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허영선
그런데도, 산 자들은 참으로
댕댕이덩굴처럼 질긴 목숨 줄이었습니다
그대여,
지금은 높은 산 왕성한 조릿대 숲 지나
골골마다 묻어 둔
수림의 꿈들이 그리운 집들을 찾아갈 때
바다 위로 유채꽃 피었다 질 때
남편 아들 손자 며느리 앞세우고
내 사랑 애기달래 씀바귀 봄풀로 살아날 때
그대여,
그리운 이들 먼저 앞세워
눈 먼 시간도 역사도
폭낭 등걸 몸통으로 늙어 가는데
노랑이 분홍이 너울지는 봄날
하늘거리는 명주바다 속맘을 아시나요
아예 눈뜨기 싫어
용암같이 딱딱한
헛심장만 쥐었다 내려놓는
가슴팍 돌소리 듣나요
견딘다고 견딘 것도 아니지만
짐승처럼 문 틈새로 기어 오는 이 봄날도
그대여, 그냥 그대로의 봄날이 아닌 줄 아시나요
피뿌리 풀 색깔 짙은 봄 바다로
지금 사람들 몸 풀고 마음 풀고 오고 가지만
그만 송악 덩쿨 검은 슬픔 삼키는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