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문학광장 날적이에서 함께 입력된 희망으로님의 글입니다. |
9월 청주 정모 소감 - '아름다운 사람은 사랑도 아름답게 한다!'
1.
열어놓은 창문을 후두둑! 두드리며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새벽에 어느 집 아씨를 보쌈하러 오는 사람마냥 살금살금 어둠을 더듬어 들어와 잠들었다가 빗소리에 깼다. 벌써 아침 9시가 넘었다. 아침밥은 뚜껑도 열리지 않은 채 쟁반에 담겨져 식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환자를 두고 장장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가 넘도록 곁을 비우다니...”
창밖을 바라보며 내리는 비를 구경하노라니 이른 아침에 제자리로 돌아가느라 고단하실 분들이 떠오른다. 어떤 분은 쏟아지는 잠을 꾸역꾸역 밀어내며 버티고, 어떤 분은 너무 신이 나서 감당이 안 되는 필을 펼치느라 새벽을 맞고,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신 노모님은 아들 홍보와 젊은(?)영혼들과 교제하느라 몹시 고단하여 잠자리에 드셨었다.
“아침 쓰린 속을 해장국이라도 먹고 가셨을까? 여기까지 나를 보러 와주신 분들을 밥도 못드리고 배웅도 못하여 참으로 염치가 없구나...”
제목만 본 뉴스에서 ‘동방예의지국’ 어쩌고 하면서 김일성묘를 참배한 사람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단다. ‘아, 이 땅에도 예의가 아직은 굴러다니는구나!’ 감탄하면서 내가 못 차린 예의가 참 죄송하다. 심히 송구하고 면목이 없다. 이 자리를 빌어 삼가 용서를 구한다!
2.
쓰린 숙취 탓만은 아니다. 무언가 쓸쓸함과 외로움이 몰려온다. 빗소리와 아스팔트에 파편으로 쉼 없이 산화하는 모습이 더욱 나를 고독하게 몰아세운다. 어릴 때 명절날이면 우루루 사흘 밤낮을 집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학교를 다녀온 오후에 썰물처럼 빠져나간 친척들의 빈 자리에서 울컥 눈물 나던 그런 빈 자리...
“언젠가 이런 느낌이 있었는데? 아, 맞다! 남자로 처음 이성에게 동정을 바치고 아침을 맞았을 때, 하루 종일 이상했던 그 달라진 세상에 대한 복잡하던 심정, 딱 그 묘한 허전함과 비슷하구나.”
(이런 표현은 여기 문광이 아니면 허락하지도 않을 거고 나도 하고 싶지도 않을 거다. 문광이여 영원하라!)
3.
나의 9월 정모는 처음 보는 여인과 단 둘이 우산 쓰고 걷는 데이트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행운이 어떻게 굴러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여인네와 둘이 있어본지가 오래되어 잘 만끽하지 못했다.
“비가 오네요”
“조~오기가 공원이고, 오늘 예상 못한 무슨 공연이 있는지 사람들도 모여 있고 시끄럽네요.”
“지붕 있는 정자가 보이지요? 저기서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그럼 좋겠다 싶었지요”
그런 씨잘 데 없는 아마추어 대화멘트를 날리며 침묵을 메꾸는 사이, 하늘이 밀착시켜준 단 둘의 기회가 엉거주춤 적응하는 사이 끝나고 말았다. 왜 ’달이 밝네요. 별빛이 참 곱지요?‘ 그거는 안했을꼬... 그래도 그 행복한 우산 속의 데이트에 제물(?)이 되어 주신 선혜님께 두고 두고 감사를 드린다. (다음에 다시 그런 행운이 주어진다면 1분을 한 시간처럼 달콤하고 영원히 가슴에 담을 만큼 찐하게 보내리라! 물론 나만의 감정을 말하는 거다. 상대 여인네야 가만히 보내드려야지, 그럼! 그럼!)
4.
가장 먼저 팔각정자에 앉아 보내는 둘만의 데이트를 깨고 등장하신 분은 카프카의연인 님. 카프카는 어디로 가시고 홀몸으로 공원으로 올라오시는데 뛰어나가서 마중을 했다. 이 퍼포먼스가 나중에 반복이 되고 정모의 의전절차가 되어 큰 파장을 일으킬지는 꿈에도 몰랐다. 오랜 싱글남이 해방이 되고, 어떤 유부녀는 애 둘을 데리고 가정을 깰지도 모르는 며느리 되기 서바이벌에 뛰어들게 되었다. 최후에 쓰라린 판정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뒤이어 듬직한 대장, 확실히 그 뒤에 숨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도 좋고, 슬쩍 등을 떠밀어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부추기기도 참 좋다. 등짝이 듬직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히 대장의 자격이 있다는 걸 재차 실감했다. 물론 한밤중에 자동차키를 버리고 식당과 공원 밤길을 다 뒤지다가 24시간 수리공을 불러 키를 2개로 늘리는 신공도 보여주고, 일찍 차로 들어가 취침을 하는 자기관리의 철저한 면도 보았지만~
내심 반가운 여인네가 또 한사람 모습을 보였다. 아... 에로녀, 어떤 이들은 사람을 곤혹하게 한다고 ‘애로 녀’가 아니냐며 정체에 대한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내가 만나고 품에 안아보며 내린 결론은 분명히 ‘에로 여인’이 맞았다.
“안아도 될까요?”
“먼저 오신 분도 포옹해서 환영 했는데...”
“어서오세요. 오시느라 수고했어요! 만나서 반갑고요!”
그 따뜻하고 밝은 ‘에로’의 기운이라니! 얼마 만에 느끼는 음과 양의 밝은 조우였던가! 비록 며느리 쟁탈전에서 갖은 아부와 눈웃음으로 정성을 들였지만 아들을 끔찍이 아끼시는 노모에게는 아까운 2등 며느리 감이었다. 어느 서방님께는 천만다행이고 가정이 유지되는 지극히 아름다운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내심 삐졌던 것 같기도 하고, 참 애매한 여인들의 심리...)
5.
엄마와 아들의 영원한 관계. 나이드시고 몸이 아프면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고 돌본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아들은 영원히 엄마의 숙제고 돌봐야 할 어린이였다.
“어머, 오셨네!”
“아이구 어서오세요!”
나도 빨리 간다고 일어섰는데 두 잽싼 여인들에게 빼앗겻다. 환영의 첫 악수와 눈맞춤을, 먼 길을 오시느라 고단하셨을 팔순근처의 노모를 그렇게 버선발로 달려나가 맞이하듯 하는 바람에 얼마나 기분이 업 되셨는지 이후로 열 번도 넘게 그 말씀을 하셨다.
“아이구, 두 처자가 뛰어와 반겨주는 게 얼매나 예쁜지! 참말로 좋았네요!”
꼬박 꼬박 존대말을 사용하셔서 민망했던 대화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웃음꽃을 피우게 해주셨다. 아들 홍보에, 결혼시키기 쇼핑몰의 베테랑 호스트처럼 온갖 장점을 늘어놓으셨다. 외가 친가의 가문의 내력과 시어머니 시누이가 포진한 ‘시월드’의 안전성과 보증서도 함께 날인하셨다. 점점 치열해져가는 두 후보자의 의욕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든 며느리 공모 심사! 최종심사결과를 수차례 물어보았지만 일언지하, 딱 잘라 말하셔서 또 한번 좌중을 숙연케 하셨다.
“마, 사람 앞에 앉혀놓고 누가 더 좋다고 말하는거 아니다!”
그 인간에 대한 배려, 아, 그제야 알았다. 다 큰 아들이 늙고 병드신 엄마를 봉양하는게 아니라 언제나 안쓰런 아들을 엄마가 끌어안고 세상 마치는 날까지 살고 계시다는걸... 우리의 외로운 천재, 불출님도 나중에 그걸 인정하셨던가? 안했던가? 뭐 중요한건 아니지만~
“결혼 상대를 누구를 데려와야해?”
“딱 두 가지만 아니면 돼!”
“뭔데?”
“하나는 남자는 안돼!”
“당근이고, 또 하나는?”
“무당, 그 둘만 아니면 누구를 데려오던 괜찮아!”
“그럼 이혼녀도 괜찮고 애 딸려도 괜찮아?”
“그럼, 진짜 좋아하면 그까짓 뭔 대수! 부모보다 더 좋으면 오겠지!”
흐흐! 그 말에 우리의 애 둘 달린 유부녀 모씨는 기를 쓰고 도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자리를 옮긴 3차 장소, 다시 공원 정자에서 결국 서러운 버림을 당해야 했다. 아, 잔인한 선발, 승부의 세계라니,
“야야, 우리 며느리는 어디갔노? 왜 안오는거야?”
“....”
그렇게 며느리를 내심 속으로 찍어 놓으시고도 말 안하시던 분이 기어코 무심코 나온 말에 충격을 먹었다. 그 말을 다름 아닌 경쟁자였던 우리의 에로스타, 유부녀에게 직접 물어보셨으니! 그 뒤로 실신에 가까운 의욕상실로 정자의 기둥에 몸을 기대고 가타부타 말도 없이 쓸쓸히 한동안을 침묵으로 극복하느라 혼나셨던 것이다. 인생 무상, 낙방의 쓰라림이라니...
알츠하이머의 진행에 몸담고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버티는 불출님의 파이팅과 여행도 마다하지 않은 장거리 정모 참석에 깊이 감사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무거움들을 안고 살겠지만 조금 더 힘들 수도 있는 삶을 실시간으로 사는 불출님께 웃을 날이 더 많기를 응원한다.
6.
모임이 진행되는 사이 두 번째 병원을 다녀왔다. 아내의 소변처리를 위해. 저녁 밥 먹이고 오느라, 마지막 4차에서 카 형님과 장쯔이를 닮았다고 박박 우기는(?) 선혜님의 열띤 토론도 듣고, 소피아로렌을 닮은 주인장 자매님과 입바른 칭찬으로 기어이 안주 한 줌을 더 얻어내시는 수완도 목격했다. 역시 오랜 공력은 쓸모 있고 무시 못 한다는 것도!
“말이야! 말이야! 말이야!”
“이야~~”
그렇게 말의 내용은 내 귀를 흘러 지나가고 나는 그 열정적인 모습에 감탄을 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내용도 분명 소중한 의미였겠지만 마치 나무 그늘아래 조는 나뭇꾼의 스치는 미풍처럼 그렇게 감미로운 느낌만 남기고 저장은 되지 않았다.
‘참 아름답다, 무언가에 열성적이고 행동을 일치하는 사람의 모습은’
기어코 새벽3시를 넘기고 병원에서 3번째 호출전화가 왔다. 시간이 되면 닥치는 생리문제로, 아쉽지만 우리의 청주 정모는 그렇게 9월이 오는 소리와 함께 공원에서 시작되어, 9월이 가는 말일 새벽쯤에 끝이 나고 있었다.
“아, 참, 쑥스럽게”
“에라 모르겠다! 안겨요 안겨!”
한 사람씩 정말 아쉬워서 포옹하며 작별을 하는데 유독 한 분이 더 아쉬워 한다. 이미 남의 며느리로 진출하신 분이 포옹도 찐하게 품을 파고든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마도 네 번인가를 하고 끝이 났을거다. 정말 누군가가 그렇게 팔에 힘을 꼬옥 주면서 나를 안아준 마지막 기억이 언제였었나?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대개 느슨하게 매너있게 안아주는건 가끔했지만 이렇게 강렬한 포옹이라니!
“아, 이건 로맨스도 밀회도 아니여! 다들 뒤편에 죽 서서 지켜보고 있는데 아무리 가슴속에 꼭 끌어안아본들 그 여인은 공개된 인사일 뿐이여! 이 슬픔이라니...”
아마 그런 일 없었다고 딱 잡아뗄지도 모른다. 그리고 뒤편에 입회하여 지켜본 사람들도 암묵적 동조로 그건 그냥 작별인사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내 가슴에 짜르르 들어온 그 마음씨 착하고 정성이 담긴 실천이며, 늦도록 발랄하고 활기차던 알음다운 여인의 포근함이 분명 느껴졌는데도 말이다. 얼음골 밑으로 흐르는 봄의 따사롬움, 버들가지 움처럼 매끄럽고 살결같은 보드러움이 분명 내게로 옮겨왔는데도 세상은 시치미를 뗀다니...
“그건 꿈이 아니었고, 숙취로 온 환상도 아니었다! 믿거나 말거나, 깎아내리던 나무로 올리던!”
다시 몇 년을 기다릴지 모르는 좋은 동무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며, 나는 이 달콤한 기억을 아껴먹는 초콜릿처럼 야금 야금 먹을거다. 단 것이 필요한 저혈당의 순간마다!
몇 년 만에 긴 외출을 할 기회를 준 분들게 감사드리고, 특히나 불편한 몸으로도 즐겁게 나들이를 감당해주신 불출님의 노모님, 우리들의 어머니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