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때도 절망과 무기력감에 빠질만한 상황이었습니다. 2359명중 2명 무효, 반대도 아니고..2357표 찬성! ㅠ.ㅠ 이런식으로 대통령을뽑고, 그 대통령 아래에 또 다시 뽑히는 대의원들은 모두 현 대통령지지자드리니 그들 손에서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선거도 하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었습니다.
또 그런 비슷한 억지 선거는 전두환에게서 계속 되었습니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군부의 강압에 의해 사임하고 이로부터 6일이 지난 8월 22일 육군대장으로 예편하였다. 대장으로 진급한지 불과 17일만의 일이었다. 같은 해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 제7차 회의에서 대통령선거 단일후보로 나서 2,524표를 얻어 99.9%의 득표율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당선에 즈음한 담화〉에서 "국정운영에 있어 항상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직하고 능률적인 정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980년 9월 29일 대통령 임기 7년 단임과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출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되었고 이에 따라 10월 22일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우리 나라 투표사상 가장 높은 95.5%의 투표율과 91.6%의 찬성율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10월 27일 새 헌법이 공포되었다. 1981년 1월 15일 창당된 민주정의당 총재에 추대되었고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1981년 2월 25일 대통령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다. 이 선거에서 총선거인 5,277명 가운데 5,271명이 투표에 참가하였고 투표자의 90. 2%를 얻어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발췌>
이것이 지난 역사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을 뽑고 뽑힌 거짓말 같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한 국가의 모든 언론 방송 학계가 자발적으로, 혹은 못이기는척 조작하고 국민 전체가 무기력하게 대들지못하면서 만든 역사입니다. 굴욕과 수치의 역사, 불과 반세기, 50년도 안된 역사...
그런 좌절의 시대도 이기고 지금의 희망을 얻어냈습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도 거치고 밀고 당기는 막상막하의 대결도 가능해진 것입니다. 더구나 점점 외연이 넓어지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상도 많아지면서 바른 결정들이 대세를 이루는 날이 더 다가올 것입니다.
<1997년 프랑스 교포 김제완씨의 헌법소원 제기로부터 시작된 재외교민 참정권 회복운동은 이로써 10년 만에 결실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헌재의 결정을 토대로 2009년 2월 12일 공직선거법 제37조 제1항(주민등록 등재여부로 선거권 행사 결정) 및 동법 제38조 제1항(국내거주자에 한하여 부재자 신고 허용)이 개정돼 재외교민에게도 투표권이 사상 처음으로 주어졌습니다.
아울러 국내 영주권 자격을 취득한 지 3년이 경과한 외국인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지난 4월 11일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처음으로 재외교민의 투표 참여가 실현된 것입니다. 재외 부재자투표는 앞서 소개한 대로 1960, 1970년대에도 있었지만 재외교민의 투표참여는 이번이 '사상 처음'인 셈입니다. 출처 : 박정희는 왜 '재외국민 투표' 폐지했나 - 오마이뉴스 >
한 번의 총선 패배나 과정상의 불협화음, 야당의 모자라는 뻘짖 행태... 그래도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고 새로운 희망의 상황들은 펼쳐질 것입니다. 다만 포기하거나 등 돌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산다는 전제아래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