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 위에서 꽤 오랫동안 매일 바람이 불었다 디딜 때마다 푸석푸석하던 가난한 땅들이 일제히 빈 몸을 일으켜 바람을 맞았다 바람은 여과 없이 땅의 몸 깊숙이 스며들어 달래거나 윽박지르거나 타협하면서 땅의 아이를 낳고 새로운 계절로 집을 지었다 강물이 상처 난 등을 몇 차례 쓸어내리는 동안 마른 길 위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답답하다고 유서를 쓰거나 실종되었다 붉은 글씨와 높은 목소리를 외면했고 사랑을 배우지 못 한 채 빠르게 늙어갔지만 아무도 그들을 막지 못 했다 여기저기에서 봄을 애타게 그리던 함성들도 꽃 피기 전 몸을 감추며 하나씩 사라져갔다 몇몇은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뜬금없이 온 몸에 휘발유를 들이붓거나 뉴스 화면 속에서 심심찮게 뒷모습을 보이며 아파트 가격과 함께 추락했다 바람은 아주 낮은 곳으로 모여들어 인적마저 뜸한 외진 곳에 등짐을 풀고 다시 제 몸을 추스르는 중이다 양 팔을 벌려 이제 내가 바람을 맞는다 상실의 날들 품은 채 서성이는 세상을 흔들며 익숙한 바람이 불어온다
다시 길 위에서
꽤 오랫동안 매일 바람이 불었다
디딜 때마다 푸석푸석하던 가난한 땅들이
일제히 빈 몸을 일으켜 바람을 맞았다
바람은 여과 없이 땅의 몸 깊숙이 스며들어
달래거나 윽박지르거나 타협하면서
땅의 아이를 낳고 새로운 계절로 집을 지었다
강물이 상처 난 등을 몇 차례 쓸어내리는 동안
마른 길 위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답답하다고 유서를 쓰거나 실종되었다
붉은 글씨와 높은 목소리를 외면했고
사랑을 배우지 못 한 채 빠르게 늙어갔지만
아무도 그들을 막지 못 했다
여기저기에서 봄을 애타게 그리던 함성들도
꽃 피기 전 몸을 감추며 하나씩 사라져갔다
몇몇은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뜬금없이 온 몸에 휘발유를 들이붓거나
뉴스 화면 속에서 심심찮게 뒷모습을 보이며
아파트 가격과 함께 추락했다
바람은 아주 낮은 곳으로 모여들어
인적마저 뜸한 외진 곳에 등짐을 풀고
다시 제 몸을 추스르는 중이다
양 팔을 벌려 이제 내가 바람을 맞는다
상실의 날들 품은 채 서성이는 세상을 흔들며
익숙한 바람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