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 파두를 썼더니 이화명충, 물바구미 이런 벌레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거예요. 사람도 파두 1알만 먹으면 뱃 속에
불기둥이 생기는 것처럼 화르륵 타올라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데, 벌레한테도 같은 효과가 있나봐요.”
지난 8월1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논일 하느라 점심때를 놓친 최은주(47)씨가 늦은 점심으로 국수를 말아먹으며 신이 나서 파두의 효험을 설명했다. 파두는 커피콩처럼 생긴 대극과의 한약재다. 독성이 강해 살충효과가 있다. 최씨는 요즘 이런 한약재들로 병충해를 퇴치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직함도 근사하다. ‘생태농업연구센터장’이다. 단, 센터 직원은 그 혼자다.
사실 최씨는 농삿일에는 문외한이다. 그는 한의사다. 지난 2월까지 강원도 원주에서 한의원을 3년간 운영했다. 자리를 잡아가며 입소문을 타 벌이가 쏠쏠했다. 그랬던 그가 돌연 한의원을 정리하고 봉하마을로 내려왔다. “그 분이 가꾸던 ‘앞마당’을 마저 가꾸고 싶었어요.”
최씨가 말하는 그 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레 이 생에서 저 생으로 건너간 뒤, 그는 주말마다 원주에서 봉하마을로 내려왔다. 왕복 620㎞의 거리다. “왜 왔냐구요? 저도 모르겠어요. 한 번 오니, 계속 오게 되더라구요.”
내려와서 한 일은 ‘자봉’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귀향해서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연꽃연못인 ‘연지’ 주변에 각종 꽃나무를 심고, 묘역 주변을 낫질·호미질로 정돈하는 일 등을 주로 했다. 지금 봉하마을에 조성된 ‘노란 바람개비밭’도 자봉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의 결과다. 바람개비밭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 조성돼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봉하마을의 명물 중 하나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보니, 봉하마을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내서 시작한 오리농법을 계기로 ‘친환경 유기농 봉하쌀’을 만들기 위한 좌충우돌이 눈에 밟혔다.
봉하마을에서는 영농법인 ‘봉하마을’을 만들어 주민들이 함께 ‘친환경 봉하쌀’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과 실험을 하고 있다. 어린 오리 농군을 이용해 잡초를 제거하고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하는 오리농법이 대표적이다. 자운영·호밀밭을 일궈 녹색비료로 쓰기도 하고, 우렁이 농법도 도입했다. 올해는 봉하마을 42만평의 논에서 친환경 봉하쌀이 나올 예정이다.
최씨의 눈길을 끈 것은 주민들이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한약재 방제약’이었다. 최씨는 “약재의 효능을 떨어뜨리는 것들을 섞어쓰거나, 사용 목적과 무관한 약재를 쓰는 경우도 많았다”며 “농사일은 잘 모르지만, 한의사로서의 관점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봉하마을에서 생태농업연구센터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봉하마을에 정착한 지 4개월만에 결실도 봤다. 봉하발명품 1호, 물바구미 천연방제약을 만들어 냈다. 물바구미는 농민들의 골칫거리다. 낮에는 잎을 갉아먹다가 밤에는 물 속으로 들어가 뿌리를 갉아먹는다. 논 위에 모내기한 벼가 둥둥 떠나니는 건, 물바구미 때문에 뿌리를 갉아먹힌 때문이다. 봉하마을에서도 물바구미가 고민이었다. 최씨는 살충효과가 있는 사상자라는 한약재와 도포제 역할을 하면서 구충효과까지 있는 양파껍질 끓인 물, 열성이 강해 역시 살충효과가 있는 황토유황등을 섞어 ‘물바구미 천연방제약’을 만들었다. 6월15일부터 24일까지 약 1주일간 봉하마을 유기농 봉하쌀을 경작하는 42만톤에 고루 뿌렸더니 물바구미가 눈에 띄게 줄었다. 농민들도 좋아했다. “제가 내려온 이래로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어요.”
최씨는 요즘 노린재를 없애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고추, 벼 등에 할 것 없이 노린재가 번져서 말썽이다. 최씨는 틈이 날때면 노무현 묘역 연못에 와서 막걸리를 마시며 무슨 약재를 써야 노린재가 없어질까 고민한다.
잘 나가던 한의원을 정리하고 봉하마을에서 ‘농군’이 된 걸 후회하지는 않을까.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단다. 우선, 마음이 편하다. 식물이 환자이기 때문이다. “속을 알기 어렵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고 불리한 것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람보다, 있는 그대로 나타나고 보여지는 식물을 대하니 속이 편하네요.” 또 하나는 삶과 지역살리기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려고 했던 것이 시민민주주의과 더불어 지역 살리기가 아닌가 싶어요. ‘봉하쌀’을 제대로 잘 만들어서 농업 활로찾기·지역살리기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고 싶어요.”
봉하마을/글·사진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