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이런 질문은 한 번 씩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인처럼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은 드물다. 굳이 나눠보자면 이정희 대표는 최소한 같은 편으로부터는 욕을 별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유시민 원장은 같은 편으로부터 듣는 욕도 상당하다. 물론 강력한 팬 층이 있지만.
유:연예인들에게는 애로사항이 있답니다. 호프집에서 술 먹는데 옆 자리에서 욕하면서 시비를 건다고 합시다. 여기에 맞대응하면 신문에 나거든요.(웃음) 정치에도 있습니다. 사실 (정치가) 돈이 많이 벌리는 직업도 아니고, 국회의원 되면 오라는 데는 많지만 가고 나면 욕도 많이 합니다. 조사해보면 신뢰도의 꼴찌가 검찰, 국회, 대통령이라는데, 이건 길가다 만난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없다는 것이거든요. (저는) 정치를 하면서 항상 ‘내가 왜 정치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아직도 결론이 잘 안 나서 이 대표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웃음)
이:2008년 3월2일.
민주노동당 입당원서를 쓰면서 그때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왜 정치를 할까? 글쎄요... 그래도 다행인건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그래도 ‘
거짓말은 안 하겠구나’ 그런 믿음이 있으세요.(웃음) 그런 게 귀한 거지요. 흔히 국회의원들 보면서 얄밉다는 생각을 했는데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다르게 보시거든요. 만약 다른 정당이었으면?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을 텐데... 굳이 나까지? (웃음)
(정치를 하게 된) 더 직접적인 배경은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아닐까요? 10년 동안 노력했던 결과물이 중단됐다는 압박감 같은 게 작동한 것 같아요. 정치를 한다는 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하면서 점점 느끼는 건 국민들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 거짓말 안하는 사람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열망은 굉장히 커서 언젠가는 크게 폭발할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 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정치가 매력적으로 보일 때유:저는 정치를 하다말다 했는데, 거슬러 가면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20대라 매일
심부름만 했습니다. 그 선거 끝나고 구로구청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일었는데, 거길 가서 투표함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날 (진 것이) 믿을 수가 없고, 서럽고 해서 밤새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선배들이 자꾸 이 당이 무너지면 도저히 기댈 데가 없어지니깐 다 입당한다고 했습니다. 평민당인데, 이해찬 의원이 당선되서 보좌관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대표께서 관악을로 가셨는데, 제가 관악을에서
지역신문도 만들고 교육센터 만들고, 사진전 열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91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 공천을 받았는데, 당내 문제 때문에 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러 갔습니다.
2002년에는 민주당 후보 경선 때 노무현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후보가 확정되고 나서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민주당내에서 후보 흔들기가 시작되어서) 화가 나서 다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너무 무시하는 겁니다. 좋은 분인데, ‘대학 안 나왔다고 그런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정치였는데, 보궐선거 하고 장관되고 그렇게 왔습니다.
지난 정부가 끝날 무렵에 생각해봤습니다. 자연에는 진공이 없다고 하죠? 권력도 진공을 허용 안 합니다. 국가(권력)는 필연적으로 있게 되어 있는데, 누군가는 이걸로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권력이 없으면 국가가 나쁜 짓을 하게 됩니다.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거나 결국 국가의
작동방식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누군가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니까 저 같은 사람이 그냥 책만 쓰거나 강의 다니면서 사는 게 비겁해 보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한나라당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현안문제에서 논리로 힘으로 수로 싸울 때는 못 느꼈습니다. 그 때는 (정치가) 매력적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국가가 악을 덜 저지르게 할까? 국가를 통해 선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이 그런 거였구나’하고 느끼니까 정치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기자는 이 때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정권을 잡아야 매력이 더 강해지겠는걸요?” 모두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정희 대표의 말은 좀 무거웠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이:저에게 정치란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할까요? 사람들에게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혹은 국가가 그들을 억눌렀을 때, 그들의 표정... 그 얼굴들이 가슴속에 박혀 안 잊혀요. 국가는 그걸 할 수 있는데, 바꿀 수 있는데, 왜 안할까? 내가 하나라도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맞지 않나? 2008년 쌍용차 파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노사 간의) 대화를 주선하는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안할까... 유 원장님이 정치를 매력적으로 생각하신다는 말씀이 저는 참 좋은데요... 참 좋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이 (정치를 통해) 바뀌는 것을 보면, 풀어지는 뭐랄까요, 그런 순간, 그런 느낌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치에서 매력적인 게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저는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유:정치를 시작할 때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억눌리고 빼앗긴 사람들, 자유가 속박당하는 사람들이 억눌림이 벗어났을 때 드는 느낌 같은 것. 군대에서 제대하는 날의 해방감 같은 것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를 하면서는 그런 것보다 좀 추상적인 것을 미워했습니다. 지역구도 정치, 이런 게 너무 미웠습니다. 정권교체 이전에 정치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정치가 투쟁의 연장에 가까웠습니다. 좀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암튼 그랬습니다.
안 그런 적도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이것저것 했는데, 그 이후 대구에서 선거를 하는데, 갑자기 길을 가던 쌍둥이 엄마가 ‘너무 고맙다’고 손을 잡아요. 출산도우미 보내줬다고 그렇게 고마워하는 겁니다. 그 때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만약 장관할 때 그런 생각을 더 했다면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웃음) 저는 이 대표님 같은 느낌으로 정치하는 분은 처음 봐요.
이:진보에 대한 제 생각이 무엇인가와도 연관이 있어요. 저는 현실 문제를 가장 잘 푸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조건을 달지 않는’, ‘(복지를 베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내 것을 받았다’는 생각. 우리의 공동체는 그런 것들을 보장하는 데서 발전합니다. 그런 논리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진보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나 정부에 대해서도 저는 많이 싸우고 싶지 않아요. 설득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일해 왔던 법정이라는 공간에서도 저는 충분히 설득을 통해 성공해왔고요. 87년 헌법에서 가장 잘 되었다는 것이 37조거든요. 국민의 자유와...(웃음)
헌법 37조 ‘복창하기’갑자기 웃은 이유는 두 사람이 37조를 ‘복창’했기 때문이다. 이정희 대표의 전직이 변호사이니 뭐 그럴 법도 하고, 유시민 원장의 저서 중에는 ‘후불제 민주주의’가 있으니 역시 그럴 만하다. 헌법 37조는 1항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이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이다.
이:이 37조는 우리 헌법을 열린 헌법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상식과 논리에 기초해 진보를 일궈 나갈 수 있는 이유이거든요. 저는 사실 밉거나 싸우기보다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평화적으로 살 권리. 이런 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는 할 수 없는 것들이죠. 이번에 SSM규제법 하면서 민주노동당이 주장한 게 사실 헌법대로 하라는 거잖아요. 진보세력이 현실정치에 참여함으로써 국가권력을 국민의 통제 하에 놓는 선순환의 길이 이미 정립돼 있다고 봅니다.
유:한 토론회에서 진중권 선생이 저보고 ‘이 사람은 좌파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조금 좌파인데요’ 했지요.(웃음) 진보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디로 갈까를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논리 이전에 사람마다 있는 나름의 직관과 감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헌법의 가치 중에 자유가 제일 좋습니다. 부당하게 간섭 받는 게 너무 싫어요.(웃음)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범위에서 내 삶의 권리는 나에게 있다,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부르주아적 가치에 의한 자유라도 이것 역시 자유거든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면 자유가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물질적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저는 자유를 향한 노력이라고 보는 겁니다. 진보가 과학 기술에 대해 너그러운 것도 마찬가지지요.
저는 ‘리버럴’입니다.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리버럴들은 내가 뭘 위해서 세상에 와 있다고 생각 안 해요. 그냥 세상에 와 있다, 기왕 온 거니까 잘 살아야지, 내 의지대로 사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 내가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데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다, 이런 걸 막는다면 무너뜨리자 이렇게 갑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돌을 던진 게 이런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사람들은 다 나 같지는 않거든요. 비정규직이 그래요, 저는 정규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책 쓰고 강연하고 이럭저럭 살거든요, 그런데 비정규직은 정규직이랑 똑같은 일을 하는 데 같은 대우를 못 받는다는 말입니다. 보고 있으면 너무 불편해요. 리버럴들은 자신의 일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있다 보니 ‘나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맞냐’고 묻게 됩니다. 그래서 연대가 이루어집니다. 규범적으로 ‘연대’, 이런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삶의 주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데, ‘나쁜 사람들이 있고 공동체의 의무도 있지 않느냐’ 이렇게 연대가 발생합니다. 진보가 보편적 자기 규범에서 자기 행동의 원칙을 이끌어 낸다면 리버럴들은 거꾸로 합니다. 내 삶의 원칙에서 시작해서 보편적 규범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왜 (연대를) 하느냐고 물으면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결국 행동은 같을 수 있는 거지요. 하나의 일을 놓고 동기가 무엇인가는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미안해서 두고 못 보는’ 이런 마음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 한마디만 거들면 도움이 될 텐데 하는 생각.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여론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슬며시 가서 도와주는, 이런 모습을 이번에 현대차 비정규 파업에서 봤어요. 그런 마음들이 정말 고맙고...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정치는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런 힘은 그럼 어디서 나오나?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마음이 진실해야 한다. (이 쯤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 여기에서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도 한 단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런 계기들을 정치를 하면서 살려보고 싶습니다.
2시간을 예정하고 시작한 대담은 이쯤에서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기자의 호기심은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를까하는 데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그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놓고 이 대표와 유 원장 사이에는 분명히 거리가 있었다. 유 원장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면, 이 대표에게는 자신의 ‘자유’가 반드시 타인을 위해 쓰여 져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앞섰다. 유 원장이 ‘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이라면 이 대표는 ‘싸우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워 싸우는 사람’이라고 할까? 물론 독자들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두 사람의 정치에 대한 생각은 두 당의 존재처럼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엇갈렸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 원장이 대담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 ‘싸우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워 싸우는 사람’유:심상정 대표가 어떤 인터뷰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치로 왔는데 정치가 뭔지 몰랐다. 멘토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멘토가 없었어요. 선배들이 많은 얘기를 해 주었지만 정치 처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나도 우습게 여겼습니다. 정치의 본질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을 못해본 겁니다.
유시민이 안티가 많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겠지요. 요즘 진보신당 분들이 막스 베버
세미나를 한다고 하는데, 저도 정치를 쉬는 동안에 막스 베버를 읽었어요. 거기 보니까 이렇게 나옵디다. 정치인의 자질에 세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대의에 헌신하는 열정,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균형 감각. 저한테는 책임의식이 가장 부족했어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하겠다는 욕심도 없었고, 노무현 대통령만 당선되면 (정치를) 그만하고 (집에) 가야지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책임성 있게 일을 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 거지 뭐.(웃음)
옳은 일을 했건 잘못된 일을 했건 사람들이 기대하고 요청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막스 베버가 봤으면 정치인으로서 심각한 거지요.(웃음)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고 이게 나의 업보구나, 이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좀 더 길었다. 일단 이 쯤에서 줄이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