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산벗 산행후기에서 함께 입력된 아사달의 봄님의 글입니다. |









그리움, 마침내 목구멍에 차오르면 눈물 같은 눈이 내리지
<#1>
지난주 일주일 내내 날이 몹시도 추웠습니다. 바람도 여느 겨울처럼 불다 말다를 반복하지 않았지요. 날 세운 칼바람은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들짐승마냥 골목길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어둑한 골목길에 느닷없이 달려드는 들짐승, 거리를 가득채운 겨울 찬바람은 들짐승의 그것마냥 송곳니를 번뜩였지요. 사람들이 잔뜩 웅크리고 달아납니다. 사람들도 바람도 떼를 지어 거리를 배회합니다. 어디로 갈까요. 어떻게 갈까요. 그대 기다리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 미끄럽고도 어둑어둑합니다. 이렇게 가다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보면 방향을 잃고, 길도 잃고, 마침내 그대마저 잃을지도 모릅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눈을 쏟아낼 것 같아요. 참고 참았던 눈물, 볼을 타고 흘러내릴 그 서러움 같은 하늘입니다.
<#2>
그리움, 끝 모를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울까요? 자문을 해도 답이 없는 그리움입니다. 그저 저 홀로 외롭기도, 우울하기도 하지요. 낮게 가라앉은 하늘이 서럽고, 웅성거리며 불어오고 불어가는 바람이 또한 외롭기도 하구요. 겨울은 늘 그렇게 중저음으로 다가와 ‘탁’하고 무릎 꿇게 하는 그리움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 듣고 싶은 목소리, 따스함으로 어루만져질 손길까지. 그런 온갖 그리운 것들을 찾아 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덜컹덜컹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게 전철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젊음의 열기 가득한 혜화역을 지나 멋쟁이들로 차고 넘치는 명동역에서도 잠시 걸음을 멈췄지요. 열어젖혀진 문을 비집고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어찹니다. 사람들을 찬찬히 뜯어보는 것도 나름 재밌습니다. 노랑머리에 반짝이는 귀걸이가 예쁜 여자도 보기에 좋고, 검은 머리카락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백발의 노신사도 참으로 멋집니다. 덜컹거리며 달여 온 전철이 마침내 사당역에 멈췄습니다. 이제 잠시 후면 그리운 사람들을 보겠지요. 출구를 찾아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당역 4번 출구, 연신 배설물을 쏟아내듯이 에스컬레이터위로 사람들이 밀려들고, 밀려갑니다. 저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나도 밀려나가겠지요. 배설의 시원함 같은 찬바람이 폐부 깊숙이 파고듭니다. 올려다본 출구에는 하늘이 가득하구요.
<#3>
커피향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윽한 커피향 사이사이에 그리운 얼굴들이 섞여있습니다. 다정무심, 동서통합, 행인1, 그리고 가야산님까지. 눈인사에 악수까지 인사를 나누고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바쁠 것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으니 잠시 멈춤이지요. ‘휴’하고 담배연기를 뱉어냅니다.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 얼굴을 찡그릴 수도 있고 아니면 코를 벌름거리며 저 멀리 사라져가는 담배연기에 코를 박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죠. 다만 나에게는 달콤한 독약임에 틀림없습니다. 담배가 타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이 흘러갈 때 쯤 또 한명의 그리운 사람. 하로동선님이 얼굴을 내밉니다.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은 사람들. 뜻 모를 그리움이 가득 녹아든 겨울이라서 더욱 좋을지도 모릅니다. 공짜로 맡는 커피향도, 제법 수그러든 날씨도 그리고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도 보기 좋게 무시하고 달려온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고맙고도 기분 좋은 날이었지요. 출구 앞에 많은 사람들, 알록달록 울긋불긋 치장도 요란합니다. 나누는 말들도 제각각. 가슴에 품은 그리움 조각도 제각각이겠지요. 어디를 향해 걷다가 마침내 그리움 그 끝에 닿을지. 그리움이란 놈이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라면 서울하늘 골목골목마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혀진 그리움들로 가득하겠지요.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치는 나비 같은 그리움 휙 던져놓았습니다. 눈썰미 좋은 그 뉘라면 사당역 4번 출구, 커피향이 좋은 그 골목에서 발버둥치는 내 그리움과 만날지도 모릅니다. 윙크라도 날려주세요. 그럼 저도 당신의 그리움과 만나는 날 그리 할게요. 오늘도 사당역 4번 출구에는 커피향이 가득할겁니다.
<#4>
바람이 몰려간 그 골목을 돌아나가 마주한 산길엔 눈이 가득합니다. 며칠 전에 내린 눈 채 녹기도 전에 또다시 눈 소식이지요. 하늘이 잿빛으로 낮게 가라앉았습니다. 손을 휘휘 저으면 손바닥 가득 눈이 잡힐 듯이. 정수리 꼭대기에 하늘을 매달고 산길을 올랐지요. 나뭇잎 다 떨구고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오밀조밀 사당동 골목이 보이고 그렇게 또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도 불어요. 산길을 걷길 한 시간여, 잿빛하늘가에 꽃잎 나풀거리듯 함박눈이 날리고 있었어요. 가볍다 못해 무게감조차 느낄 수 없는 고운 몸짓에 발걸음도 가볍게 춤을 추고요. 흙 한줌 제대로 없는 절벽에 기대어 저 홀로 성하의 계절인양 자태를 뽐내는 푸른 소나무 하나 하도 보기에 좋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늠름한 모습, 나도 너와 같이 모진 바람에도, 모진 목마름에도 흔들림 없이 세상을 살았으면 좋으련만..... 못내 아쉬워 가던 길 멈추고서 다시금 쳐다보았지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 쯤 산마루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엔 심술이 가득했습니다. 나풀나풀 너울너울 소담스럽게 내리던 함박눈은 눈보라로 낯빛을 바꾸어 심술을 부립니다. 두 볼에 부딪히는 눈이 따갑습니다. 어쩌면 이 바람 끝에는 시퍼렇게 멍들어 있을 얼굴과 마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5>
눈보라를 뚫고 올라선 연주대는 고요했습니다.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그렇게 느껴졌지요. 윙윙 바람이 할퀴고 가는 산마루 절벽 끝에 제비집마냥 매달린 연주암. 그 암자 좁은 마당에 고요함이 머무를 틈이 있겠냐마는 내 마음이 그러하니 그러하겠지요. 좁은 절집 마당에는 석등 하나 불을 밝히고 섰습니다. 관악산 꼭대기까지 허위허위 오른 나그네들. 무엇을 찾아 올랐던지 그 소원을 빌어보라. 다 이루어주진 못한다 해도 너의 서러움 모두 들어는 주리라. 그리 말하는 듯 했지요. 지고 있던 배낭을 벗어두고 불전에 몸을 낮춰 삼배를 했습니다. 딱히 빌고자 함은 없었습니다. 꼭 이루고자 함도 없었으니 ‘꼭 들어주세요!’하는 소망함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리 몸을 낮춰야 할 것 같은 정갈한 고요가 있었지요. 사당역 골목어귀 어딘가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을 그리움 하나 가슴속을 맴돌고 있어서인지도 모르지요. 어둑어둑 해는 저물어가고 잠시 멈추었던 눈보라가 그 기세를 더할 때 산행은 끝이 났습니다. 집을 나설 때 같이 나선 그리움의 조각들, 그 많은 조각들 중 오늘은 몇 조각이나 짜 맞추었을까요. 적어도 한 조각쯤은 맞추지 않았을까. 같이하는 시간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따스한 마음 가진 사람들과 이리도 종일 산길을 걷고 오르고 웃고 떠들고.....
누군가 사당역 4번 출구 커피향이 좋은 골목길 어귀를 돌아날 때쯤 바람에 흔들리는 내 그리움과 마주하면 눈인사를 보내주세요. 어느 골목에선가 홀로 떨고 있을 그대의 그리움과 마주치면 저도 눈인사 보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