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경북포항광장 토론광장에서 함께 입력된 창문님의 글입니다. |
다큐멘터리「울지마 톤즈」를 보고
요즘 아침에 운동 겸 산보 겸해서 양학산을 아내와 오릅니다.
저는 왼쪽 무릎이, 아내는 왼쪽 발목이 좋지 않아서 그야말로 느림보 산행입니다.
피톤치트를 무지하게 마십니다.^^
근데 오늘 비가 와서 행복한 기분으로 늦잠을 즐기려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자마자 이불 속으로 들어가 설핏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다급하게 깨우며 조조영화를 보러 가자고 합니다.
제목은 「심야의 FM」, 영화시간은 10시 반.
근데 아내가 저를 깨운 시간은 정확히 10시 17분.
빨리 가면 광고하는 시간이 있으니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재촉하네요.
아내의 손에 힘을 빌어 겨우 일어나 눈꼽만 떼고 모자를 눌러쓰고 출발준비 끝.
CGV에 가서 표를 사려고 했더니 영화 시작시간 15분 뒤에는 자동으로 티켓팅이 멈춘답니다. 간발의 차로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아내는 기계라서 융통성이 없다고 투덜댑니다.
할 수 없이 돌아가려다 억지로 깨운 잠이 아까워서 다른 볼 영화가 없나하고 시간표를 봤는데 바로 시작하는 영화가 있더군요.
「울지마 톤즈」였습니다.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이 단지 지금 볼 수 있는 영화가 그것밖에 없다는 또 다큐멘터리라는 이유만으로 표를 사서 부랴부랴 영화관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앉아있길래 내심 은근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한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고 영화가 시작됩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故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찍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아마 관람하고 있는 분들은 성당에 다니는 분들일거라 짐작이 되더군요.
그는 올해 1월에 암으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돌아가실 때 나이가 48세라고 하니 만으로 치면 저보다 두 살 정도 많을 겁니다.
가족들에 의하면 그는 어릴 때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가난한 이에 대한 연민이 깊었다더군요.
자기를 신부로 이끌게 해준 가장 큰 계기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평생을 바친 어느 신부님의 일대기를 보고서 였답니다.(“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 40)
건강하고 착하게 커서 의대에 진학하고 졸업까지 한 그는 결국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운 홀어머니의 반대를 뿌리치고 신부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천리 만길 떨어진 아프리카 수단으로 떠나게 됩니다.
수단의 톤즈는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해외자원봉사자들도 꺼리는 가장 열악한 지역이라고 하네요.
그는 이곳에 진료소를 세워서 병든 사람을 진료합니다.
톤즈 인근의 부족들을 돌며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들이 한곳에 모여 살 수 있도록 정착지를 만듭니다.
병든 사람들이 몰려들고 한 칸 짜리 진료실에서 입원실이 있는 병원으로 커져갑니다.
그리고 그 병원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이라면 여기에 성당부터 지을까, 학교부터 지을까?
자문하고 스스로 생각해낸 답은 하나님은 학교부터 지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학교를 짓습니다.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기숙사를 마련합니다.
브라스 밴드를 만듭니다.
오랜 내전으로 소년병으로 끌려가던 아이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들려줍니다.
수단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킵니다.
그는 2년에 한번씩 한국으로 휴가를 옵니다.
그것은 휴가가 아닙니다.
톤즈의 모든 것을 위한 후원을 받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2008년에도 그렇게 “휴가”를 왔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이미 몸에 종양이 가득찬 말기 암환자로 진단받습니다.
그는 낙담합니다.
자신의 생명 때문에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톤즈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돌아갈 수 없어서 낙담합니다.
결국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쫄리 신부(톤즈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의 사망 소식에 톤즈의 아이들이 오열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오열합니다.
톤즈의 모든 사람들이 오열합니다.
그가 만든 브라스밴드가 그의 마지막 길을 인도합니다.
쫄리 신부는 그야말로 성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의 수단의 정치가 안정되고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편다면 쫄리 신부가 100명 있는 것보다 수단 사람들에게 더 많은 행복을 줄 것입니다.
그만큼 정치는 인간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도 쫄리 신부만큼 감동을 주지는 못할 겁니다.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유지한 채 세상을 바꾸는 것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세상에 뛰어드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까?
계획을 세울 때, 힘들 때, 책을 읽으면서 더러 질문합니다.
질문할 때마다 대답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
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자라고 대략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교 다닐 때 데모를 하고 시민운동도 하고 정치란 걸 하고 급기야
선거에도 뛰어들었지요.
하지만 거시적으로 세상을 바꾸려고만 했지 스스로를 희생해서 조그만 실천이
라도 해보는 것에는 눈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더불어 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 달라서 더 좋은 방법을 관철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꾼다는 미명 하에 자기의 사욕을 채우려는 인간들과 싸우는 것은 너무나 심신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정치는 꼭 필요하다는 것에 백번 동의하지만 내가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에 회의가 듭니다.
최근엔 최악의 인간들과 싸우는 열정으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오히려 훨씬 보람된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하던 즈음에 본 영화라 더 마음에 와닿았나 봅니다.
지방선거에 후보자로 나가서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절이나 성당에 다니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니까 그런 생각이 더 들더군요.(저는 여전히 무신론자이고 이 영화를 봐도 아직도 내 철학적 신념은 바뀌지 않습니다만.)
자신의 신념과는 무관하게 혼자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꽃이 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든 것 같습니다.
더불어 같이 피어야 덜 힘이 들고 자신을 더 추스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종교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그럼에도 아직 기독교는 마음에 들어오지 않네요.)
나이를 먹나 봅니다.
눈물이 많아집니다.
죽을 때까지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