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노래는 한마디로 유행가죠. 너도나도 흥얼거리는 소리 또는 노래를 말하지. 그럼 나하고 날노래하고는 어떤 인연이 있느냐. 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것을 잃었지만 울음도 잃었어요. 그런데 날노래는 잃었던 내 울음을 끄집어낸 촉매제였어요. 날노래는 길가의 돌멩이와 같아요. 길가 돌멩이도 짓밟지 말라고 항의하면서 울어요. 난 그걸 몸으로 체득하면서 울었죠. 그러니까 날노래는 곧 나예요.”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한 재야운동가 백기완 선생(77·통일문제연구소장)이 오는 11월25일 저녁 7시30분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는 무대를 펼친다. 공연명은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이야기>. 제목 그대로 백 선생의 서사시와 같은 인생사를 날노래(유행가)와 우리불림(한소리), 그리고 가슴이 답답할 때 저절로 배어나오는 비나리(시)들로 풀어낸 공연이다. 지난해 300석 규모의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 공연을 올해는 2000석 규모의 서울대학교문화관 대강당으로 확대해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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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 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라는 구절이에요. 사람은 밥이나 떡을 먹어야 하는데 도토리묵을 먹을 수밖에 없는 가난의 문제를 이렇게 미학적으로 잘 형상화한 시나 노래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박달재의 금봉이가 우는 건 가난을 극복하자는 뜻이라는 게 나의 미학적 해석이에요. 이 구절만 나오면 난 눈물이 나와요.”
이 대목에서 백 선생은 어머니와 28세에 요절한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이야기를 꺼냈다. 가난과 관련해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준 말을 남긴 두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가 내가 열세살 때 맨발로 서울로 간다니까 ‘너 서울에 가면 굶어. 하지만 모래를 짜 먹는 한이 있어도 가난에 무릎은 꿇지마’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가난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이미 꿰뚫고 있으셨던 거예요. 그러니 가난을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구조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씀이셨어요. 또 8·15해방 직후 읽은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 ‘나를 사랑하는 노래’도 같은 맥락에서 감명을 받았어요. ‘장난삼아 어머니를 업었더니/너무 가벼워/왈칵 쏟아지는 눈물 땜에/세 발자국을 못걸었네’라는 시인데 어머니를 굶주리게 하는 현실에 대한 한탄이 담겨있죠.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생전 조선의 완전 독립을 주장한 시인이에요.”
영화제작자 이은씨가 기획총책임을 맡은 이번 공연은 배우 권해효씨의 사회로 진행된다. 파업노동자 등 100여명 규모의 노동자합창단과 춤꾼 이애주 서울대 교수 등이 찬조출연한다. 백 선생이 ‘달도 하나 해도 하나’를 부르는 장면에선 촌극도 등장한다.
이번 공연은 내년 1월 추진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인 노나메기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지난 7월말 백 선생이 제안해 추진 중인 노나메기재단은 진보진영의 통합 싱크탱크를 위한 재단이다. 백 선생은 자신의 사재와 연구소 재산을 모두 합한 20억원을 재단 설립의 종잣돈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추진위가 결성된 후에는 모금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50억원의 기금을 마련한 뒤 2014년까지 재단 건물을 준공 개관할 계획이다. 동석한 김세균 서울대 교수(노나메기재단 설립 추진위원회 준비위 공동대표)는 “노나메기재단은 진보정치와 진보 대중운동을 뒷받침하는 학술·문화운동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 수익금도 설립 기금으로 사용된다.
한편 백 선생은 “11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30개 도시 순회공연도 펼치고 싶다”고 밝혔다.
입장료는 일반 1만원, 학생 5000원. 1544-1555
<경향신문 박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