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경북포항광장 토론광장에서 함께 입력된 아랑아빠님의 글입니다. |
을 며칠전 만났습니다.
포항에 살던 18,9년 전부터 2년 간 드러내지 않고 만나서 운동에 대해서 배우고 따르던 분이
있었습니다.
마비 1급인 지금의 아랑엄마를 만나고서 만나면 늘 그랬듯이 내 생활상 변화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보통때는 조국의 헐벗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 늘 걱정하고 안타까워 하던 그 분이
진도가 더 나갈까봐 경계를 합디다.
그런데 저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남들의 우려와 걱정은 귓등으로 흘리고
아랑엄마 인생에 개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진도 나가는 대로 얘기도 다했습니다.
내가 말을 못 알아 먹으니 어느날 정색을 하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 당신은 조국에 헌신을 해야 할 사람인데 한 여성에게 충실하다 보면 조국을 소홀히 할 수 있다.'
면서 헤어지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결단을 못 내리자 여성회원들이 많은 울산의 노동자 문예단체에 가라고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포항에서 울산으로 말하자면 발령 받아서 가고 지역이 바뀌면서 저를 가르쳐 주는 분도
바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깨어 있는 여성들 많은 곳으로 가면 내가 정리하기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을 했겠지만 예상과 기대는 늘 깨어질 확률이 존재하지요.
지역이 바뀌는 틈에 저는 아랑엄마와 사귀는 것은 기정사실로 했었고 윗선이 바뀌었는데
아마 바뀐분이 전에 만나던 분에게 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었던지 울산에 가고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더라구요.
그 때 울산의 그 단체에서 만났던 여성들이 지금 울산시 각급 기초의회 의원들로 있습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으로요. 아랑엄마 퇴원하고서 울산에서 처음 동거를 시작할 때 제게 쓰던 침대를 준
분은 지금 울산시 동구청장이되었고요. 88년부터 알고 지냈던 형은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이고요.
제게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서 만나던 여성(지금의 아랑엄마)과 헤어지라던 그 분은 민주노동당에서
높은 자리에 있더라고요.
얼마전에 포항의 민주노동당원대상 강연후 뒷풀이에 국민참여당 포항시지역위 모임을 끝내고
다들 뒷풀이 자리에 합석했거든요.
보자 마자 무척 반가워 하면서 제일 먼저 아랑엄마 이름이 맞냐고 물어 봅니다. 정확했습니다.
요즘의 시대상황에서는 이해 될 수도 없는 생활과 조직이 필요했었던 독재 시절을 지낸 두 사람은
이렇게 17년 만에 30명 쯤 모이는 단체회식자리에서야 만났습니다.
2000년 교도소에서 열심히 신문을 보다가 어쩌다가 한겨레 신문에 실린 내 사진을 보고 이사 한 것을
미루어 짐작했노라고 합디다.
저는 그 분의 걱정대로 1급장애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사람을 만날 짬도 없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운동도 사회참여도 안되었는데 2002년에 인터넷 정당을 표방한 개혁당에서는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듯 해서 그 때부터 개혁당,유시민 지지자로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살다 보니 이렇게도 만나는 구나." 하면서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이제사 말이지만 그 때 나름 강고한 조직생활이었지만 제가 만난 분들은 딱 지금
여기서 나라걱정하는 것 처럼 했습니다. 자기 목소리만 내는 게 중요하다면서 일을 그르치지 않았고
원칙 못지 않게 결과를 만드는 것을 중요시 했습니다.
늘 생각 하던 것이 그 때 만났던 분들이라면 지금 국민 참여당에 있어도 딱인데 싶었습니다.
물론 대부분 민주노동당에 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통합을 하면 이런 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며칠 사이 또 작은 걸림돌이 나오기는 했지만 우리는 결국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