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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의 즐거움/ 이정록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사,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보리누룽지처럼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그게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펄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놓고
머릿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 시집『정말』(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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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있는 개그맨들이 부교재로 써먹어도 좋을 이정록의 시집 ‘정말’에 수록된 시다. 실제로 전유성 같은 이는 새로운 관점의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사물을 다르게 보는 훈련을 하려면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후배들에게 권한다. 개그맨은 시인 못지않게 우리말 보존과 발전에 한 축을 담당해야할 직업이고, 그 전파력은 시인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우리말을 다루는 데 더욱 유념해야 하리라.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어제 우리의 한글날에 ‘우리말과 글이 천시당하는 비극적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남조선의 외래어 남용은 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독’이라며 한국의 언어문화를 비난하고 나섰다. 언론매체를 ‘안 좋은 예’의 주범으로 꼽으면서 ‘인사이드 월드’, ‘뉴스메이커’, ‘뉴스피플’, ‘뉴스라인’, ‘뉴스투데이’, ‘뉴스이브닝’ 등 잡지와 방송 제목, 출판물, 간판들의 외래어 사례를 지적했다.
한글의 보존과 발전만큼은 자기네들이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벌인 선전일 터이지만, 그들 주장에 대꾸할 마땅한 구실이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선 외래어로 표기해야 좀 더 그럴듯하고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아파트 이름을 비롯해 각종 상품명이 그렇고, 아무리 외국인을 의식한 작명이라고는 하나 Hi Seoul, Dynamic Busan, coloful Daegu, Fly Incheon 등 각 지자체에서 사용하는 구호 또한 영어 일색이다.
연초에 KBS에서 우리말 바꾸기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원샷’은 ‘잔털기’로, ‘마일리지’는 ‘차곡돈’ ‘세리머니’는 ‘기쁨짓, ’퀵서비스‘는 ’휙배달‘ ’스킨쉽‘은 ’다솜짓‘으로 고쳐 쓰자는 시청자 의견이 있었는데, 처음엔 어색한 느낌이 들어도 자꾸 쓰다보면 이내 친숙해지겠거니 ’콘돔‘을 ’똘이옷‘이나 ’거시기 골무‘라 이름짓듯 작명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