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53766번 글 '무상의료는 가능하다!/벽암'에 댓글로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 본글로 올립니다.
시민광장님들 오랜만입니다. 새해에도 건강하게, 바쁘게, 열심히 살아 내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하는 댓글로 썼던 내용입니다. --------------------
무상의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무상의료와 관련한 2008년(맞나요?) 첨맘님의 경북대 강연 동영상이 다시 떠오르던데 그 때 당시 상황으로는 첨맘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많이 공감했지요. 하지만, 그 때는 없었고 앞으로는 있을 제도 때문에 어쩌면 가능성에 더 가까워졌답니다.
첨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런 내용이 있죠. 무상 교육은 가능할 거다, 무상이라고 학교에 두번 세번, 10년을 다닐 건 아니니까. 마찬가지 이유로 무상급식(무상 교육의 일부분이지만)도 가능하겠죠. 무상이라고 세 끼 먹을 거 열 끼를 먹을 순 없으니까요. 그러나 무상 의료는 다르다, 환자가 '만족할 때까지' 수요가 생긴다, 그러니 재정이 얼마가 들어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재정 때문에 어렵다는 게 결론이었죠.
그런데 요즘, 의/약사에게는 골치 아프지만 필요하니까 해야 하는 일이고, 환자들한테는 불만을 낳을 수도 있지만 과잉 진료나 과잉 투약을 방지해주니 건강을 위해 좋을 제도가 하나 생겼답니다. 우리말로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DUR(Drug Urilization Review) 서비스'란 것이 생겼거든요. 지금은 유예기간이고 4월1일부터는 의무화되는 겁니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에서도, 각 요양기관(병의원, 약국)에서도 업무용 프로그램과 연계시키는 전산 시스템을 깔아놓았답니다. 이제 환자 뿐 아니라 요양기관도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국가 전산망에 등록이 되어 한눈에 파악이 되게 생겼습니다. 어찌보면 무섭죠. 빅 브라더에게 감시 당하는 기분이니까요.
A라는 환자가 감기 후유증으로 계속 기침이 멎지 않아 X라는 의원에 가서 3일분 약을 처방 받아 O라는 약국에서 약을 조제받아 먹었는데 하루를 먹어봐도 아무런 차도가 없어 다시 Y라는 의원에 갔다 칩시다. 기침 증상에 따른 처방이라야 이 병원 가든 저 병원 가든 약 이름과 색깔, 모양만 다를 뿐이지 실제 성분들을 보면 거의 유사합니다. 그래서 Y 의원의 의사가 처방을 하는데 번거로운 일이 발생합니다. 어떤 약을 처방 내리려 하면 DUR시스템에서 간섭을 하는 거죠. '이 환자가 언제 X 의원에서 무슨 약을 처방 받고 O 약국에서 이 약을 투약 받았기 때문에 몇 일분이 중복된다'고 뜨기 때문에 그 약으로는 처방을 내릴 수가 없답니다. 꼭 그 약을 써야 한다면 사유를 기입해야만 하고, DUR을 무시하고 처방 내리면 그 다음에 또 귀찮은 일이 생기죠. 그 처방을 받은 약국(O이든 P이든) 프로그램에서 또 DUR이 잔소리를 해대니까요. 약국 전산에 모두 다 뜹니다. X의원, O의원, Y의원 상황이 모두. 약사는 처방전대로 약을 조제할 수가 없습니다. 처방 내린 Y 의원에 전화를 해서 중복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문의해야 합니다. 둘 다 귀찮을 뿐 아니라 업무 시간도 상당히 지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DUR 점검 결과 이상이 있는데도 무시하고 사유를 기입치 않고 처방을 내리거나 조제를 하면 진료비나 약제비를 삭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제도 시행 초기엔 상당한 혼란이 생길 겁니다.
이제 환자에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볼까요? X라는 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는데 맘에 안들어 다시 Y라는 의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하루 전에 다른 의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있으니 그걸 다 먹고 오라 한다거나, 그 처방약이 있으니 한두가지만 추가해 먹으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혈압약 한달치 타서 먹다가 여행 가서 통째로 잃어버려 다시 처방 받으려 가면 아직 날짜가 안 되었다고 처방이 안된다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라면 본인이 돈을 더 내고 혈압약 처방을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장기 출장이나 해외 여행 등을 위해서는 미리 약을 더 탈 수도 있지요. 예외 사항이란 것이 있는데 심평원에서 이미 정해놓았죠, A~P까지. 그 외엔 텍스트로 사유를 입력할 수는 있는데 심평원에서 어떻게 인정해 주느냐에 따라 책임이 의료기관으로, 혹은 약국으로, 혹은 환자한테로 가서 그만큼의 금액을 삭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자한테는 약값을 전액 청구하려나요?
이런 제도가 바로 DUR입니다. 이런 걸 시행함으로써 과잉 진료, 과잉 투약이 없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돈 많다고, 혹은 무상 의료라고(의료 급여 환자) '의료 쇼핑' 하는 사람들도 이젠 어렵게 되었지요. 물론, 보험으로 하지 않고 모두 '본인 부담'으로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긴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첨맘님이 말씀하시던 '무한대'의 수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수요가 한정된다면 무상 의료에 필요한 재정도 책정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은 안될 것이고 DUR을 몇 년 시행해서 그 효과를 봐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