 줬어야 했는데 전 그저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제가 참 못되어 먹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만약 쟌니가 인형처럼 생긴 백인 혼혈인이었다면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을까.
우리가 그렇게 드문드문 대했을까.
쟌니가 적지 않게 외로움에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이 갑니다.
쟌니가 할머니와 함께 캄보디아로 돌아 갔다는 소식은 신문기사를 통해 알았습니다.
얼마 후 할머니가 운명하셨고 쟌니도 곧 현지에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어습니다.
몇년 후, 윤00 법사에게 다시 학교에 복학할 수 있냐고 조언을 구하는 쟌니의
전화를 받았다는 말에 혹 잘 살지 않는게 아닐까 무척 걱정했습니다.
늘 뭔가 불안해 했던 한국 생활에서 좋은 일은 남기시고 나쁜 일은 다 잊어 버리십시오.
다 미안하고 잘 살길 바랍니다.
p.s
더 미안한 말을 덧붙입니다.
고인이 되신 할머니께 너무 죄송하지만 10년이 훌쩍 지나 이제 처음 묻습니다.
"훈할머니 정말 한국사람 맞나요?"
전 지금도 할머니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 관련 활동을 했던 분들의 상당수가 그렇습니다.
할머니가 증언한 일본군 장교 '다다꾸마 쓰토무'의 존재를 확인했기에 위안부란
점은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고 할만한 명확한 확증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인이 아니라는 의구심은 더욱 쌓여 갔습니다.
20년이나 살았던 한국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00 부장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그럴 수 있다고 했지만 할머니의 또렷한
인지능력으로 봐서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우선 외모만 봐도 한국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환향녀에 대한 핍박의 아픈 과거를 씻으려는듯 훈할머니를 환영했고
보상금도 빗발쳤습니다.
이 기이한 상황을 우린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정신대 대책 연대기구'는 (한국인이 아니라 해도) 비극적인 생을 살아야 했던
모든 군 위안부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전 지금도 잘모르겠습니다.
그 의구심을 말하고 꼬치꼬치 케는게 진실을 위한 행위였는지.
그 때처럼 입 다물고 이미 벌어진 일을 진심으로 수습하는게 진실한 행위였는지를.
이제 와서 사실을 밝힌다 해도 별 의미 없을 것 같습니다. 덮고 가도 아무 일 없습니다.
서로 부끄러운 일일 따름이지요. 지금 이렇게 꺼내 보는 것은 제가 속이 좁기 때문입니다.
그 점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허나 최근 천안함 사건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고 해 그냥 입다물고 수습하는 것만이 좋은게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