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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사람들의 일체유심조 이야기
조덕섭
극단 완자무늬(대표 김태수)가 창단 30주년을 맞아 국립극장 무대에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을 올렸다. 화엄경에서 유래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주제를 밀도 있게 그리기 위해 배우 일곱 명이 열연한다. 연기와 대사, 별 다섯 개가 만점이라면 나는 여기에 별 두 개 정도는 더 붙여주고 싶은 연극이다. 이 별 두 개는 스탶과 망령역의 명계남 몫이다.
속가에서 전직 미대교수이면서 조각가인 김명석(출가 후 도법스님, 최광일 분)은 아내(박민정 분)가 깡패들에게 강간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충격에 빠진 그는 승려가 된다. 더 이상 작품 활동은 하지 않고 토굴을 전전하며 정진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봉국사의 방장스님(정진 분)은 도법에게 봉국사의 불상을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도법은 석칼을 들고 불상 조각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렇게 3년이 지나 불상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고,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봉국사 주지 탄성스님(이문수 분)은 봉국사 불상 봉안식을 사부대중에게 널리 알린다. 그 즈음 도법에게 망령이 나타난다. 망령은 불상을 부숴 버리고 도법에게 ‘네 안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번민을 가져다 준다. 이 번민은 속세와 불법의 경계였으리라. 이승과 저승, 완성자인 인간을 모습을 찾는 번민이었으리라. 주지 탄성은 도법에게 귀신이 씌워 정신이 나갔기 때문에 더 이상 불상 제작이 힘들다며 방장스님을 찾아가 제고를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방장스님은 선문답 뿐이다. 망령이 도법에게 던진 물음의 답은 일체유심조였으며, 태어날 때부터 완성자인 인간은 그 자신의 의지대로 된다는 것인데 그 의지를 도법은 불교라는 허울에 싸여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깨닫게 한다. 도법은 결국 온화하고 자비로운 부처님 상 대신 세속 세파에 찌들어 살다 반 분신 몰골을 한 망령의 모습, 인간 현세의 고통과 추악함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의 인간 석골을 불상으로 남기게 된다. 불상을 완성한 도법은 자신의 눈을 찌르고 죽게 된다.
이 극은 시종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은 불당의 목탁 소리이기도 하고, 처마 밑 풍경 소리이기도하다. 은은하다. 무대가 그렇고, 오가는 대사가 그렇다. 도법과 탄성이 불상을 두고 주고 받는 대사. 이들 사이를 망령이 끼여든다. 도법과는 말을 주고 받는 망령, ‘도법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겐가?’ 탄성의 눈에는 도법이 실성한 사람이었고, 도법에게는 이를 몰라주는 탄성이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방장스님과 탄성, 방장스님과 도법의 오가는 대사 또한 그렇다. 도법이 더 이상 불상 제작이 어렵다고 말하자 방장스님은 ‘다음에 올 때는 정종도 한 병 들고 와. 아무도 몰래’ 앵두와 딸기, 앵두는 씨가 있어서 발라 먹어야 하기 때문에 먹을게 별로 없을건 같지만 딸기보다는 맛있다는 얘기? 방장스님은 이 무슨 해괴한 선문답이란 말인가.
다소 무거울 듯한 극의 흐름은 원주스님(민경진 분)과 막내 월명스님(강윤경 분)의 연기에서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관객들의 시선을 한 순간도 가만 두지 않는 희극적 요소가 배합됨으로서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 극을 통해 관객은 일체유심조, 완성자 인간, 목탁 속의 작은 어둠, 이러한 철학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저러한 도법이 아닐까. 저 망령은 현실 속에 늘 내가 살고 있는 형상은 아닐까. 어느덧 관객인 나와 극 속의 도법 일체감을 이루고, 그 순간 조용한 눈물을 자아내게 된다. 극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을 반추하게 되고 극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즈음이면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 열연한 배우들에게 주는 박수이기도 하지만 도법이 된 관객 자신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박수일 것이다.
작가 이만희는 젊은 시절 금산사에서 실제로 절간 생활을 했다고 한다. 문학과 출가를 고민 했다는 작가의 젊은 시절 경험은 이러한 희곡이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거기다 연출가인 강영걸 선생을 만나 우리 나라 연극사에 강영걸과 이만희가 콤비를 이루면 좋은 작품 나온다는 유쾌한 족적을 남겼을텐데 목탁구멍 속 작은 어둠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퍽이나 세 번의 암선고를 이겨 낸 강영걸 선생의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은 각별 했을 것이다. 그 애정에 관객으로서 무한한 감동을 갖지 않을 수 없으니 이 연극 진짜 잘 만들었고, 우리 연극 칭찬에 침이 마르지 않을 법하다.
나는 이십여년 전 대학로에서 콘트라베이스 모노극을 관람했다. 이 때 배우 명계남 선생을 처음 만났다. 콘트라베이스 극도 훌륭했지만 혼신의 정열로 두 시간이 넘게 모노극을 펼치던 명계남 선생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나는 방송작가 시절 그와 함께 ‘고향길 문화기행’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하면서는 공주에서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공주 공산성의 가을은 지금처럼 시월이었고, 갑사 입구 거북 등짝 같은 손으로 군밤을 굽던 아낙들, 곰나루터 잔잔한 금강 물결, 그 기억이 명계남 선생과 함께 연상된다. 세월은 아득히 흘렸는데 그가 젊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무대에만 서면 신명이 난다. 최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명배우임에 틀림없다. 이런 명배우에게 연극이 끝나고 기껏 물어보는 나의 질문이라는 것이 ‘명선생님 부숴진 불상은 스치로폴로 만들어서 가벼운거죠? 테이프로 뗏다 붙였다 하는거죠?’ 좌중은 뭐 이런 사람있나 싶겠지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말이다. 그런데 나보다 한 수 더 뜬 사람은 ‘무대 전환 할 때는 조명도 다 꺼지고 깜깜한데 그 때는 소품을 어떻게 나르고, 배우들은 어떻게 자리를 그렇게 잘 찾아 간데요?’ 이렇게 물어본다. 이럴 때는 나도 한마디 거든다.. ‘허, 이 사람 물어 볼걸 물어봐야지. 극 내용을 갖고 물어보면 격이라도 있어 보이는데 이런 걸 물어보면 어쩌나?’ 그리고는 ‘명선생님 진짜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극단 완자무늬 대표인 김태수 선생이 이십여년 전 콘트라베이스를 연출 했다는 것을 나는 지난 봄 ‘은하수를 아시나요’ 연극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알았다. 김태수 선생은 올해 노무현대통령 서거 5주기에 맞춰 발간한 산문집에도 원고를 주셨으니 이 인연 또한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수 선생과 명계남 선생은 친구이면서 완자무늬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두 분의 우정과 궁합이 우리 나라 연극사에 큰 자취를 남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이 연극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한다. 정극으로서 그만한 감동이 있고, 두고두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남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1월 2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