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코너 앞에서 고개를 까닥까닥 거리며 고민에 빠진다. 아 오늘도 너구리를 외면할 것인가. 쫄깃쫄깃 오동통한 면빨에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너구리, 내게 라면이 그냥 커피면 너구리는 T.O.P일세. 벌써 이년째 외면해 왔는데 오늘도 그래야 할까. 그동안 지킨 절개가 있지. 그게 아까워서도 옆에 놓인 삼양라면 또는 오뚜기 라면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촛불집회 후 그 좋아하던 소고기 육개장을 끊은 것, 소곱창 끊은 것(사실 이건 비싸서...쩝) 등과 함께 내 일상의 작은 변화 중 하나다. 참 족박이 덕에 별의 별 일을 다 겪는다.
곱창이야 안먹으면 용돈 굳고, 육개장은 닭개장으로 바꾸어 견딜만 한데 너구리는 좀 피해가 크다. 미각도 인생의 한 묘미 아닌가. 대체품으로 오뚜기에서 나온 오동통면을 구하니 내가 찾던 그 맛이 아니다. 이쯤에서 다시 고민한다. '우리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내 꼬라지가 이렇다.
촛불의 대회전을 기억한다. 50만의 촛불에 기겁한 족박이가 대가리 숙이고 사과했다지. 50만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내가 보는 '대회전'은 언소주와 같은 소비자 주권운동의 발로다. 조.중.동과 공좆공생 하던 카르텔 연합군은 예상치 못한 언소주 운동의 번성에 당황한다. 진짜 매출이 팍팍 깍였거든. 출.퇴근길 가판에서 한겨레 경향은 곧 매진되고 조.중.동은 상자처럼 쌓인 걸 목격하고 감격해 했다. 비록 한시적인 변화라 해도 여기까지 온 것만도 어딘가.
이 대회전의 정점에 '농심라면 거부'에 이어 '삼양라면 소비 운동'이 있었다. 이 대사건의 단초를 보면 사실 좀 웃기기도 하다. 촛불이 한참 타오르던 어느 날 언소주의 모 회원이 농심에 전화를 건다. 그 전화를 받은 직원이 하필 그 날 따라 기분이 안좋은 일이 있었나. 조선에 광고를 싣지 말라는 부탁을 받고 언쟁 중에 "야 이 샹것들 &%^$$^$^"라고 윽박을 지른다. 열받은 모 회원이 그 사실을 게시판에 알린다. 그 참 싸가지 없는 놈일세 하고 넘어 갈 수도 있었는데 이 때 조선이 화근을 부채질 한다. 농심 회장의 촛불을 비하하는 발언을 크게 보도 한 것이다. 조선과 상극인 매체가 조선.농심의 유착? 관계에 대해 다루자 조선은 그 매체를 초유의 고발이란 조치로 보복 한다. 사건은 이처럼 예측불능의 눈덩이가 되어 일파만파된다.
한편, 이 사건을 통해 삼양라면의 억울한 우지파동도 재조명 된다. 하이에나 언론과 정의롭지 못한 사법부에 의해 희생 당한 삼양을 살리자는 운동이 전개 된다. 하여 '농심편 언론 VS 삼양편 언론' 구도가 되자 촛불 시민들이 어느 편에 서야 할 지 분명해 졌다. 그렇게 십수년 인연의 너구리와 굿바이 했다. 예상보다도 더 파급력이 컸다. 농심의 매출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고 주가도 흔들렸다.
이 때 고재열의 독설닷컴에 농심의 한 직원의 하소연이 실린다. 그 직원은 "촛불 집회에 참여하러 왔다 서울광장 텐트 앞에 쌓인 신라면을 보고 감격했다" 며 눈물을 줄줄 머금고 "과연 라면에도 진보가 있고 보수고 있냐"고 되물었다. 시민들은 냉담했다. "라면 맛에는 진보.보수가 없을지 몰라도 기업 윤리는 진짜배기.가짜배기가 있거등"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여전히 너구리 코너 앞에서 망설인다. 그 직원의 하소연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어떨 때는 이런 고민이 싫어 일부러 그 코너를 돌아 간다. 이 어처구니 없는 내 일상의 한 장면을 보자면 정말인지 '우리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란 다소 철학적 번민까지 든다. ㅋㅋㅋ
필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 계실게다. 위 사진은 최근 한 블로거가 올린 것이다. 라면 맛에 진보.보수가 없다는 말 맞다. 물론 일본.한국도 없다. 한국 사람도 맛있는게 뭔지 안다. 한국인도 봉입물 좋아한다. 안 그런가. 이런 이유가 더해졌으니 이제 고민 안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