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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은퇴
유시민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주목할 만한 중량감 있는 정치인 중에 그 시작과 끝을 모두 온전히 지켜본 첫번째 사례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며, 유시민 또한 언제 갑자기 다시 현장으로 불려 나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 그를 현실 정치판에서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은 아무래도 거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몇번이나 은퇴를 번복했던 김대중과는 사뭇 다른 케이스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시작은 바로 이것이었다.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 앞에 서는 심정으로..
아니 그 이전에 이미 그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적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이며, 그 원본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
뭐 대략, 정치인들은 보통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요 정치인의 밑에 들어가서 보좌관 생활부터 시작하거나, 혹은 발탁, 영입되어 정치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유시민은 그런 거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이제부터 정치를 할 거란 말이다, 라고 외치고 정치를 시작했다.
마무리 역시, 더 늦기 전에 이 바닥을 뜨겠다, 는 짧은 트윗 하나로 마무리 했다. 물론 우측 상단의 초록색 화살표는 내가 저 트윗을 리트윗 했을음 알려주는 것이다.
졸라 쿨하다.
어쩌면 그의 정치 인생을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 자체가 이 쿨함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쿨해서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그 쿨함을 용납하기 힘든 꼰대들에 의해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던 정치인..
그게 바로 유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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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기 이전에 유시민은 저술가였다. 칼럼니스트였고, 필자였으며, 잘 기억들을 하지 못하시겠지만, 소설가였고 드라마 작가였다.
노태우의 6.29 선언 직후, 당시 학생운동 관련해서 수배중인 신분이었던 유시민은 MBC의 8부작 미니시리즈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 라는 드라마의 각본을 썼다. 제목이 마치 "그것은 알기싫다"를 연상케 하는 것이지만, 드라마 자체는 나도 전혀 기억이 안난다. 이게 1988년의 일이다.
또, 1989년에는 "신용비어천가"라는 단막극의 각본도 쓰게 된다. 앞선 드라마는 유지수라는 가명으로 쓰고, 신용비어천가는 본명으로 쓴다. 이 때, 유시민이 수배중의 신분으로 MBC를 드나들기 위해서 뽀글이 파마를 하고 다녔다는 얘기는 지금도 우스개 소리로 돌아다니곤 한다. 참고로 이 신용비어천가는 다름 아닌 문성근의 티비 드라마 데뷔작이라고도 한다.
또 1988년에는 "창작과 비평"에 중편소설 "달" 이라는 작품을 싣기도 한다. 이 정도면 등단한 소설가 맞다.
각본에 소설 말고도 그가 언론에 기고했던 수많은 칼럼들은 유시민이 전문 글쟁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거기다가 심지어 그 글들은 꽤 훌륭한 수준이었다. 내 판단이 아니라 일반적인 판단에서 그렇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시민은 말을 무척이나 잘한다. 내용은 둘째치고 원고도 보지않고 두시간 넘게 진행하는 강연에서도, 그가 한 말을 다시 녹음해서 들어 봤을 때 문장 구성이 잘못된 비문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인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정치인이 되어 발표하는 얘기들은 다 스탭들이 쓰고 가다듬는 법이니까. 하지만 말을 잘한다는 것은 대단한 덕목이 된다. 김대중이 그랬고, 노무현이 그랬다. 그러나 유시민에게는 이 "말을 잘한다" 라는 것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말 더럽게 못하는 이명박이나 박근혜도 권력은 잘 잡는 걸 보면, 말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덕목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졸라 땅투기를 잘해서 떼돈을 벌었다거나, 아부지가 독재자였다거나..
"그렇게 바른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라는 것이 유시민의 말 잘함에 대한 보답으로 돌아온 정치권의 평가였다는 것이 그 점을 입증해 준다.
말 뿐이 아니다. 그는 행동도 독특하게 했었다.
유명한 빽바지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고, 그 밖에도 수많은 자극적 문장들을 역사에 남기게 된다.
(참고로 빽바지 논쟁은 유시민이 최초로 국회의원이 되어 국회에 나와 선서를 하면서, 국회는 나의 일터이니 일하기 좋은 복장으로 출근하는게 맞다는 이유로 다들 입는 어두운 색의 정장이 아닌, 흰색 면바지 차림으로 나왔던 사건을 둘러싼 논쟁을 의미한다.)
유시민 어록이라고 검색하면 유시민의 말들은 쏟아져 나온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한 때 정동영에게 붙여줬던 곶감이라는 별명도 유시민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며, 전여옥에게는 "전여옥이 진보면 나는 체게바라다" 라는 말도 던진 적이 있다.
그의 말들이 다 옳지는 않았었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파문이 심해질 때, 그는 황우석의 논문 조작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도한 MBC의 피디수첩 팀을 비난하기도 했었다. 언론의 자유가 너무 발달해서 부패하고 있다고..
정리하자면, 그는 글과 말에 대한 능력이 매우 훌륭했다. 글로 유명세를 얻었고, 글로 정치를 시작했으며, 말로 지지자를 모았고, 말로 격렬한 반대자들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단 세 문장의 글로 정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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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초기 개혁당을 거쳐 열린우리당 내부의 참정연(참여정치연구)그룹을 형성했었고, 그 뒤부터 지금까지 "시민광장"이라는 명칭의 모임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진짜 유시민은 정치 하기에 가장 좋은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노시민이나 구시민도 아니고 유시민이라니..
그의 이름을 딴 모임인 시민광장도 얼핏 들으면 시민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집단처럼 들리는 것도 재미있다. 그 시민광장에 모인 사람들과는 겹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집단이 바로 과거 국민참여당, 그리고 지금은 진보정의당으로 옮겼건, 아니건 참여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유시민을 비판, 아니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된 흐름은 과거 민주당 내부에도 두가지 흐름이 존재했었다. 하나는 구 민주계 사람들, 그리고 오히려 구 민주계보다 더 가혹하게 유시민을 비난하던 친노계열 내부의 경쟁자 그룹.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참여정부 시절에는 이들을 국참계열이라고 불렀던 기억은 난다.
또 있다. 유시민이 최초 참여해서 만들어졌던 구 개혁국민정당, 이 개혁당이 해산을 결의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과정에서 상처받고 버려졌던 개혁당 잔류파들은 지금도 유시민이라면 이를 북북 간다.
거기에 또 있다.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가 다시 해산하는 과정에서, 이석기, 이정희등의 세력은 유시민을 증오에 가까운 느낌으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은 "정당 브레이커"라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별명을 얻게 된다.
얼핏 보면 지지자들보다 반대자들이 더 다양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숫자의 비율로 보자면, 결코 무시하기 힘든 정치인이 바로 유시민이기도 하다.
유시민이 최고의 지지율을 보인 순간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라고 볼 수 있다. 그 때만 해도 정치권 출입하는 기자들은 백이면 백 모두 차기 야권주자는 유시민이라고 예측을 했을 정도로 유시민에게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비장한 태도로 걸어가는 유시민의 모습을 담은 사진 속에서,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을 슬퍼하고 복수를 기대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시민이 그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발견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이라는 거대 야당 세력과 함께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유권자들은 힘없는 정치인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이상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철칙을 가지고 있었고, 유시민이 했어야 하는 역할은 문재인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다.
유시민에게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라는 쓴잔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 내리막길을 돌려 세우기에는 유시민의 지지자들의 힘이 너무 약했다. 국민참여당에는 한나라당에도 못가고 민주당에서도 공천받지 못하는 3류 지방 정치인들이 모여 들었고, 유시민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했던 경향이 있었다.
그 이후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은 결국 진보세력의 통합이라는 이루기 힘든 선택을 하게 되고, 그 결과 통합진보당이라는 기형적인 정당이 다시 생겨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던 대로 통합진보당은 오래 가지 못하고 붕괴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은 또다시 많은 희생을 감수하게 되고, 앞날을 도저히 예측하기 힘든 수준으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만다.
이 상황이 유시민을 오늘의 정계은퇴 선언을 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불운하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정치적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유시민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안타까운 맘이 들면서도 그의 정계 은퇴를 말리지 못하겠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그냥 가면 안된다. 적어도 한 때 세상에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정치를 했던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최소한의 의미 하나는 남겨 주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알려면, 그가 짧지 않은 정치 인생속에서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어했던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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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정치인을 얘기할 때에는 그가 어떤 주장을 하는가에 앞서 일단 먼저 돈과 재물에 관련된 부정부패 얘기를 먼저 하게 되기 마련이다. 보통은 그렇다.
하지만 유시민은 그 시작과 끝이 다른 만큼 이런 문제에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유시민을 치를 떨며 비난하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적어도 부패에 관련한 문제만큼은 유시민을 욕하지 않는다. 아니 유시민이라는 이름과 부패를 연결시켜 상상하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은 뭐 별로 말할 이유가 없고..
민주당의 수많은 정치인들도 이런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노태우에게 받았던 돈 문제로 인해 상당한 이미지 손상을 겪은 적도 있었다.
심지어 진보의 한 축을 이끌어 왔던 NL계열 정치인들 조차 선거판만 벌어지면 숟갈을 얹고 덤비는 NL계열 선거 장사꾼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판 아닌가 말이다. 노동계 역시도 대기업 노조의 부정과 부패 얘기는 언제나 한쪽 구석에서 우리를 아프게 하기 마련이다.
최소한 유시민에게는 이런 면은 없었다.
이거 하나만 가지고도 유시민은 다른 어떤 정치인과 차별되는 호의어린 평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런 부분은 아주 쉽게 넘겨 버리고 미처 떠올리지도 않는다. 유시민은 뭐 당연히 부패하지 않도록 태어난 사람이거나 부패하면 당장 벼락맞고 죽을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그 정도로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정치인이 돈 문제가 깨끗했다는 것, 이거 진짜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일단 이 부분에서 칭송은 한 번 해 주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면 일단 유시민은 돈 안드는 정치, 돈 안쓰는 정치를 하고 싶었고, 그걸 실제로 보여준 셈은 된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역시,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펀드를 모집했었다. 이 선거펀드의 개념 또한 유시민의 작품이다. 이들이 유시민에게 저작권 값이라도 좀 지불했으면 좋으련만..
유시민 정도의 유명세가 있고 고정적인 지지자가 있는 정치인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지지자들의 돈을 빌려 선거를 치르고, 선거가 끝난뒤 국고 지원금을 받아 갚는다는 발상은 우리 선거 문화를 최소한 한단계 더 진보시킨 기발한 아이디어였음은 사실이다.
그렇게 돈 안드는 정치만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대선에 임하면서 유시민이 보여줬던 "캠프가 망했어요" 비디오를 기억해 보시라.
후보직을 포기하고 다른 후보를 지지하며 그를 위한 선거캠프에 참여하는 것을, 캠프가 망해서 다른 캠프에 "인수합병"되었다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심지어 망한 회사의 사장 처럼 넥타이 풀고 머리를 헝크러트리고 나와 동영상을 찍을 정도로, 권위주의의 반대쪽에 자리잡은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었다.
앞서 언급한 빽바지 논쟁도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치가는 사람들의 명령을 받아, 그 일을 실제로 행하는 머슴이지, 그 위에 군림하려 들어서는 안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유시민 만큼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도 많지 않다. 아니, 유시민 스스로 자신의 정치 스승으로 간주하는 노무현이 그 원조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참여정부로부터 시작되었고, 참여정부의 가장 우수한 공적으로 평가받는 권위주의의 해체 과정에서 유시민은 충분한 공헌을 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비록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그 썩은 권위주의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균열은 갔다.
돈 안쓰고.. 권위주의 없이.. 그런 방법은 좋은데, 그런 방법으로 도대체 뭘 하자고?
이 부분이 바로 유시민이 내세운 실제의 컨텐츠가 논란에 휩싸이는 부분이다.
그가 제시한 바람직한 사회상은 확실히 이 땅의 진보들의 눈에는 성이 안찼다. 그가 참여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일하면서 나름 실질적인 성과를 많이 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욕을 먹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논쟁에 관해서는 나 자신도 아직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아주 쉽게 말해서,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 속에서 대안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뛰어넘는 큰 폭의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하는 논쟁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유시민은 그 미묘한 경계선에서 생각보다 많은 차이로 현실의 손을 들어줬던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굴복하고 그 안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를 부정해 버리고 제3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FTA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의료민영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큰 원칙은 어때야 하는 것이고, 실무 세부사항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이런 문제들을 과연 누구와 어떤 폭으로 논의해야 할 것인가, 어떤 정도로 소통을 해야 민주적인 것이며, 정해진 의사결정 기일은 어떻게 맞춰야 할 것인가, 소통보다는 대의를 좇는 반대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치인 유시민의 입장과 공무원 신분의 국무위원 유시민의 입장은 또 달랐던 걸로 볼 수도 있겠다. 보통의 정치인들이 평생가야 한번 해 보기 힘든 장관직을 수행한 경험은 유시민에게 또 다른 심각한 갈등상황으로 다가왔고, 그 안에서 유시민은 현실적인 대안을 택했으며 그 결과 정치인 유시민의 입장에서는 더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은 아닐까.
그가 생각하는 사회를 설명하고 있는 그의 저서들에서도 이렇다 할 뚜렷한 선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가 실제로 꽤 넓은 범위에서 조망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정보들 속에서 우리사회의 혼돈을 발견했었고, 그 무서운 두께의 혼돈을 현실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아주 애매한 비전만이 드러날 뿐이었다.
결국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칠팔십년대를 거치면서 성장기를 보낸 한 운동권 학생이, 이천년대의 대한민국의 정치판에 갑자기 뛰어들어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지 못해 애만 쓰다가 결국 소모되어 버리는 서글픈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를 북극 빙산만큼이나 두텁게 덮어 씌우고 있는 거대한 역사적 모순덩어리들의 존재를 다시 상기시킨다는 그런 암울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인간 유시민은 이 두터운 벽을 돌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이 바닥을 탈출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의 선택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붙여 두겠다. 저술가로서의 유시민의 인생이 다시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는 말을 하기에는 좀 서글픈 일일 수도 있겠지만 꼭 해주고 싶다.
인생은 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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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노무현을 외면하고 있을 때, 유시민이 함께 했었다.
심지어 가장 정의로울 것 같던 사람들 조차도 노무현이 상고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은근히 깔보던 시절, 바로 그 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며 서울대 출신 유시민이 노무현을 어깨에 올려 태웠었다.
모두가 노무현의 후광만 가지려 하고, 참여정부의 실패에는 관련없음을 강변하며 애써 외면할 때, 문재인 보다도 앞서서 참여정부의 공과를 모두 이어 받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이 바로 유시민과 그의 지지자들이었다.
민주당 내부의 친노가 어떻고 반노가 어떻고 백날 떠들어 봐야 지금 민주당 내에 진짜 친노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문재인 빼고..
진짜 친노는 유시민이었고, 그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리고 진짜 친노들은 예전에 민주당을 버리고 나왔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친노를 자처하는 것, 그다지 보기 좋지 않다.
그리고 스스로 대통령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던 유시민 마저 정계 은퇴 선언을 하고 이 바닥을 떠나 버리는 모습을 우리 모두 보고 있는 중이다. 유시민의 정계 은퇴가 유시민이라는 전직 장관 출신 정치인이 정치를 그만둔다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이 대선에서 패배를 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었는데, 이젠 진짜로 실감이 난다.
노무현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구나.
그리고, 이제는 떠나버린 분이 먼저 떠나버린 분께 남겼던 말 한마디를 그대로 다시 보내드리고 싶다.
편히 쉬시라. 이제 남은 일들은 남아있는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