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에 다녀왔다.
비가 참 잘도 쏟아지더만...
어떤 배우가 그랬단다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보다 감정을 감추는 연기가 더 힘들다고
난 선천적으로 부끄럼이 많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참 어색하다. 특히나 슬픈 감정은 더욱더..
내가 부끄럽게 숨기고 어색하게 짓는 웃음 뒤에 숨긴 그 슬픔을 비가 나를 대신해 맘껏 표현해준다.
봉하를 가면 다른 곳에 있을 때보다 하늘을 더 많이 본다.
문득문득 솟아오르는 슬픈 감정이 본능적으로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한다.
행사 때 비가 쏟아지는 건 참 싫다.
하지만 행사 때 맞은 비가 참 좋은 적이 있다. 2009년 5월 24일 봉하에서였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순간 쏟아지던 그 굵은 빗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1년에 한 번씩 봉하에서 비를 맞는다.
몸은 본능적으로 비를 피하기 위해 비를 안 맞는 곳으로
또는 우비 뒤로 꼭꼭 숨지만 내 눈과 마음은 항상 그 비를 편안하게 맞고 있다.
모르겠다. 어떻게 세상을 바꿔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귀찮다.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지.
그냥 봉하에 오면 그가 느꼈을 행복이 어떤 건지 너무 잘 느껴지고 그래서 그냥 온다.
그는 자신의 인사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이 청소하면 깨끗해지는 화포천이 있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손수 기른 녹차로 대접하고 싶었고
인간과 자연이 서로 양보한 논에서 자란 쌀로 농민들이 희망을 되찾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거리낌 없는 시민의 한사람으로 사람들과 원 없이 수다를 떠는 것.
그렇게 고난 했던 60평생을 행복하게 마무리 하고 싶었던 그 행복을....
하지만 그잘난 우리들은 그가 운명을 받아들이고부터 온전히 인생을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그에게 그 정도의 행복도 허락하지 않았다. 참 야박하다.
그런 우리들이건만 살아계셨으면 그 비를 맞고 당신을 추모하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미안해했을 그를 만나고 왔다. 사저를 개방한단다. 살아생전에 그가 원했던 거였단다. 다만, 사정상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 모든 걸 다 내놓고 운명을 받아들인 그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