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니기미 씨팔, 달이 와 안 뜨노 말이다."
이충효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꼴이 한심스러웠다. 소대 왕고참이 근무를 서야 하다니…… 선임분대장이라야 1분대장 강 하사도 나보다 짠밥은 두 달이나 모자라는 놈이 아닌가. 군대야 짠밥이 최고지 그까짓 갈매기 하나 붙인 게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보나마자 소대장 전령인 일등병 놈을 전화기 앞에 앉혀놓고서 그 자식은 자빠져 자고 있을 거야. 충효는 새삼 난로가 그리웠다. 다른 날 같으면 이 시간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있든가 아니면 취사장에 꼬불쳐둔 돼지고기로 찌개나 만들어 밤참을 먹을 텐데…… 그 한만수란 자식하고 날씨 때문에…… 빌어먹을.
그는 초저녁부터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만 뜨면 절반은 철수한다. 그러면 내무반에 돌아가자마자 커피부터 한 잔 마셔야겠다. 개떡 같은 날씨…… 구름이 끼었으면 춥지나 말 일이지, 이거야 원……. 충효는 부아가 치밀었다. 경험으로 봐서 이런 심술궂은 날씨라면 밤새 갤 확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이 근무를 서고 있는 놈은 하필 고문관으로 소문난 등신 같은 김영민이 아닌가. 남산 밑의 무슨 얄궂은 이름을 가진 호텔 웨이터를 했다는 박 상병이나, 아니면 이태원에서 게이 노릇을 하다가 온 예쁘장한 신병 놈을 데리고 왔으면 재미나 있을 텐데 말야. 정말 일진이 사나워도 지랄같이 사나운 날이라니까. 그런데 도대체 한만수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자식이 갑자기 사라지는 통에 내가 말년에 근무까지 서야 되잖아. 그러나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한만수는 처음 만날 때도 그러더니 가는 날까지 자기를 괴롭힌 셈이었다. 한만수는 충효가 군복을 입고서 처음으로 맞이한 직속 졸병이었다. 신병이 온다는 말을 전해듣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사태는 그렇게 유쾌하지가 못했다. 그 저주받을 대학생 복무단축제도 때문이었다. 졸병이랍시고 하나 받고 보니 입대일은 2개월하고도 3주나 늦은데 전역예정일은 그보다 1주일 빨랐던 것이다. 한만수는 서울의 어느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탓으로 나이까지 그보다 한 살 더 먹은 졸병이었다. 그는 졸지에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그의 고참들 중에는 한만수보다 늦게 제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한만수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대신 충효를 놀려댔다. 짠밥 고참과 제대 고참 사이니 둘이 동기처럼 지내라느니, 한만수 먼저 제대하는 걸 보면 이충효가 배가 아파 입실하게 될 거라느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그는 이를 갈았다. 사실 배가 아팠다. 더러운 놈의 복무단축제도를 아무리 저주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 화장실 뒤로 한만수를 불러내어 주먹다짐을 했다. 그리고 선언했다.
"좆같이 사회가 안 고르니까 군대도 고르지가 않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고르게 해주겠다 이 말이다. 알겠나? 너 이 씨팔놈아, 내보다 먼저 제대한다꼬 기올라 탈라카믄 죽이 뿌릴 끼다. 니가 3개월 덜하는 만큼 내가 그 대가를 돌리줄 끼다. 공평하제? 안 그렇나?"
머리통 하나만큼 더 키가 큰 한만수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겁먹거나 고분고분 머리를 숙이지도 않았다. 건수가 잡힐 때마다 주먹질을 했지만 그래도 고참에게 내놓고 대들지는 못하리라는 믿음 하나로 맵고 짠 군대시집살이를 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몇 달 지나지 않아 한만수가 너무 커버렸다는 데 있었다. 그를 볼 때마다 충효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만수는 도대체 대학을 다닌 먹물답지가 않았다. 그는 첫 구보에 낙오하지 않은 보기드문 신병이었다. 전 중대원 중에서 제일 형편없는 군장과 내피가 끊어져 핑핑 돌아가는 철모를 가지고서도 그는 낙오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고갯길을 오를 때는 지쳐 헐떡이는 소대장을 대신해서 구령을 붙이기까지 했다. 열 발을 쏴서 일곱 발밖에 맞추지 못한 충효가 사격장 앞마당 돌밭에서 치도곤을 당하고 있을 때, 열 발을 다 맞춘 그는 중대 탄약병을 도와 사격장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가방끈이 긴 놈답게 병 공통과목이나 정훈 필기시험만 치면 대대 전체에서 언제나 첫 번째였다. 5갤런 물통 2개를 지게에 얹고 1시간이나 산비탈을 올라야 하는 물당번도 중간에 한 번만 쉬면서 너끈하게 해치웠고, 훈련 나가서 분대용 텐트를 치는 일도 금방 익혀냈다. 뒷 굽이 다 닳은 군화를 신고서 행군도 잘만 해냈다. 사단에서 실시한 전투력 경연대회 때, 병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그의 권위에 먹칠을 하고 자신이 소대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혹 갈 수 있을 지도 모르는 포상휴가를 포기하면서까지 모험을 했지만 그 때문에 자신까지 경을 친 일을 생각하면서 충효는 새삼 한만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늘 한만수와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한만수는 그로서는 장악 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내세울 것은 짠밥 그릇수가 많다는 것 하나뿐이었지만 그것은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실이었다. 사병들 사이에 짠밥 그릇 수에 따른 위계질서를 빼면 남아날 질서가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한만수가 중대본부 요원으로 발탁되어 갈 것이라는 소문이 한동안 떠돈 적이 있었다. 그러나 중대장과 면담하고 온 그는 그대로 소대에 머물고 있었다. 중대본부에 오라는 중대장의 권유에 대해 자신은 화끈한 소총수 생활을 훨씬 좋아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었다. 거만스러운 본부요원들을 한편으로는 미워하고 한편으로는 동경하는 소총수들에게 이 말은 실로 통쾌한 것이었다. 그는 소대의 총아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럴수록 충효는 그를 더욱 미워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만수가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충효는 그 자식 때문에 자기의 군대생활이 몇 갑절 힘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목에 걸린 가시가 빠져나간 것처럼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제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공공연한 비밀, 그 불쾌한 사건의 주인공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졸병한테 얻어터지다니……. 충효는 소총을 들어 어둠 가운데 한 지점을 겨냥했다. 차가운 개머리판이 뺨에 와 닿았다. 가늠자리에 야광처리가 된 부분대장용 소총이다. 파아란 야광테 안으로 어둠이 동그랗게 들어와 앉았다. 거기 한만수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충효는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병신 같은 새끼. 지가 무슨 성인군자라고…… 군대에서 인격이니 뭐니, 흥…… 개소리야 개소리. 충효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 얼마나 무진 노력을 해왔던가. 한만수…… 그 자식만 없었으면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내가 미쳤다고 주임상병 되어서까지 회식 때마다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민가에 가서 술을 사와? 내가 누굴 위해서 회식비 걷은 데서 뻥쳐 가지고 따로 소주하고 안주 사다가 고참들한테 먹였는데……. 고참 모실 줄 아는 소대일꾼이라고? 흥, 개소리 말라구. 내가 졸병들 닦달해가지고 늬네들 군화, 파리가 낙상하게 닦아주고 야전잠바 세탁해주고 속옷 삶아주고 한 게 제대하면 안면 몰수할 늬네들 위해서 그런 그런거라고? 미쳤나? 애들 욕먹어가면서 그짓 한 게 늬네들 위해서라면 내가 미친놈이야. 흥…… 웃기지 마라. 나도 다 계산이 있는 놈이라구. 내가 내세울 게 뭐 있어? 문교부 혜택을 많이 보길 했나, 사격 구보를 빼어나게 잘하나, 아니면 힘이라도 세나? 만수 자식이 졸병들 인기는 다 차지했는데 그나마 고참들이라도 잘 봐주지 않으면 난 완전히 바지저고리밖에 더 되냐? 늬네들 배경으로 졸병놈들 꽉 잡아놔야 제대할 때까지 좀 편하게 지낼 수가 있어. 그 때문이야…… 딴거 없다구. 봐! 한만수 그 자식, 고참들 전출가게 되니까 대뜸 들고 나왔아? 그전에 내가 그 정도라도 애들을 잡아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난 지금 찬밥신세가 됐을 거야.
힘겨운 상대가 사라져버렸다는 안도감에 충효는 어깨를 펴보았다. 이젠 자신이 하는 일에 시비를 걸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뒤늦게나마 명실상부한 소대 왕고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한 가지 의문만은 풀리지를 않았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인간일까? 그 정도의 명문대학을 다녔고 또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놈이 군단과 사단, 연대와 대대를 거치면서 어째서 좋은 보직을 받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을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보안대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 자식 사상이 의심스러운 놈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혹시 고위층의 아들은 아닐까? 일부러 고생 좀 하라고 아들을 이런 곳으로 보내는 또라이 장군도 없진 않다는데…… 만일 그렇다면…… 혹시라도 내가 애들 봉급 뻥친 것 걸리면 어떡하지? 가슴 한 귀퉁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떨쳐버리려는 듯 그는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았다.
"니기미 씨팔, 달은 와 안뜨노 말이다."
4
"국군 사병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여러분을 위해 음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귀에 익은 아리따운 음색의 여자가 대남방송을 다시 시작했다. 가끔씩 철책 저편의 마른 갈대를 우썩우썩 흔들어대던 바람소리는 김일성 찬가에 묻혀버렸다. 뒤쪽의 아군 스피커에서도 음악이 터져 나왔다. 조 모 씨의 단발머리. 양측 노래 가락의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이 내는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삼켜버렸다.
영민은 왼편에 보이는 투광등을 보고 있었다. 1726번 지주에 바싹 붙어 설치된 52번 투광등. 영민은 그 아래의 계곡을 건너다 보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에서는 소리들이 칼을 물고 싸웠지만 땅 위에는 오로지 죽음 같은 정적뿐이었다. 1726번 지주 앞은 가파른 바위비탈이었다. 그 때문에 투광등은 대개 철책보다 몇 미터 앞으로 나가 있었지만 52번 투광등만은 예외였다. 1726번 지주와 바짝 붙어 설치된 52번 투광등은 철책 안쪽의 순찰로에 까지 희미한 빛줄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한 상병이 며칠 걸러 한번씩 그 투광등을 손보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소대에서 제일 키가 큰 그는 1726번 지주 위의 꺽쇠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발로 지주 우측의 중단철주를 디딘 채 오른팔을 뻗어 소켓 부분을 만지곤 했다. 그러나 소켓이 너무 느슨해서인지 바람이 불면 불이 꺼졌다 들어왔다 속을 썩였다. 지금은 멀쩡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투광등을 바라보면서 영민은 달이 뜨지 않아도 편지를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순찰장교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그리고 이 병장에게 얘기하고 싶진 않은데……. 영민은 망설이고 있었다.
"야, 뭐하노? 인터폰 안 받고?"
이 병장의 호통에 영민은 얼른 벽에 붙은 인터폰을 집어들었다.
"예, 43번 근무호 일병 김영민입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소대장님일 텐데…… 의아해 하는 순간 난데없이 캐럴이 흘러나왔다. 북치는 소년. 아,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였지. 인터폰을 통해서 듣는 캐럴이라…… 재미있는데?
"뭐야? 누구야?"
이 병장이 수화기를 빼앗았다. 그는 얼른 귀에 대보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구야, 이거! 장난치나? ……소대장님! ……소대장님! ……약 올리는 겁니까, 예? …… 지금 장난칠 기분입니까, 내가? 차라리 커피나 타 오시지, 예? 아휴, 말도 마이소. 죽겠입니더. 내가 근무설 군번입니까? 이런 거 듣고 위로가 될끼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빨리 오이소. 누구는 뺑이 치는데 내무반에서 뭐하는 깁니까? ……예, 그라고 안 있입니까? 쪼매 있다가 삐이급으로 빼입시더. 소초장 직권이라 카는 거 안 있입니까? 아까 연대 순찰반은 지나갔고, 이래 춥은데 누가 오겠입니까? ……예, 믿습니데이."
소대장은 영민과 비슷한 시기에 전입해온 알오티씨 소위였다. 알오티씨에게 군인정신이 있으면 꽃이 핀다는 속설대로 그는 장교도 사병도 아니었다. 계급장은 장교지만 3년을 탈없이 때우는 것이 최대 목표라는 점에서는 사병이나 한가지였다. 가끔 알오티씨 장교 가운데 매력적인 인물이 없지는 않았지만 박 소위는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는 소대의 질서를 그럭저럭 유지해나가는 데 필요했기 때문인지 이 병장의 횡포를 묵인했다. 이 병장은 발 빠른 일병 하나를 전령으로 붙여주고 주기적으로 닦달해 반찬을 따로 만들어주거나 빨래를 해주게 하는 등으로 박 소위의 편리를 도모해주었다. 영민은 한 상병이 이 병장의 횡포에 반기를 들고 나섬으로써 일어난 그 사건을 소대장이 그냥 묵인한 데 대해 소대원 대다수가 그렇듯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철책 투입 직전인 11월 중순의 일이었다. 영민은 그 생각만 하면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막사를 두들겨대는 흙바람이 유별나게 살벌하던 그날 밤, 영민은 도포를 뒤집어쓴 채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무언가 일이 터지긴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은 일병이나 이병이나 모두들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깥 날씨와는 달리 내무반은 너무나 평화롭고, 어찌 보면 목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다. 각 소대별로 진행한 중대회식은 끝났다. 이젠 휴가 때까지는 술 마실 기회가 없다. 관사에서 살림을 하는 중대장과 선임하사들은 앞으로 1년 동안 생과부가 될 마누라를 달래러 나갔다. 미혼의 소대장들은 애인들을 만나러 읍내로 갔다. 주변머리 없는 박 소위가 주번사관 완장을 차고서 행정반 야전침대에 드러누워 있겠지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바람은 이리도 요란스레 불고 행정반은 50m도 넘게 떨어져 있는데. 여기서 웬만한 사단이 나도 알지도 못할 것이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독립중대. 군용차가 아니고선 엄두도 못 낼 오르막길엔 더구나 눈까지 쌓여 있지 않은가. 어떤 미친놈이 이 밤중에 여길 올까.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십중팔구 전기가 끊어지는 탓으로 평소에도 9시면 점호를 취했지만 오늘은 아직 8시도 안된 시각이다. 난로에는 마른 참나무가 탁탁거리고 그 옆 침상 위에는 호롱불을 가운데 놓고 모레면 다른 연대로 전출 가는 말년 병장들이 화기애애하게 소주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민은 불안했다. 두런거리는 병장들의 말소리 너머로 또 다른 소리들이 섞여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은 이틀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틀 전 야간점호가 끝나기 무섭게 이충효가 소대의 상병들을 몽땅 불러 나갔을 때 부터였다. 그는 군화 끈을 단단히 졸라매고 나서 자기 손으로 한 달이나 일찍 계급장을 붙인 모자를 눈썹까지 푹 눌러쓰면서 명령했다.
"상병들 다 나와!"
조립식 막사의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병장들은 소주를 즐기고 있었고 밖에서는 상병들이 엎드려 뻗치고 있었던 것이다. 간간이 독기 어린 이충효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 상병 놈의 새끼들! 고참들이 다 전출간다고 너그 세상 왔다싶으나? 그렇기 군기가 빠져갖고 전방에 들어가 봐라! 오발하고 지뢰 밟고 다 뒤져서 나올끼다, 아나?"
듣지 않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이충효 저 씹새끼! 전방에만 들어가 봐라. 확 긁어버릴 테다. 개새끼."
"임마야, 그카지 마래이. 참으모 될 꺼 갖고 그라머 니도 남한산성 간다 아이가?"
"니기미, 내 기분이 그렇다 이 말이지 누가 그렇게 꼭 할 걸고 했나?"
"최 상병님 말이 맞습니다. 김 상병님, 그냥 꽉 참으셔야죠."
"중대장님께 면담신청이나 할까?"
"이 자슥, 장교들도 다 알면서 그냥 내비두는 거 아이가? 생각해 보래이. 고참 몇이가 중대병력을 꽉 틀어잡기만 하모 장교들은 얼매나 편할끼고? 저그들은 고참 몇이만 살살 달개믄 끝나는기라. 내 겉에도 가만 놔두겠다."
"한 상병님은 왜 당하고만 있을까? 그 양반만 나서도 한바탕 해볼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가만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닌데……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겠지요."
"군대 좆같네, 씨팔."
"우리가 사람이냐, 어디? 개지."
"이충효 그 씨발놈만 없이모 군대생활 풀릴낀데. 고참들 다 전출 가봐라. 벌써 저카는데 앞으로 얼매나 할끼고."
낮에 화목(火木)조로 산에 갔을 때 고만고만한 상병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면서 영민의 불안감은 더욱더 짙어왔다. 졸병들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상병들 순서가 끝나면 이충효는 주임 일병을 불러 일병들 군기를 잡으라고 강요할 것임에 분명했기 때문이다. 바람은 점점 심하게 불었다. 몇 잔 마지못해 마신 술 때문인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까물까물 정신이 사그라 드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내무반 출입문이 쾅 열렸다. 그 서슬에 호롱불이 꺼졌다. 바닥께로 시린 바람이 회오리처럼 밀려들어왔다. 내무반은 암흑 천지였다. 영민은 커다란 그림자가 출입문을 막아서는 것을 보았다. 한 상병이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휙 던졌다. 우당당 소리를 내며 내무반 바닥에 떨어진 것은 참나무 장작이었다. 영민은 일어날 수도 그냥 누우 있을 수도 없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한 상병의 음성은 평소와 너무나 달랐다. 그는 병장들 쪽에다 대고 소리질렀다.
"술이 들어갑니까! 분대장님들은 잠이 와요! 부하들이 개취급을 당하는데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분대장 노릇 다 한 겁니까?"
"한 상병, 왜 이러나, 응?"
"몰라서 묻소?"
"다 소대를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소대를 위해서! 이게 소대를 위하는 겁니까. 이게? 있는 동안 그랬으면 가는 마당에라도 고참 도리 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몰라서 물어요? 그래 가는 마당에까지 졸병 등쳐서 사온 술로 파티하는 게 소대를 위해서란 말입니까!"
"……."
"명분 없는 매타작도 하루 이틀이지…… 밤마다 이게 뭡니까? 군기고 뭐고 간에 다같이 여까지 와서 고생하면서 꼭 이래야 됩니까?"
"원래 전방 들어갈 때는 그러는 거야."
"좋소! 한번 해봅시다. 원래 그런지 어떤지 모르지만 가는 데까지 가봅시다. 내 남한산성 가도 좋소. 졸병 놈이 건방지다고 생각하면 붙어봅시다."
한 상병 뒤에 그림자가 여럿 보였다. 상병들이었다. 모두들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이런 대접받으면서도 참고 군대생활 할 사람은 지금 내무반에 들어가도 좋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박 소위가 달려와서 한 상병을 막아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충효는 한 상병에게 걷어채여 막사 뒤에 뒹굴고 있었다. 소대장은 두 사람을 데리고 행정반으로 갔다. 갓 전입온 신병들은 겁에 질려 떨고 영민을 비롯한 일병들은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흙투성이가 된 상병들은 한 상병이 돌아올 때까지 침상에 앉아 있었고 병장들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모포를 뒤집어썼다.
다음날 아침, 박 소위는 사태를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모두가 나름대로 소대를 위해서 한 일이니까 없었던 일로 하고 앞으로 잘 지내라. 소대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이충효는 기가 꺾였다. 며칠 뒤에 한 상병은 소대 서열 2위가 되었고 소대원들은 한 상병을 믿고 의지하려고 했다. 철책 근무를 시작한 이래 이 병장이 사소한 주먹질을 하는 외에 집합과 집단 구타가 사라졌다. 내무생활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때 상병들은 취사장 뒤 양지쪽에 모여앉아 함께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해결했다. 일렬로 세워놓고 따귀를 올려붙이는 어제까지의 집합과는 달랐다.
그러나 소대내의 질서는 잘만 유지되었고 다른 소대에서는 한두 번 씩 다 겪은 오발사고조차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소대장 전령인 김 일병은 이 병장이 시킬 때는 끓인 라면에 침을 뱉어 휘휘 저어 갖다 주면서도, 소대장의 라면을 끓일 때에는 시키지 않아도 취사병에게 얻은 파와 고춧가루를 넣어 한 상병 몫까지 한꺼번에 끓이곤 했다. 영민은 저도 몰래 킥킥거렸다.
"야, 김영민!"
"예? 예!"
"뭐가 우습아서 혼자 비실비실 웃노?"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병장이 심심한 모양이었다. 그는 등신 같은 자식 하며 혀를 끌끌 차더니 근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참이 뭐지?"
"하느님과 동기동창입니다."
"고참이 죽으라 카면?"
"시늉이라도 냅니다."
"고참이 신나게 패면?"
"좆나게 맞습니다."
"고참이 헬기 타면?"
"쳐다보고 손 흔듭니다."
"음, 좋았어. 내가 며칠 남았지?"
"예, 144일 남았습니다."
"내가 근무 서는 거에 대해서 우째 생각하지?"
"말도 안됩니다."
"그럼 우짜지?"
"……."
"알아서 해라. 니는 자믄 안된다."
"알았습니다."
이 병장은 방한복 속에 숨겨온 판초를 꺼내 덮어쓰고 근무호 구석에 웅크렸다. 근무호에는 졸병들과 고참들이 함께 투입되는데다가 같은 분대여서 영민은 이틀에 하루 꼴로 한 상병과 함께 밤을 새우곤 했다. 그는 필요없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다. 자기의 신상에 대해서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주로 영민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다. 하지만 침울한 성격은 아니어다. 아군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면 그는 영민을 부추겨 고고를 추곤 했다. 4박자춤 이라는 재미있는 춤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담배도 함께 피웠고 새벽이 되어 속이 쓰리면 숨겨온 건빵도 함께 먹었다.
영민은 혹시나 싶어 가슴께를 더듬어보았다. 한 상병이 맡기고 간 메모철이 없어지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야전 잠바와 방한복을 입고 있는 탓으로 전투복 상의 호주머니에 넣어둔 메모철의 감촉이 와닿지를 않았다. 있을 거야. 아까 근무 들어오기 전에 확인했으니까……. 그런데 그는 도대체 어딜 간 것일까? 어째서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갔을까? 영민은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왠지 소름이 끼쳐왔다.
연대 보안반의 찝차가 소초 막사 앞에 멈춰 섰을 때 한 상병은 마악 대공초소로 주간근무를 나가고 없었다. 영민은 그때 제설작업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허리에 권총을 찬 대위가 들어왔다. 대위가 권총을 찬 것을 영민은 처음 보았다. 그는 대뜸 한 상병을 찾았다. 영민은 한 상병 대신 주간근무를 서기 위해 대공초소로 올라갔다. 그는 멍하니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상병님."
"웬일이야?"
"내려오시래요. 누가 찾아왔던데요?"
"날? 누가?"
"모르겠어요. 대윈데…… 권총을 차고. 소대장님이 완전 고양이 앞의 쥐던데요?"
순간 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영민은 보았다. 그는 조금 창백한 안색으로 되물었다.
"차번호 봤니?"
"아뇨."
그는 영민을 호 안으로 불러들여 M60기관총의 안전장치를 채우고 수류탄과 실탄 등속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인계했다. 하지만 그런 동작은 건성일뿐 그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영민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영민은 왠지 몸이 오그라 들 것만 같았다.
"영민아."
"예?"
"내가 나쁜 사람 같니?"
"아, 아뇨. 천만에요."
"그럼 이유 묻지 말고 내가 시키는 일을 좀 해줄래?"
"뭔데요?"
"아무한테도 얘기해선 안돼. 그리고 누가 봐서도 안되고 말야."
"……?"
"잘못하면 네가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데……."
"할 수 있어요."
"정말이니?"
"그럼요."
그는 편지 몇 장과 메모철, 그리고 수첩을 꺼냈다.
"내 말 잘 들어. 시키는 그대로 해야 해."
"예!"
"네가 이따 점심밥 먹으러 내려가서말야…… 내 관물대를 봐. 내 칫솔 알지? 그 빨간 색…… 그게 있으면 이걸 그냥 가지고 있어. 만약 칫솔이 없으면 이건 다 태워버리고, 응, 알았지?"
"알겠어요."
"만약 칫솔이 없으면 내가 못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 내 개인 소지품…… 내복, 커피, 책, 네가 다 가져. 더블 백 밑에 보면 돈 3만원 있으니까 그것도 쓰고."
"무, 무슨 일이에요?"
"그동안 고마웠다. 넌 자신감만 가지면 뭐든 할 수 있는 친구야. 건강하게 잘 지내. 그리고 …… 들키면 안 된다, 응?"
끝이었다. 한 상병의 뒷모습은 그답지 않게 쓸쓸하고 작아보였다. 내려가 보니 칫솔은 보이지 않았다. 콧날이 시큰했다. 고참의 관물을 챙겨둔다는 핑계로 더블백을 열어보았다. 책과 커피와 돈, 내복. 영민은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것들을 한 상병의 더블백 속에 넣고 꽁꽁 묶어버렸다. 그러나 한 상병의 당부를 완수할 수는 없었다. 바로 제설작업을 나갔고 돌아오자마자 저녁 먹기 무섭게 근무투입 시간이 닥쳐왔기 때문이다. 영민은 수업과 편지를 자신의 백 속에 넣어 두고 메모철만 호주머니에 챙겼다. 어쩐지 그것이 제일 위험한 것 같아서 잠깐 화장실에 들러 태울 심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투입 직전의 화장실이 너무 붐벼서 그마저 여의치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쓰레기장에서 태워버려야겠다. 그는 근무호 앞에 거치해둔 소총 개머리판에 철모 끝을 얹고서 살며시 엎드렸다. 옷을 잔뜩 입었는데도 어디론가 한기가 스며들었다.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잠이 쏟아졌다. 아, 오늘 일과는 너무나 힘들었어. 다섯 시간 자고 8시에 기상해가지고 밥먹자 마자 한 상병님 대신 오전에는 대공초소 근무 섰지, 오후에는 제설작업 했지. 그리고 나서 곧장 여기로 왔으니까. 어제도 그랬어. 사단장인가 헬기 타고 이 위로 지나간다고 하루 종일 막사 바깥 청소하고 순찰로에 얼어붙은 눈을 야전삽으로 쪼아내느라고 옷이 흙투성이가 되었지. 한 상병님이 있으면 교대로 조금씩 잘 텐데…… 내일은 내가 물당번이니까 개울에서 취사장까지 50바께쓰나 날라야 돼. 오후에는 부식조 나가야 하고 총기 청소도 해야 할 텐데……어디선가 한 상병의 다정한 음성이 들렸다.
육군 정량은 7시간이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찾아먹어야 한다구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