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경북광장 토론광장에서 함께 입력된 아랑아빠님의 글입니다. |
북포항 cgv에서 영화 26년을 보았다.
아랑이도, 아랑엄마도 20명 남짓한 관객도 모두 몰입해서 보았다.
영화는 과연 잘 만들었다. 진구도,한혜진도 심지어 전두환 역을 맡은 배우까지
모든 배우들이 실감나게 연기를 잘 했다.
영화와는 달리 전두환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을 아는지라 결론이 어찌 날 지는 알지만
그래도 한헤진이 전두환이 탄 차에 총을 쏠 때면 내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간다.
영화가 다 끝나고 아랑이가 묻는다. " 근데 아빠 영화에서 말하는 저 사람이 박정희야?
전두환이야? "
실제로 전두환 사저 경비가 삼엄하다고 하지만 그가 다니는 모든 길을 막을 수는 없을테고
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않을 수는 없을테니 정말로 영화처럼 그를 직접 단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화같은 일이 불가능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맺고 끊는 것에 약한 사람들이 사는 우리 나라에는 죄를 단죄하고 정리하기 보다는
그저 시간이 흐르고 피해자들은 자기 가슴에만 묻어두고 꺼내지를 않는다.
일제때 친일파로 독립군 토벌하던 자들이 해방이후 친미와 반공으로 깃발을 바꿔가며
계속 떵떵대며 산다. 노무현 대통령 때에 이르러서야 역사가 바로 잡히나 했는데
수구세력의 압도적 힘 앞에 그 뜻을 다 펴 보지도 못하고 좌절되었다.
9시 10분 경 극장에서 나와서 집으로 오다가 라디오를 켜니 마침 대선후보 토론이 한참이다.
이정희 후보가 박그네에게 묻는다. "외교의 기본은 주권을 지키는 것이다.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거다. 한국이름 박정희..." 사실 박정희를 일본말처럼
발음하면 나오는 소리인 다카기 마사오 같은 이름은 식민지 시대에 우리 선조들중에는 많을 것이다.
그 보다는 오카모도 미노루라고 박정희가 일본 육사에 지원하기 위해서 명성황후 시해낭인의
이름을 따서 두 번 째로 이름을 바꾼 그 행위 자체가 박정희의 본질을 잘 설명하지만 하여튼
지금 이 나라에 사는 한국인중 일본이름을 따로 가진 사람이 없는 현실에서 다카기 마사오를
외친 이정희 후보, 하여튼 오늘 애 많이 썼다.
친일파에서 남로당으로 다시 동료를 배신하고 반공의 기수로 배신을 밥먹듯이 하고 수 많은 사람을
핍박한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아버지 정권이 무너진지 33년 만에 제 1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출마했다는 사실 자체가 민족정기와 역사에 관해서 엉클어진 우리 나라의 비극이다.
80년대 중반 잠깐 대학생활을 한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니고 80년에는 고작 중 1 이었지만
그 아픔을 극복하는 것과 학살의 원흉 처단이라는 당시 대학생들의 보편적 바람을 느끼면서
살아 왔었다. 그 때는 모든 집회에서 " 광주의 2천 영령을 학살하고 등장한 군사독재정권은..."
유인물의 앞 부분은 거의 이런 식이었었다. 운동권이건 아니건 집회장이건 술집이건 '5월가'는
기본으로 불렀다.
그런데 26년 영화가 상영되는 80년 광주 항쟁이후 3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학살자들이
아직도 고개를 들고 다닌다. 학살의 원흉중 그 누구도 영화의 계엄군 출신 회장 (이경영 분) 처럼이라도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했다는 자가 없다.
과연 이 역사가 언젠가 바로 잡혀 질 것인가?
잊지 말자. 김근태가 발가 벗겨져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한 게 고작 27년 전이다.
그에게 고문을 했던 이근안은 잠시 수형 후 목사로 변신해서 아직도 자기가 한 일 들이 애국이었다고
하고 있다.
선량한 시민을 향해 총을 쏘고 대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쳐서 수 천을 살해한
5.18 광주가 불과 32년 전이다. 그 때 양민학살의 발포 명령자들이 아직도 떵떵 거리면서 살고 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광주 영령의 붉은 피는 과연 헛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