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산벗 산행후기(여행기,모임후기)에서 함께 입력된 아사달의 봄님의 글입니다. |








지난 주말 몇몇의 지인들과 함께 개인적인 지리산 산행을 했습니다.
산행의 시작은 보름전에 받는 대피소 예약입니다. 인터넷 사전예약제로만 운영되는
대피소의 예약은 아시는 분은 익히 아시는 것처럼 가히 전쟁을 방불케하는 치열함이 있지요.
주말 장터목대피소 예약에 성공한 일이 어쩌면 이번 산행에 얻게 될 행운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대피소를 예약하고 보름이 흐른 지난 주말 새벽 부지런을 떨어 지리산자락
중산리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자유로운 영혼들의
영원한 고향 지리산을 오르기 시작했지요. 길은 가파르고 기온은 높아 비오듯 하는 땀방울을
때때로 불어오는 산바람으로 식혀가며 오르고 또 오르길 몇 시간.
뉘엿뉘엿 해걸음에 장터목에 올랐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산행으론 그리 긴 코스는 아니었지만
산행초보자와 동행한 산행이었기에 그리 되었지요.
그렇게 오른 대피소에서 밥을 하고, 고기를 굽고, 영원한 동행 소주도 곁들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세상 산해진미가 다 모여도 1800여 미터 고지에서 먹는 밥처럼 맛있을 수는 없을겁니다.
땀 흘리고 먹는, 헐떡이며 맞이한 산마루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먹는 한끼의 식사를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산행이 주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아마도 이게 아닐까 합니다.
저녁을 해결하고 바라본 하늘은 별도 몇 개 총총 빛났지만 반대편 하늘엔 흰구름도 두둥실 하더군요.
그래서 체크한 일기예보는 그리 좋지가 않았습니다. 비는 없었지만 구름많음....이라 명시한 예보가
눈에 들어오니 별반 기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리산을 몇 번이고 오른 사람들에게도
쉽사리 내어주지 않은 게 천왕봉의 일출이라 하지 않던가요. 오죽하면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천왕봉의 일출입니다. 1915미터라는 고지의 날씨는 그 변화가 팥죽 끓듯해서
시간 단위로 아니 그보다 몇 십 분 단위로 낯빛을 바꾸기가 예사이거든요.
새벽 3시 30분에 눈을 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세수도 생략한 채 천왕봉을 오릅니다.
여명조차 없는 산길은 어둡고 돌부리는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헤드렌턴의 불빛에 의지해 시간여를 오르고 나니 희뿌옇게 세상이 밝아 옵니다. 고사목지대를
가로지르고 또 한참을 돌아올라 마주하는 통천문. 말 그대로 하늘로 통하는 석문입니다.
통천문 쇠계단을 오르면서 올려다 보면 하늘이 두 평! 더도 들도 없이 두어 평 남짓의 하늘이
열려있습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무궁무한으로 펼쳐질 그 드넓은 하늘을 통하는 문 치고는
너무도 야박하지만, 그 좁은 석문을 빠져나와야 비로서 온전한 하늘을 만납니다.
통천문을 빠져나오면 이내 천왕봉에 닿습니다. 확트인 시야는 천리라도 내어 줄듯 시원하고요.
발아래 펼쳐진 세상엔 구름이 바다를 이뤘습니다. 운해를 보는 것도 행운이요, 장관입니다.
분명 그러합니다만 천왕봉의 일출은 우리나라에서 맞는 일출 중 제일이기에 내심 바라는
것은 일출이지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장관을 바라보면서도 입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이제 일출은 불과 몇 분의 시간을 남겨 놓았습니다. 드라마틱한 대 반전만을 꿈꾸며 주먹만한
돌맹이도 날려버리는 천왕봉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기다립니다. 일 분, 이 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동녁하늘이 피빛이로 물들며 뭔가 꿈틀거리는 조짐이 보입니다.
발아래는 여전히 파도치듯이 피어오르는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지만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지평선)에는 울컥 토해지는 핏덩이 하나 꿈틀거리며 구름을 뚫고 오릅니다.
눈을 의심케하는 반전에 반전입니다. 드라마가 따로 없습니다.
펼쳐지는 광경은 장관이란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장관에 또 장관입니다.
갯바위에 부서지는 구름바다와 붉은 핏덩이가 어우러져 그저 한폭의 선경입니다.
인간세상에 이렇듯 신비롭고 벅찬 아름다움은 없을 듯 합니다.
바람과 추위?로 오들오들 떨던 그 시간과 전날부터 시작된 산행이 고단함까지 순간
훌훌 잊고야 마는 자연의 경이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무슨 덕을 쌓았다고 이런 행운을
주셨는지, 아니면 앞으로라도 잘 하며 살라고 선불을 땡겨 주셨는지
다만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지리산의 1박2일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서울은 올들어 처음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는
그 주말의 이틀을 신선이라도 된 것처럼 선계를 거닐다 빌딩숲 서울로 올라왔지요.
삼일이 흘렀습니다. 단지 삼일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지리산이 그립습니다.
마음속에서 뭉게뭉게 구름이 파도처럼 피어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