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경기파주광장 토론광장에서 함께 입력된 동현아빠님의 글입니다. |
유시민에 대한 단상
나는 85년에 대한민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2001년에야 귀국했기 때문에 유시민의 등장과 그 발전 과정을 상세하게는 모른다. 그가 항소이유서를 썼던 85년 봄에는 유학 준비로 분주하여 사회 현실 돌아가는 것에 약간 등한히 하던 때라 항소이유서를 알지도 못한 채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그래서 내가 유시민을 알게 된 건 미국에 있을 때였다. 가끔 언론에 등장하는 그를 눈여겨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별로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않는 나로서는 토론에서 사회를 잘 보고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는구나 하는 정도 이상으로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유시민에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개혁국민정당을 조직하고 정치 일선에 나서면서부터였다.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옳지 않은 말이 없었다. 지금 그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한국 정치지형에서 저런 사람이 정치 일선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나 스스로 정치 일선에 나설 생각은 꿈에도 갖지 못했다. 정치는 상당히 고단수의 술수와 음모와 협잡의 기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이런 기술이 없는 정치인이 성공한 사례를 찾기가 지극히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김영삼은 물론이고 김대중 대통령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정치 지형과 상황은 부패와 타락과 떳떳치 못한 밀실협상으로 얼룩져왔다고 하겠다.
이런 나의 한국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특히 유시민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의 언행에서 부정과 부패는 물론이고 적당한 타협과 협잡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정치적 성공이 우리나라 정치사를 새롭게 쓸 계기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의 행보를 주시해왔다.
정말 당원들이 주인이 되는 민주적 정당을 목표로 창당했던 개혁국민정당이 창당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체하고 민주당과 합당한 것은 지금도 말들이 많다. 내가 그 당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상적인 모범 정당을 만들어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자는 뜻은 좋았지만 현실적으로 괴리가 너무 컸고, 또 당장 노무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정치세력도 필요했기에 내부 논의를 거쳐 전 당원들에게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물어 당을 해체하고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여기서 잠깐, 유시민이 개혁국민정당을 해체하고 열린우리당으로 갔다가 다시 국민참여당에 합류하고 또 국민참여당을 민주노동당과 합당하도록 한 것을 두고 당을 깨는데 선수라는 비난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다. 유시민의 이런 행보가 다 이유가 있고 특히 앞서 가는 사람으로서 전위적 정치행위를 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없을 수 없고 실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을 깨는 데 선수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설사 그가 개혁국민정당과 국민참여당을 깼다고 하더라도 과거 우리나라 정치에서 정당을 말아먹고 깨는데 일조 안 한 정치인이 누가 있는가? 공화당이 민주정의당이 되고 민자당이 되고 신한국당이 되고 한나라당이 되고 새누리당이 된 것은 당이 사라지지 않고 전부 새로 생긴 당인가? 모두 그 당에 속한 정치인들이 정치 잘 못해서, 그래서 당을 말아먹어서 새로 창당한 것 아닌가? 최소한 당명 개정이라도 한 것 아닌가?
민주당도 과거 민주당에서 시작하여 신민당, 평민당, 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민주통합당 등으로 변모하여 왔다. 이들 모두 그 당에 속한 정치인들이 역시 정치를 제대로 못해서 자의반 타의반 당을 말아먹고 재창당하거나 당명을 개정했던 것이다. 대다수 정치인들이 이런 변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게 단체로 당을 말아먹고 새로 시작하는 건 당을 깬 것이 아니고, 새로운 상황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실험적으로 전위적 정치행위를 하느라 새롭게 시작하는 건 당을 깬 것이라는 구분은 도대체 누가 정한 룰인가?
그래도 유시민은 당을 말아먹은 적은 없다. 차떼기, 부정선거 등으로 도저히 회생할 길이 없어 재창당하거나 당명을 개정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앞으로의 정치 지평을 새로 열기 위해 발전적으로 해체하거나 합당했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숱하게 당을 깨는 선수라는, 대통령병 중환자라는 오명을 덧씌워 온 역사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권력에 집착하고 정권을 잡는데 혈안이 되었던 김영삼과 이명박과 박정희에 대해서는 대통령 병 환자라는 말 하는 걸 듣도 보도 못했다. 참 아이러니다.
이제 유시민에게도 그런 오명을 덧씌우는 것을 여기저기서 본다. 물론 유시민이 대통령 병에 걸려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가 대통령 병에 걸렸다면 민주당에 남아서 박지원과 타협하고 정동영, 손학규 등과 협력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대통령 병에 걸려있으면 어떠냐? 문제는 어떻게 되려느냐는 데 있지 대통령 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권모술수와 협잡에 의해서 대통령이 되느니 차라리 안 되겠다는 쪽을 택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고 본다. 따라서 대통령 병과는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판단하는 것이다. (진정한 대통령 병 환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다. 독재자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박근혜와 자기 입으로 BBK 설립했다고 해놓고 그거 아니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대통령 된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유시민에게 확실히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 당시 대표가 실용적 개혁을 부르짖으며 사실상 한나라당과 야합정치를 도모할 때였다. 거의 모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실용적 개혁 노선을 따라갈 때 거의 유일하게 그 노선에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이 유시민이었던 것이다. 실용적 개혁이란 개혁을 안 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란 게 그의 당시 주장이었다고 기억된다. 개혁에 무슨 실용적이 있고 비실용적이 있는가? 개혁은 개혁일 뿐이다. 실용적이란 한나라당과 적당히 타협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개혁하는 듯이 보이고 실제로는 같이 권력의 단물을 나눠가지겠다는 뜻 외에 무엇이겠는가? 참 실용적이기는 하겠다마는 개혁은 물 건너가는 거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는데 똑 같은 판단을 유시민이 한 거다. 나는 그 단물을 단 한 모금도 맛볼 수 없는 위치에 있으니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유시민은 권력의 핵심에 접근한 인물 아니던가! 얼마든지 그 논리에 부화뇌동하여 단물 맛을 흠뻑 취하도록 볼 수 있는데 그가 정면으로 그 단물에 도전장을 던진 거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관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유시민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누군가가 유시민 편을 들기는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여튼 유시민은 그 당시 거의 완전 고립되다시피 하면서 단물 맛을 즐기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공적이 되었고 그는 그 상황을 흔들림 없이 견뎌냈다. 이때부터 나는 열성적 유시민 지지자가 되었다.
물론 그에게도 실수가 있고 잘못도 있다. 정치는 현실인지라 아무리 뜻이 좋아도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정치인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 시절, 참여정부의 권력의 핵심에 접근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가 한미 FTA를 반대하지 않고 찬성했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실수였거나 잘못이었다. 역진방지 장치나 ISD나 네거티브 방식 등은 굳이 경제학자가 아니어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참담한 조항들이었다. 직접 정책 담당은 아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정책도 그리 칭찬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최 측근의 한 사람으로서 전반적인 정책에 대해 일정 정도 책임을 느끼고 또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최고의 가치를 꼽으라면 정직성과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라고 하겠다. 정치인이 정직하지 못할 때 어떤 재앙이 오는지 우리는 지금 절절이 겪고 있다. 원칙을 버릴 때 어떤 상황이 오는지 참여정부를 통해 잘 배웠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특검이나 파병이나 한미FTA 이런 문제는 원칙을 버린 데서 온 실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북송금은 특검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대외적 행위에는 무엇보다도 국익이라는 원칙이 우선하기 때문에 개인적 비리가 얽혀있지 않는 한 국내법을 적용해서 특검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비 원칙적이라고 본다.
유시민은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인생행로에서 최대의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 그것은 진보정당과의 합당을 통한 새로운 정치 지형의 시도이다. 그 시도가 시작하자마자 암초에 걸렸다. 혹자는 그런 진보정당 내부의 문제는 적당히 타협해서 넘어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시민의 문법에는 없는 말이다. 적당히 타협하고 야합할 것이면 그가 왜 이 짓을 하겠는가? 그 스스로도 그럴 거면 박지원 원내대표를 도우면서 민주당에 있지 왜 여기 있겠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 통합진보당이 과거 80년대부터 누적되어온, 독재정권과의 싸움에서 낀 찌꺼기와 때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면 그의 정치실험은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안 된다면? 어쩌겠는가! 그가 전지전능한 신도 아닌 다음에야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밖에...
마지막으로 유시민에게 딱 어울리는 성서의 말씀 한 구절을 소개하겠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복음 10: 34).
불의와 부패와 부정과 야합이 판치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이것들을 더욱 조장하는 짓이며 그런 세력과 한 편이 됨을 말한다. 따라서 예수는 이런 세상에 검을 주러 왔다고 말했던 것이다. 나는 유시민이 대한민국 정치계에 불의와 부패와 부정과 야합과의 평화공존 보다는, 실용적 개혁이라는 수사 밑에서 단물을 빨아먹는 것보다는, 이들과 맞서는, 검을 가지고 싸우는 검투사로서 살기로 작정했다고 본다. 이런 그가 열린우리당 시절 동료 의원들 눈에는 얼마나 눈엣가시로 보였을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