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활과 생존에 충실하면 게시판 글 읽을 시간도 없다는 걸 느끼며 삽니다. 예전에 첨예하게 부딪히며 토론하고 논쟁하던 선봉에 거의 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끼어들 시.공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왜 그리 목숨 걸 듯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진 않지만, 그저 웃지요. 그런다고 뭐가 그렇게 달라졌을까???
가끔은 편할대로,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면 만사가 평안해집니다. '우주만물은 원래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었느니라... 니가 애써서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니가 가만 있어도 그것은 그리 변하도록 운명지워져 있었느니라... 그리고 특히 '사람'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니가 아니라 그 사람 본인일 것이다. 니가 '변해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님을 일찌감치 깨닫고 너는 니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니 인생에서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편하죠?
게시판 토론의 쟁점을 정확히 꿰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추석 전후한 몇몇 글을 통독하면서 생각나는 것은,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용서』(딜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라는 책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모처럼 로그인했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읽어주시면 뭔가 작은 깨달음이라도 건지실지 모르겠고, 저처럼 바쁜 분들은 통과하셔도 그만일 글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면서 감기 환자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내일은 비온 후 기온이 뚝 떨어질 것 같으니 따뜻함을 미리 챙기시길 바랍니다.
p.s.
첨맘님도 이제는 그만 싸우시고 평화로운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뜻일까???)
게시판이 어떻고 대표가 어떻고 해도 결국 시민광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첨맘님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시민광장 대표나 집행부가 아닌, 첨맘님에 대한 허심탄회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그냥 '견해'(혹은 '바라는 바'랄까?)를 올려볼까 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안 나고, 나중에 시간이 나면 글쓸 의욕이나 용기가 안 날지도 모르겠네요.ㅎㅎ. 어쨌든 현재 저로선 첨맘님 상황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리하야 여러모로 회의감이 든다... 그리하야 시민광장 활동도 시들해졌다... 이게 제일 큽니다. 남들은 누구 탓을 하고, 누구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어쩐다 하지만.
솔직히 팬심은 '자기만족' 없으면 못하는 거 아닌가요? 여러분들은 일차적으로 첨맘님을 위해 시민광장에 있나요? 저는 아니거든요. 제가 좋아서, 제 만족에, 제가 하는 작은 활동에 대한 만족감이 있기 때문에 시민광장 회원을 유지하는 것이거든요. 그 만족감이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공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이타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요.
뭔 야그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끼리 싸울 일 하나 없다는 뜻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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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용서는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는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그러면 그들에 대한 자비심을 키우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나는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치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 여건이나 교육, 또는 사상과는 무관하다. 우리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그저 만족감을 원할 뿐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용서와 자비다.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를 상처 입힌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용서를 베풀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내면의 힘을 시험한다. 용서와 인내심은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힘이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굳이 서로를 소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나와 같은 단 하나의 사람일 뿐이다. 움직이고, 미소 짓는 눈과 입을 가진 존재를 소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적은 없다. 우리는 피부색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존재다. 살아 있는 어떤 존재라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를 미워하는 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사랑이고 자비이다. 누가 우리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는가. 다름 아닌 우리의 반대편에 서서 우리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스승들이다.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분노와 미움,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삶에서 그는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다. 그것을 마치 죽은 사람을 상대로 싸움과 살인을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모두 일시적이며, 결국 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가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결국 사라질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승리자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다.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진정한 자비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줄 아는 마음이다. 그의 고통에 책임을 느끼고, 그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마음을 기울일수록 우리 자신의 삶은 더욱 환해진다. 타인을 향해 따뜻하고 친밀한 감정을 키우면 자연히 자신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것은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나는 한 명의 인간이자 평범한 수도승으로서 이야기할 뿐이다. 내가 하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면, 그대로 한번 실천해 보기를 바란다.
- 딜라이 라마
-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 용서는 값싼 것이 아니다. 그리고 화해도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용서할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문을 열 수 있다. 지난 일에 대해 마음의 문을 꼭곡 닫아걸고 있던 누군가가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
- 미움은 강인함이 아닌 나약함의 다른 모습이다. '미움으로는 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가르침은 단지 영적인 말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미움을 통해 얻어진 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미움이나 분노를 통해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용서를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또는 국가적, 국제적인 차원에서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평화에 이르게 되고 진정한 휴식과 행복에 이르게 된다. 용서를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 복수는 더 큰 불행을 낳는다. 따라서 더 넓은 시각에서 생각해야 한다. 복수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므로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 용서는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과거의 고통이 양쪽 모두의 편협한 마음 때문에 일어났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더 지혜로워지고 성장했음을 느낀다.
- 우리는 먼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지혜를 얻어야 한다. 지혜는 투명한 시선을 의미한다. 지혜로운 자는 편견 없이 맑은 시선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
-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삶의 목표에 전적으로 집중한다. 그 목표란 궁극적인 행복을 얻는 일이다. 그들은 자비심을 키우고 이타적인 마음을 가짐으로써 그것을 이뤄낸다. 그 과정에서 그들 자신이 최대의 행복이라는 큰 이익을 얻는 것이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행복한 삶을 이끌러가는 최상의 길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일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