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문학광장 날적이에서 함께 입력된 조이풀님의 글입니다. |
사루비아 다방
조덕섭
삼청동 사루비아 다방에 가 보았는가.
가을같은 봄날에 북악산이 내려와 앉아
목련이 가느다랗게 신음 소리를 내며
마지막 화사를 기억해 달라는 듯
삼청동 고즈녁한 동네 골목
어둑어둑 저녁 되어 가는 시간에
사루비아 다방에 가 보았는가.
고달픈 행인에 지나지 않은 나를 펑퍼짐하게 기다려주고
기다림 속에 정숙하게 마련된 茶를 대하던
그곳에서
사람을 반기는 고전의 곰팡이들이
느닷없이 진보의 번식을 꿈 꾸고
누구의 손 때인지 책들마다 내가 아는 지문들이 남아
홀연히 그립고 그리워지던
아, 오늘같은 봄날에야 가을같은 봄날에야
사십대 중년의 수첩마냥 깨알같은 추억이 맴돌다가는
녹차 향기 찻잔 속에 내 마음 이리 빼앗길 줄이야
예서 나는 누구의 연인이라도 좋았다.
작은 소품이라도 좋았다.
차가 술이 되고 술이 노래가 되던
내가 그 무엇이 되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수필 같았던
삼청동 사루비아 다방에 가 보았는가.
(2011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