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틈나는대로 유시민을 탐구하는 글을 쓸려고 한다. 주로 인터뷰나 강연, 책에서 유시민이 언급한 내용 중에서 보충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할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초고를 쓴다는 생각으로 한번 시작해본다.
시작하는 글은 "그 분이 가려했지만 못간 길을 가려한다"는 언급에 관한 것이다. 한겨레신문 2011년 1월 25일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 -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제3의 길을 가지말라고 충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노 대통령이 그런 말씀 하신 건 맞다. 노 대통령은 제3세력을 구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1990년 3당합당 때 잔류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때 꼬마민주당. 10여년에 걸쳐서 소외된 제3세력으로 정치를 해본 분이다보니, 후배들한테 그 길을 권하지 못한다. 그게 노 대통령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그런데 창당은 대통령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선택해서 하는 거다. 부모가 자기 딸이나 아들이 비정규직 집회에 시위하러 다니고 하면, 남의 애가 그러면 ‘기특하네’ 하면서도 자기애가 그러면 신경질낸다. 자기혈육의 고통은 눈물겹기 때문에 말릴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노 대통령에게도 그런 비슷한 게 있었다. 그 힘든 길을 우리한테 권할 수 없는 분이다. 노 대통령은 그분들(민주당내 친노세력)이 열린우리당 지키겠다고 할 때도 따라가라고 했었다. 대세를 놓치면 안 된다면서. 어지간히 냉혹한 사람이 아니고는 제3당의 길을 가라고 말 못한다. 그렇게 온정적인 분이 자기한테 충성한 후배들한테 어떻게 그 길을 가라고 할 수 있겠나. 내가 대통합신당에 갈 때도 따라가라고 강권하셔서 갔다. 그때 노 대통령한테 그랬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다시 생기면 그때는 내 뜻대로 하겠다고. 나는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노 대통령의 권유라서 따랐던 거다. 따르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고.”
-온정 때문이 아니라, 노 대통령은 그 길이 틀린 길이라고 봐서 창당하지 말라고 했을 수도 있잖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치했던 시기와 우리가 정치를 할 시기는 유권자 구성이나 소망, 기술적 환경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대통령은 못했겠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노무현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니다. 그 분이 가고 싶었지만 못 갔던 길을 가려는 거다. 그래도 우리는 노무현 정신을 거론하면서 민주당을 욕하지 않는다. 서로가 지켜줘야 할 예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민주당 비판하면 그냥 비판한다. 우리가 노무현 정신을 얘기할 때는 우리가 옳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한다. 공당이, 정치하는 사람이 타인을 공박하기 위해 노무현 정신을 거론하는 건 옳지 않다.” |
유시민의 인터뷰 내용은 읽으면 고개 끄덕하면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유시민이 시간관계상 인터뷰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주관적인 분석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내가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 글을 참조해서 유시민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유시민의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지점을 좀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노무현의 정치 역정과 민주당 합류 동기
2. 노무현과 유시민의 정치적 환경의 공통점과 차이점
노무현은 분명히 민주당 당적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유시민과 참여당을 비토하는 민주당 그룹은 이런 '객관적 사실'(팩트)을 내세워 유시민을 분열주의자로 몰아간다. 안희정과 이광재 같은 노무현의 참모그룹이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는 근거 역시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런 말이다.
"노무현도 민주당 당원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민주당 안에서 경쟁해서 승리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자체로 진실은 아니다'. 역사적 맥락과 관점이 생략된 팩트는 진실을 가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 맥락은 무엇일까? 특히 유시민을 비토하는 민주당은 자세히 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이 어떤 정당이었는지, 한번이라도 독자적인 능력으로 선거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런 열세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특히 노무현이 과연 민주당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20년동안 민주당은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호남을 깔고 앉은 다수가 소수를 핍박했던 역사다. 조금 길지만 역사적 사건을 최대한 축약해서 노무현과 유시민의 정치역정을 표로 정리해봤다.




(연표 자료 출처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20년 역사를 축약한 연표를 보면 어떤가? 민주당에게 노무현은 어떤 정치인이었나? 노무현에게 민주당은 어떤 정당이었나? 민주당에게 노무현은 그냥 굴러온 놈이고, 그래서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도 온갖 구박을 받았던 '미운 오리 새끼'였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된 이후에도 노무현은 늘 소수였다. 탄핵 위기까지 몰렸다. 2007년이 되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정치인이 부정했던 '외톨이'였다. 그 옆에 누가 있었나? 유시민이 있었다.
노무현에게 민주당은 '정권교체'라는 대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정당이었다. 위에 유시민의 언급을 다시 음미해보자.
"10여년에 걸쳐서 소외된 제3세력으로 정치를 해본 분이다보니, 후배들한테 그 길을 권하지 못한다. 그게 노 대통령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영남과 호남에 자리를 깔고 앉은 세력이 양당체제를 구축한 상황에서 제3세력으로 남아 있는 동안 '좌절'만 거듭했다. 그게 바로 88년 초선 국회의원부터 97년 국민회의에 입당하기 전까지의 노무현 처지였다.
노무현은 이렇게 회고했다.
"종로 선거에서 제3당으로는 지역당을 타파할 수 없다는 경험적 인식을 얻었다. 2002년 말 대통령 당선 직후 제주도에 휴가를 갔는데 정동영, 추미애 의원 등이 민주당을 깨고 신당을 만들겠다고 성명을 냈다. 전화를 했기에 민주당 개혁이 먼저라고 하면서 극구 만류했다. 2005년 여름에는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해서라도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려 했다.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이 대통합 결의 전당대회를 했을 때, 유시민 장관이 열린우리당 사수파를 모아 당을 지키고 재창당을 하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때도 말리고, 반대해서 싫다는 것을 억지로 협력하게 만들었다. 이 모두가 제3당으로는 지역당을 깰 수 없다는 경험적 인식 때문이었다." - <운명이다> 139쪽
노무현은 97년 11월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 하나 때문에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3세력을 포기한 것이다. 꿈을 접은 것이다. 그나마 김대중 총재는 외부의 소수세력을 위해 많은 배려를 했었다. 그러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김종필과도 연합해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이 정치했던 시기와 우리가 정치를 할 시기는 유권자 구성이나 소망, 기술적 환경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대통령은 못했겠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노무현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니다. 그 분이 가고 싶었지만 못 갔던 길을 가려는 거다."
20년전 노무현이 정치를 했던 당시와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한 세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다. 사람들의 소망도 바뀌었고, 사회구조도, 기술도 모두 바뀌었다. 그래서 유시민은 지금 이 시대에 맞게 꿈을 꾸겠다는 것이다.
단 하나 강산이 두번이나 바뀐 20년동안 한국에서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노무현이 끝내 좌절했던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벽은 여전히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당으로 존재하고 있다. 노무현은 자신의 정치인생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 <운명이다> 332쪽
유시민은 노무현이 좌절했던 그 자리로 되돌아가서 서서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20년을 마주보고 있다. 87년 양김 분열 이후 20년간 노무현이 맞서 싸웠던 그 거대한 지역주의라는 벽앞에, 지금 유시민이 외롭게 서있다. 그 뒤에 국민참여당이, 그리고 우리가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