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월 하고도 스무나흘, 주책없이 눈은 내리고.....
방방곡곡 세상은 ‘총선’이다 ‘변화’다 말의 향연 속에 정신이 없고, 저마다 스스로의 정당함에 침 튀겨가며 언쟁하는 틈바구니에서 어느 한 곳 제대로 채우지 못한 이들, 스스로 절름발이 장애인 되듯 오갈 곳 없는, 그래서 더 이상 나아갈 길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그 오래된 동화를 뒤로하고 난 잠시 책장을 덮었습니다.
삼월의 삼각산 하지만 이월의 삼각산
세상 사 돌아가는 일이야 인간이 어쩌고저쩌고 끼어들 틈바구니라도 있다지만 자연이 하시는 일이야 어찌 한줌 먼지 같이 미미한 내가 뭐라 말을 자르고 몸짓을 파고들어 주절주절 떠들 수 있을까마는 예가 알프스도 아니요, 히말라야도 아님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고, 계절의 수레바퀴 돌고 돌아 소위 봄이라 칭하는 시간, 춘삼월도 산마루에 다다른 스무날이 지난날에 삼각산에 흰 눈이라면 어찌 말을 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놀랍다고 말 한다는 것이, 경이롭다고 말한다는 것이, 눈앞에 펼쳐진 저 진저리나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감히 내가 내 뱉을 수 있는 단어의 거의 전부라는 게 오히려 창피하고, 부끄럽고, 고개 숙일 일이란 것 외에는 .....
남들은 선거다 뭐다해서 부지깽이라도 빌려야 하는 바쁜 나날의 연속임도 알고, 나또한 그에서 마음 한구석 결코 자유롭지 못한 미안함 마음 없지는 않다만, 굳이 핑계 삼아 이야기 하자면 도피도 아니요, 회피도 아닌 그저 잠시 세상의 무거운 짐 발치에 놓아두고 좋은 사람과 좋은 이야기로 행복했음 하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떠나는 짧은 여행길에 저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은 축복인지 가슴 저미는 아픔인지 알 수가 없었지요. 춘삼월 그것도 사월을 코앞에 둔 시간에 눈부시게 빛나는 백발을 머리에 인 삼각산은 충격이었습니다.
출발이 그래서였을까요?
파란 하늘과 하얀 산봉우리 그리고 뭉게뭉게 흘러가는 구름은 가히 선경이었습니다. 다른 말이 뭐가 필요할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친구와 상쾌한 바람, 그리고 달리는 자동차가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가벼운 색깔들. 문득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색채입니다. 바람마저 연초록으로 물들일 것 같아 차마 차 창 밖으로 손을 내밀 수 없는 봄날입니다. 경쾌하게 울부짖는 자동차의 엔진음이 심장을 떨게 합니다. 삽질공화국이란 명성에 걸맞게 도로는 깨끗하게 정비되어 속도감을 즐기기에 충분했고, 도란도란 뒤에 앉은 낯익은 목소리는 정겨움을 더해줍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욕심이나 좌절 그래서 격앙되거나 슬플 이유 따위는 필요 없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춘천방향 마석 인터체인지를 나서며 미간을 찌푸립니다. 비록 그 찌푸림이 오늘 이 짧은 여행의 즐거움을 해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좌우지간에 가뜩이나 더러운 내 인상에 스크래치를 냅니다. 소위 ‘민자’유치가 만들어내는 짜증입니다. 몇 킬로미터 되지도 않는 거리를 가는데 세 번의 도로요금을 냈지요. 여기서도 요금, 저기서도 요금입니다. 아마도 경부고속도로의 끝, 부산을 이런 식으로 간다면 도로요금만으로 차를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봄날에 내린 눈보다야 더하지는 않겠지만 이 무서운 요금에도 충격을 받았지요. 국가에서 해야 하는 국가기간망의 모든 것을 사유화해서 돈을 뜯어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 많이 내는 세금은 아니지만 내 세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그래서일까요. 한 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그리도 곱던 파란하늘과 흰 구름은 온 데 간 데 없고 먹구름은 눈발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축령산자락, 지축을 울리며 몽골기마대가 달려오고.....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 봄이 맞았습니다. 집에서 나올 때에 분명 삼월 이십사일을 보고 나왔지만 산봉우리마다 눈이요, 거세게 부는 바람결엔 하얀 눈이 흩날리고 있으니 봄일까요, 겨울일까요. 세상이 온통 헷갈리는 일뿐입니다. 정신 줄 놓고 잠시만 멍하니 계셔보세요. 아마 집도 찾아가지 못할 황망함을 느낄지도 모를 요즘입니다. 좌우간에 그렇게 도착한 아담한 골짜기엔 겨울바람이 한창이었습니다.
양을 키우고 말을 키우는 유목민의 낯선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생소한 맛에, 생소한 조리법이지만 그래도 제법 입맛에 맞았지요. 어찌 삼백육십오일 김치에 밥만을 고집할까요. 이렇게 낯설고 생소한 음식으로 위라는 녀석과 대장과 소장 등등 긴장의 끈 놓고 사는 녀석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재미도 있어야지요. 물론 그로인한 탈이야 고스란히 섭생의 죄를 지은 본인의 몫이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역사관과 생물자원관 그리고 몽골유목민의 전통 천막인 ‘게르’도 보았지요. 인종이 많으니 살아가는 방식도, 먹는 모양새도 제각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백 명이 길을 가면 백가지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다양함은 건강한 사회의 척도입니다. 획일화와 단일화가 만들어가는 순간의 집중력보다 후에 만들어지는 폐해가 백배쯤 더 클지도 모릅니다. 다양함을 숭상하는 진보주의자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삼라만상 모든 것을 존중하며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임에야.....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윙윙 떠돌며 군무를 추는 시간, 몽골민속공연이 시작됩니다. 고비사막이나 초원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지요. “그래, 민속공연이란 게 뭐 있겠어. 그저 음악과 춤, 거기서 거기인 퍼포먼스가 있을 터이고, 생소함이 주는 지루함에 난 하품과 함께 까박까박 졸음에 고개를 떨구겠지”하는 생각도 잠시. 뭐랄까요. 한번 듣도 보도 못한 음악에 춤인 것은 분명한데 심장이 요동을 치고 있었습니다. 시키지도 않는 뭔가 계산되고, 생각한 이후의 반응이 아닙니다. 하긴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본디 그렇지요. 어디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이 감정인가요. 그저 똑똑한 척 거들먹거리는 이성의 꼬라지가 계산된 행동이지요. 두 줄 현악기인 ‘마두금’이란 조그만 악기 하나가 공연장을 채웁니다.
웅웅 둥둥 현을 누르고 활대로 키는 몸짓에 따라 팔색조의 음색을 자랑합니다. 그 조그만 몸통에서 소리는 어찌 그리도 대단하고 웅장한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조화.....신의 조화라고 할까요.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소리가 들립니다. 다그닥 다그닥, 우우웅 쿵쿵,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기마대의 급박한 소리가 단지 두 줄 ‘마두금’에서 메아리치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수말의 말총은 한 현에 130여 가닥, 암말의 말총은 한 현에 140여 가닥을 꼬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초원을 주름잡던 그 기상이 악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도 아직 숨을 쉬고 있나봅니다. 영원한 울림. 두 줄로 만들어내는 중저음과 고음의 절묘한 조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조화를 보는 듯, 그랬습니다. 저는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심장이 반응을 했습니다. 조화를 이루는 데에는 많은 장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구나. 단지 대지를 달리던 말총 두 줄기와 그를 어루만지는 사람의 심장이면 족한. 그래서 더 없이 정갈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화음. 남녀의 사랑이 이만큼 조화롭다면 ‘천생연분’ 이외의 다른 말들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싸움, 미움, 질투, 시기, 그래서 빚어지는 아픈 이별 등등.
상상은 상상을 낳고, 공상은 또 공상을 낳지요. 맞잡은 마눌의 손에 온기를 더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 천상의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의 성대에서 만들어지는 소리가 저럴 수는 없다 생각했습니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허파의 꽈리세포를 돌고 나온 탁한 공기를 내뱉으며 발생하는 성대의 진동. 그게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립니다. 보통은 그렇지요. 해서 한 번에 비명소리를 내지르던,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던 한 번에 한 음색입니다. 하지만 내 심장을 파고들어 붉은 선혈 뚝뚝 흘리게 만든 소리는 한 번에 두 음색입니다. 그것도 가장 극명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최저음과 최고음이 잇새를 삐져나와 나의 귓전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허미’라고 했던가요.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자유롭게 내달리는 모든 자연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바람도 불었습니다. 그 바람결에 흔들리는 푸른 초목이 있었고, 맨발로 초원을 내달리는 아이들의 깔깔거림도 있었지요. 그뿐인가요. 시리도록 파란 몽골의 하늘을 종종거리던 종달새의 지저귐도 있었습니다. 자연을 아우르는 천상의 소리, 그것을 몽골인 들은 ‘허미’라고 말을 했습니다. 살랑살랑 귓전을 울리는 바람 같기도 했고, 일순 가슴을 후비는 귀신소리 같기도 했지요. 모골이 송연해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동이다’ 그저 그 말에 말을 더해도 ‘정말 감동이다’라고 말을 할뿐.
몽골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가리켜 ‘무지개의 나라’라고 했던가요. 저는 몽골을 가리켜 ‘조화의 나라’라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요란스럽지 않은 단순함이 삼라만상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조화. 하늘과 땅이 맞닿은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키워낸 가슴이어야 만들법한 조화의 소리가 지축을 울렸습니다. 남양주의 조그만 골짜기에서 만난 몽골은 그랬습니다. 때론 지축을 울리며 세계의 반을 주름잡던 패기와 자연과 하나 되어 스스로 자연으로 소멸할 줄 아는 멋들어짐을 아는 특이한 족속. 그 족속을 가슴에 담은 짧은 1박2일의 축령산 여행은 충격입니다.
가슴을 울리던 그 충격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내 재주도 충격입니다. 그저 멍하게 행복했던 시간이 오늘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장황하여 오히려 초라한 내 글과 대비되던 마두금의 선율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