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하게 생긴 남자가 가방을 들고…열변을 토하였다. 한참 후배인 시보들에게 인사하러 와서 다방커피까지 시켜준, 사람
냄새 나는 유일한
변호사였다.”
김앤장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거 변호사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의 글을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앤장에서 근무하는 황정근 변호사(53·사법연수원 15기)는 최근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 ‘영화 변호인의 추억’에서 1980년대 부산 지역 활동했던 노 전 대통령을 회상했다.
그는 “갑오년 최초로 1000만명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부산의 노무현 변호사와 부림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서 요즘 장안의 화제”라며 “‘노 변’의 명함과 다방커피와 관련된, 필자 개인의 추억이 떠올라 혼자 미소를 지었다”고 밝혔다.
그는 “꺼벙하게 생긴 40살 정도 되는 남자가 가방을 들고 시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명함을 죽 돌리고는 소파로 시보들을 불러모았다”며 “‘노 변’은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고 첫 만남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노 변’은 다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를 시켜 놓고는 열변을 토했다”며 “한참 후배인 시보들에게 인사하러 와서 다방 커피까지 시켜준, 사람 냄새 나는 유일한 변호사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부산 법원은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시국 재판으로 늘 시끄러웠다는 게 황 변호사의 증언이다. 그런데 창 밖을 내다보면 방청하러 온 가족들과 학생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노 변’이 있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황 변호사는 1981~82년 ‘부림사건’ 피고인들이 고문에 의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법리적 배경도 설명했다. 그는 “영화에서 피고인들은 고문에 의한 진술 증거에 의해 모조리 실형을 선고받는다”며 “거기에는 형사재판에서 ‘전가의 보도’로 사용된 ‘실질적 진정성립 추정론’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고 말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만든 조서에 ‘(피의자가) 읽어보고 서명 무인(날인)했다’고 적혀 있으면 그 조서는 진술한 대로 적힌 것으로 추정한다는 법리다. 이것이 당시 법원의 판례였고 실무에서도 통용됐다.
이에 대해 황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는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때’ 증거능력을 인정하라고 돼 있었음에도 당시 법원은 법을 아예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부림사건 피고인들을 옥죈 대법원 판례는 결국 2004년 12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폐기됐다. 이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인은 후일 대법원장이 된 이용훈 변호사였다.
황 변호사는 1985년 부산 부민동의 법원에서 6개월간 시보를 했다. 당시에는 시보 15명이 교실 같이 큰 사무실을 함께 썼다고 한다. 사무실은 낡은 별관 2층에 있었으며 이 건물은 현재 동아대
로스쿨 건물로 쓰이고 있다. 판사 출신인 그는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했다. 1995년 행정처 재직 당시 구속 전 피의자심문(
영장실질심사) 신설, 긴급구속
폐지 및 긴급체포 도입 등을 통해 인신구속 제도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대법원의 형소법 개정 실무를 맡았다.
다음은 황 변호사의 ‘영화 변호인의 추억’ 전문
갑오년 최초로 1000만명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부산의 노무현 변호사와 부림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서 요즘 장안의 화제다. 영화에는 ‘송변’이 개업 초기에 부동산등기 전문이라고 적힌 명함을 뿌리고 다니고 여직원이 없어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엄혹한 1980년대 물고문 장면이 불편하기는 하였지만, ‘노변’의 명함과 다방커피와 관련된, 필자 개인의 추억이 떠올라 혼자 미소를 지었다.
1985년 부산 법원에서 6개월간 시보를 하였다. 시보 15명이 교실 같이 큰 사무실을 함께 썼다. 부민동 법원청사 중 나중에 부산고등법원, 현재 동아대 로스쿨 건물로 재건축된 낡은 별관 2층이었다. 창밖으로는 마당이 있었다. 꺼벙하게 생긴 40살 정도 되는 남자가 가방을 들고 시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명함을 죽 돌리고는 소파로 시보들을 불러 모았다. ‘노변’은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는 다방에 전화를 하여 커피를 시켜놓고는 열변을 토하였다. 한참 후배인 시보들에게 인사하러 와서 다방커피까지 시켜준, 사람 냄새 나는 유일한 변호사였다. 당시 부산 법원은 시국재판으로 늘 시끄러웠다. 창밖을 내다보면 방청하러 온 가족들과 학생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노변’이 있었다.
영화에서 ‘송변’의 감동적인 변론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고문에 의한 진술증거에 의해 모조리 실형을 선고받는다. 거기에는 형사재판에서 전가의 보도로 사용된 ‘실질적 진정성립 추정론’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형식적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실질적 진정성립이 추정된다’는 것이 실무였고 판례였다. 조서에 ‘읽어보고 서명 무인했다’고 기재되어 있으니 그 조서는 진술한 대로 기재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312조에는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때’ 증거능력을 인정하라고 되어 있었음에도 당시 법원은 법을 아예 무시하였다.
1987년
헌법이 탄생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고, 1980년대 그 ‘노변’은 세월이 흘러 2003년 ‘노통’이 되었다. 그 다음해 12월 16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2002도537)로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형식적 진정성립 뿐만 아니라 실질적 진정성립까지 인정된 때에 한하여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여 추정론을 폐기하였다. 소수의견도 없다. 형소법 규정대로 돌아오는 데 20여년이 걸렸다. 대법원은 그동안 쌓인, 폐기할 판결이 너무 많자, 대표적인 15개를 열거한 다음 ‘등 다수’라는 말을 넣었다. ‘노변’의 참여정부 사법개혁에 따라 2008년 시행된 개정 형소법 제312조는 더 세밀한 내용으로 개정되었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 20여년 후에 폐기될 판례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았던 영화 속 피고인들을 생각한다. 다시는 영화 속의 장면과 같은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조인들이 중심을 잡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각자의 몫을 제대로 감당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