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권력에 부당시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면
유감을 느끼고 저항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그것 또한
영적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즉 양심이 무뎌진 상태가 영적 나병에 걸린 상태입니다. 더 이상
이웃의 아픔을 보고도 찔리는 게 없는 상태 말입니다. p170
불의하거나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이 자신에게 생겼을때 겉잡을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됩니다.
격분하게 되지요. 침묵하는게 맞고, 부러워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얼마나 어려운 일인 것일까요.
저같은 경우는 동생하고도 한번 다투면 오해가 풀릴때까지 대화하고 싸우고 서로 지지않으려고 하다가
30분이고 1시간이고 서로의 입장을 다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고 나서야 미안하다고, 오해했다고 하고나서야 서로 펑펑울고, 화해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애정결핍이라서 이렇게 서로 지지 않으려고 다투고 남들이 보면 웃을지도 모를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가슴아파하며 이런다고 웃습니다.
쉽게 화해가 안되죠. 사회에서 처럼 변명의 여지따위 통하지 않고, 보이는 데로 거슬리는데로 지적받고
고치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지내는것에 지쳐있다가(물론 그게 맞고, 그래야 사회생활이고 그래야 굴러가는거지만요) 동생에게 까지 자매 사이에서까지도 서로 긴장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거냐고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다보면.. 비로소 오해가 풀리고 울고나서 화해를 합니다. 이게 오늘 있었던 일이네요.
오늘 한겨레 사설에서는 생명과 평화 정의에 대한 사설이 실렸습니다.
그모든것을 가능하게 하는건 사랑이겠지요.
이책의 주제도 사랑입니다.
남수단 톤즈 아이들의 눈망울을 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것으로 볼수 있다니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저는 같이 일하는 분들이나 동생 아버지 어머니를 정말 동네이웃분들보다도
못하게 대합니다. 부끄러워 지는 순간이죠. 일을 제일 사랑하는것 같습니다.
혜화동 성당에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 두분이 종탑에서 며칠째 추위와 바람속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 꼭대기로 올라가셨습니다. 직장근처인데도 늘 지하철타고 집으로만 내려옵니다.
부디 건강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당근처는 못갔어요. 직장에서 몇걸음만 걸으면 코앞인데도요.
이분들의 맘이 상처로 얼룩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퇴근길에 잠깐이라도 가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