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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___憤怒
이무현 | 2010-12-08 13:28:32 | 조회 1693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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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진술을 읽어가는 한명숙 전 총리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청아하게 법정을 울렸지만 이 날은 그 속에 미세한 떨림이 숨어있었다. 그것은 이날 한 총리 스스로 표현했듯 “지난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해야 하는 난감한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리라고 짐작했다. 혹은 “검찰과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세간의 의혹과 의심의 눈초리를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어 “하나가 안 되면 또 다른 건의 조작을 통해 끊임없이 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부패의 상징으로 만들어 가고”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상습’의 누명을 씌워 의혹을 심증으로, 그 심증을 사실인 것처럼 국민들이 믿게 만들려는” 검찰의 의도를 지적할 때, 나는 문득 ‘증삼의 고사’가 떠올랐다. 사기 ‘감무열전’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인간의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를 잘 설명해주는 예로 자주 인용된다.

‘증삼의 고사’와 한명숙의 수난

노나라에 증삼이란 효자가 살았다. 그 어미가 효자 아들을 믿고 의지했음은 물론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증삼의 집에 와서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는 증삼의 어미에게 “증삼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했다. 하지만 어미는 “내 아들이 그럴 리 없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은 소리를 했다. 이번에도 어미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또 와서 증삼이 살인을 했다더라고 하자 어미는 들고 있던 북을 내던지고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도망쳤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연좌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살인을 저지른 증삼은 효자 증삼과 동명이인이었다.

실로 한명숙 총리가 겪고 있는 수난이 바로 그러하다. 지난 4월 곽영욱 뇌물사건이 1심에서 무죄로 판결나자마자 검찰은 별건수사로 이번 사건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는 훨씬 오래 전, 검찰이 한 총리 주변을 샅샅이 뒤질 때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다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 훨씬 더 힘들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곽영욱 사건에 밀렸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나마 믿었던 곽영욱 사건의 허구가 재판과정을 통해 낱낱이 드러나자 서둘러 이 기획을 되살려낸 것이다.

이것도 끝이 아니다. 재판 하루 전, 공동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검찰이 이번 재판도 실패할 것을 예비해 한명숙 전 총리를 표적으로 겨냥한 또 다른 징후를 포착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세 번째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손아귀에 놓인 궁박한 증인들

모든 것이 곽영욱 사건 때와 흡사하다. 가장 흡사하다 못해 똑같은 것이 사건 연루자들의 신분이다. 검찰은 이미 한 총리 주변인물을 수십 명, 수백 명씩 저인망식으로 훑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한 총리를 엮은 두 사건의 핵심인물이 모두 수형자이거나 피의자라는 점이다. 검찰이 형량을 늘일 수도, 줄일 수도 있을 뿐 아니라 기소를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검찰의 손아귀에 놓인 궁박한 처지의 인물들인 것이다.

곽영욱이 재판과정에서 한 총리를 모함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자신의 범죄사실을 주장한 데 따른 대가를 자신의 원 피의사건에 대한 구형에서 얼마나 톡톡히 누렸는지에 대한 객관적 계량은 불가능하다. 짐작만 할 뿐이다.

또 이번 사건을 구성하는 핵심인물은 이미 사기혐의로 형이 확정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므로 곽영욱이 누렸음직한 혜택은 누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찰이 그의 회사를 새삼스럽게 뒤지면서 숱한 범죄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는데 검찰은 이에 대한 기소를 꿈도 꾸지 않는다.

재판 첫날,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 경리팀장이란 젊은 여성은 열 개가 넘는 은행계좌를 돌려가며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장과 함께 여행가방안에 현금과 달러를 쟁여 넣는 범죄 장면을 신나게 묘사하면서도 전혀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변호인측에서 한 번 더 출정을 요구하자 검찰은 “생활인으로서 증인의 인권도 고려해야 한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한 장의 잘 짜인 상황극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코미디가 가미된 괴기극의 한 장면이랄까.

“고통스런 시간이셨을 텐데, 저도...”

모두진술을 읽어 내려가던 한 총리의 목소리가 결국 더는 숨기지 못할 만큼 크게 떨렸다. 간신히 울음을 참는 듯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본인에게 가해졌던 수모와 모욕도 참기 힘드셨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 나라의 양심적 민주세력이 받을 명예의 훼손과 상처가 더욱 아프고 쓰라렸을 것”이라는 대목을 읽는 때였다. 그리고는 “세상을 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시간이셨을 텐데, 지금 저도 그렇습니다”라고 솔직히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랬구나!

최근 한 총리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들 한 총리가 의외로 명랑하고 씩씩한데 놀란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휠체어도 타고 그러던데 난 끝까지 당당하게 싸워 이길거야”라고 투지를 불태운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한 총리도 속으로는 그렇게 괴로우셨구나. 노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할 정도로까지 그렇게 힘드시구나!

검찰로서도 존재조차 하지 않는 한 총리의 범죄사실을 입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 총리 흠집내기, 궁극적으로는 양심적 민주세력 전체에 대한 모욕주기에 대한 집요한 공작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무대장치를 끝냈다. 그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 전 총리 불법정치자금 수수사건’이란 명칭을 붙여 놓았다. 말이 생각을 규정한다는 이론에 따르면 이미 주변인들의 뇌리 속에는 사건의 실체와 관계없이 한 총리가 정치자금을 수수했을 개연성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번 사건을 ‘한 총리에 대한 검찰 독직사건 2’ 혹은 ‘검찰권을 악용한 이명박 독재정권의 한 총리 탄압사건 2’로 규정짓는 이유다.

‘검찰의 독직사건 2’

법원을 빠져 나오면서 차가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다 보니 ‘한 총리에 대한 검찰 독직사건 1’이 시작된 것도 정확히 1년 전, 오늘처럼 날이 갑자기 추워진 겨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 경우에 대한 정확한 비유는 아닐지 몰라도,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마르크스의 명언이 떠올랐다.

검찰은 해를 바꾸면서까지도 자꾸만 비극을 연출하려 드는데 나에게는 왜 자꾸 저들이 코미디언처럼 비치는지 모르겠다. 지난 1년 사이, 대한민국은 4대강 파헤치기, 천안함 사건에서 최근의 연평도 포격사건, FTA 굴욕협상에 이르기까지 온통 엉망진창이 되고 있는데 오로지 정적을 죽이려고 골몰하고 있는 저들은 여전히 철딱서니조차 들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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