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은 슬픈 것이다.
죄 없는 젊음의 영정 앞에 누가 있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것인가.
국기로 덮인 시신 앞에 보국의 빛나는 훈장이 바쳐지고
정치가들은 영예로운 죽음을 찬양하고 장군은 ‘백배로 천배로’ 복수를 선언하였다.
피 맺힌 육성으로 마지막을 보내는 전우들의 군가소리는 그 어느 조곡보다도 비통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들아 내 아들아 !
쓰러져 통곡하는 어미의 찢어지는 가슴은 그것으로는 되지 않았다.
영예가 무엇이며 복수가 무엇이더란 말이냐.
지금이라도 일어나 어미의 이름을 불러만다오.
이렇게 돌아오란 게 아니었다.
내가 죽어 돌아오라 하였단 말이냐.
누가 너를 죽어 돌아오게 하였단 말이냐.
어미들은 비통함으로 가슴 찢어져 계속 피를 흘렸다.
나도 이 나라 백성임이 슬퍼졌다.
부끄러워 울었다.
2.
죽음에 대한 분노는 당연히 있을 만큼은 끓는 듯했고
날아오던 포탄의 공포는 섬을 빠져나와 갈 곳을 찾다가
찜질방으로 몰려들었다.
대통령이 말했다.
‘응징은 단호하게 확전은 안 되도록 ’
속내가 다 들여다보였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잘못 꺼내어 대안 없음만을 보여주었다.
복수극을 좋아하는 백성들이 화를 내는 듯 했다.
말을 바꾸기로 했다.
속내가 들어나게 말을 흘린 장관 목부터 베고 ‘응징은 단호하게’ 다음 말은 없던 걸로 했다.
그래서 응징만 남았다.
응징을 위해선 비극과 공포가 중요했다.
남은 공포마저 다 도망갈 것이 염려되어 기자들은 잽싸게 뛰었다.
도망갈 수도 없는 딱한 몇몇 백성이 섬에 남아 비극에 출연하고
정치가들은 포탄을 줏으러 다니는 엑스트라를 맡았다.
별로 중요한 배역이 아니라서 포탄대신 보온병을 들이대도 상관은 없었다
버려진 개들도 배가 고파서 공포를 뒤지고 다녔다.
3.
정확히는 모르지만
3천 몇 백발 인가를 쏘아대다가 170발인가를 얻어맞고 대포가 고장 나서 80발인가를 마주 쏘았다.
원래 이게 아니었다.
사실은 계획이 있었지만 예상외로 너무 쎄게 나온 게 문제였다.
삿대질을 해댄다고 진짜 쏠 줄은 몰랐다. 잠시 당황 했다.
그 동안 너무 허술했던 것이 좀 후회되기도 했다.
순전히 미국 때문 이었다.
미군은 본토까지 가지 않아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언제나 남아도는 힘을 써 볼 곳을 찾고 있었다
미리 잘 사정해 놓은 터라서 안심했고 덕분에 안보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맘 놓고 시비는 걸 수 있었다
군대는 기업이고 국방은 장사판이었다. 이거라면 경험도 많은 마당에 어려울 게 없었다 .
예비역 육군 병장 노무현이 만든 자주국방 같은 것은 돈이 되질 않았다.
약삭빠른 군 미필이 더 머리가 좋았다.
군 미필들을 많이 모아 장군들을 부렸다.
사대강 파기에 돈도 좀 째여서 국방 예산을 검소하게 짰다.
롯데월드 장사에 방해되어 전투기들보고 다른 길로 다니라고도 했다.
돈과 관련된 비리들이 풍성하게 터져 이리저리 챙기는 동안
전투기들이 떨어지고 군함들이 가라앉고 탱크들도 주저 앉았다.
대포는 불발 되었다.
어디서 날라 오는 건지 알아보지도 못한 포탄에
죄 없는 졸병들은 힘도 못써보고 스러졌다.
4.
너구리굴엔 연기를 피운다던가.
참다못한 너구리가 뛰쳐나와 사냥꾼을 문다던가.
물렸다.
그러나 너구리 정도가 아니었다.
연기 나는 섬을 보고 ‘서울 불바다’가 떠오르고 말이 씨가 될까 겁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뿐 이였다.
내가 누구더냐. 위기 속에서 큰돈 버는 게 진짜 장사꾼이 아니더냐.
무식한 놈 용감하다더니 제대로 저질렀다.
이참에 잘 되었다.
참. 복도 많았다.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니라 긴장이었다.
계획은 긴장으로 꽁꽁 묶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레 죽도록 숨도 못 쉬게 하는 거였다.
말라비틀어지든지 지들끼리 싸우다 깨지든지 요런조런 핑계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면 되었다.
평화통일은 개뿔이었다.
긴장만이 안전한 실리였고 보수기득권은 대를 물려 만만세였다.
게다가 잘하면 손도 안대고 거저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망하면 재빠르게 움직이자고 미국과 이야기도 잘 되어 있었다.
때가 가까이 오는 것 같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빨리도 왔다.
항공모함 10만 톤의 덩치가 줄줄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서해바다에 새 길을 내면서 나타나는 데에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기자들은 가공할 무기들이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한반도를 초토화 할 수 있는지 일일이 성능을 소개하며 침을 튀겼다.
백성들은 모셔온 외국 군대의 위용을 구경하면서 분단 굳히기를 여러 번 연습하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린우정에 감복하여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생각마저 잊어 버렸다.
5.
슬픔을 분노로 분노를 복수심으로 복수심을 긴장으로.
어길 수 없는 교과서의 지침대로였다.
분노를 삭히며 이 민족 이 나라의 역사를 슬픈 눈으로 바라다보는 것은 절대 금기였다.
대통령이 나섰다.
거대한 외국 함대를 끌고 온 그의 모습은 모처럼 당당하였다.
역사책 어느 대목에 선가 본 듯한 장면 이었다.
땅을 거지반 떼어주고 빌어먹은 삼국통일이 생각났다.
이게 대안이었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응징 뿐 이였다.
치킨 게임 끝에 누구 하나는 벼랑에 떨어져 죽는 것으로 평화가 올 거라는 설명만은 새로웠다. 그 외의 평화는 굴욕일 뿐이었다.
긴장만이 살길 이었다.
단호한 응징의 선언은 북으로 갔다 되돌아와 고스란히 긴장으로 백성들의 마음속으로만 파고들었다.
섬 사람들은 찜질방서 나가 살아갈 길이 캄캄해졌다
섬에는 신식 미제 무기를 들여다가 요새를 만든다는 소식만 들렸다.
섬으로는 백배 천배 포탄이 날아올 것 이었다.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은 나라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어미들의 가슴을 달래줄 말은 없었다.
누가 아들들을 죽어 돌아오라 했는지 아무도 나서서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나 더 많은 어미들이 가슴을 찢고 피를 흘리게 될 런지 모두가 긴장할 뿐이었다.
그때에도 어미들은 울고
나는 아직 분노를 슬픔으로 바꾸고만 있게 될 것이 두려웠다.
아무도 책임 없음이 부끄럽고
이렇게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의 책임 없음이 부끄러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