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알 한다. 자알 해.”
충효는 눈을 떴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화다닥 판초를 걷고 일어섰다. 근무호 뒤쪽에 소대장이 쭈그리고 앉아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돌아보니 김영민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충효는 김 일병의 엉덩이를 뻥 찼다.
“이 자슥 이거…… 임마! 니까지 자믄 우짤끼고…… 아이구 이 새끼…… 미안합니다. 소대장님.”
그는 멋쩍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박 소위는 픽 웃고 있었다. 그는 소대장을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소대장님도 차암. 오시려면 인터폰이라도 좀 하셔야지요. 쪽팔리게…….”
“왜 안 했겠어? 내가 나오자마자 강 하사가 했겠지. 못 들었단 소리는 않구서, 쯧쯧.”
“어휴, 미치겠네. 저놈아 저거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걱정 마. 내가 어디 순찰 다니나? 자는 아들 깨워서 커피 먹이러 온 거지.”
따라온 김 일병이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따라주었다. 커피를 후룩후룩 마시면서 충효는 박 소위에게 물었다.
“뭐 좀 알아보셨입니꺼?”
“뭐?”
“한만수 말입니다.”
“글쎄?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 아까 지휘보고 할 때 물어봤는데 중대장도 모르더라구.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건지. 그렇지만 좋은 일이면 그렇게 쉬쉬하겠어?”
“혹시 지난번 대남방송에 대한 설문조사, 그거 잘못 쓴 거는 아입니까?”
“아니야. 그때 내가 대충 훑어봤었는데 별 이상이 없던걸?”
“그라모, 이 산꼴짝에서 무신 일이 있다고 데려갔겠입니꺼?”
“모르지…… 하긴 한만수 걔…… 이런 데서 썩기엔 아까운 놈이었지. 안 그래?”
“하기사…….”
“그건 그렇고, 어찌됐거나 그 때문에 국방부 시계가 더 빨리 갈 일은 없는 거 아니야? 이 병장도 말년에 몸조심하라구. 내가 봤기에 망정이지…… 군기교육대 체질 아니면 하나씩만 자야지.”
박 소위가 가자마자 충효는 김영민을 불러 세웠다. 소대장에게 약점을 잡혔으니 며칠 기죽어 지낼 수 밖에 없다. 대가를 치러줘야 되지 않겠어? 그는 김 일병을 노려보았다.
“야, 고문관!”
“옛!”
“철모 벗어!”
우선 한대 귀쌈을 올려붙였다.
“똑바로 서!”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묵직한 촉감. 역시 사람을 치는 건 이런 맛이다. 충효는 어둠 속에서 미소지었다.
“차렷.”
“열중 쉬엇.”
“찻, 열.”
“심어!”
좁은 근무호 한 켠에 원산폭격을 시켜놓고 충효는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온통 먹물을 풀어놓은 꼴이었다. 빌어먹을…… 말년에 재수 더럽군. 오늘은 되는 일이 없어. 신병 보충받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텐데. A급 근무 때마다 이 지랄 해야 하나? 강 하사 자식보고 교대로 서자고 할까? 하기야 거꾸로 매달아도 이젠 넉 달뿐이야. 국방부 시계는 이 시간에도 까딱없이 가니까 걱정할 건 없어.
충효는 가슴이 설레었다. 사단사령부의 그 넓은 연병장에서 전역 신고 마친 다음에 예비군 모자를 휘익 집어던지는 맛은 어떨까? 그 시간만 지나봐라. 장교고 나발이고 아무 눈치볼 일고 없다. 사회 나가서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나기만 하면…… 어이, 박형, 당신 현역 때 장교라고 병들 뺑뺑이 얼마나 돌렸나? 흐흣…… 새끼들. 현역이니까 내가 설레설레 알아서 기는 거지 늬네들이 별 볼이 있어서 그런 줄 알면 착각이야. 잘해보라고.
충효는 벌써 예비군복을 입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일만을 아니었다. 한만수처럼 돌아갈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이 들어갈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네에서 구멍가게만한 슈퍼마켓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하려면 차라리 공돌이가 되는 게 낫지 월급도 안 주는 좁쌀영감 밑으로 기어들어가진 않겠어. 친구 놈들도 이젠 대충 취직들을 했을 테니 그전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닐 수도 없고…… 제기랄, 머리나 좋게 나아주었으면 대학 가서 지금쯤 두꺼운 책이나 끼고 계집이나 낚으러 다닐 텐데 말야.
문득 여자의 살 냄새가 그리워졌다. 대구 바닥에서 이름 높은 자갈마당부터 휴가길에 들른 영등포 역전까지 그는 꽤나 여러 군데의 사창가를 섭렵했었다. 두 달 전에 포상휴가 다녀오는 길에는 마장동에도 들른 적이 있었다. 욕정은 끝없이 솟아나고 해결하는 데는 돈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데 있는 계집애들은 괜히 콧소리만 질러댔지 은근한 맛이 없었다. 돈 안 들이고 해결하려면 장가를 드는 수밖에 없는데 좁쌀영감이 덜컥 장가밑천을 대줄 리도 없고 보면 뭐빠지게 일하더라도 몇 년은 걸릴 것 같았다. 빌어먹을…… 사회에 나가서도 육군 병장만큼 편하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아예 사회에도 계급이 있어서 죽을 때까지 병장만 해먹었으면 좋겠다.
그는 끙끙 용을 쓰고 있는 김영민의 엉덩이를 슬쩍 걷어찼다. 모로 처박혔다가 헐레벌떡 일어나 다시 머리를 박는 영민을 보면서 그는 피식 웃어버렸다. 도대체 얘는 뭘 하면 잘하나? 벌써 반 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신병 때나 거기서 거기라니까. 안되는 놈이야. 패기도 없고 오갈 데 없는 고문관이지. 첨에 애인인지 동생인지 하는 계집애 사진을 안 보여주겠다고 버틸 때는 제법 물건인가 싶었는데 말이야. 용감해서가 아니라 뭘 몰랐을 때라서 그랬나? 이등병이라 재수 없다고 손을 안 봐줬더니 영 개판이라니까.
충효는 자신의 졸병 시절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모질고 악독한 고참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내가 일병 때만 해도 대단했었지. 요즘은 거기 비하면 너무 좋아진거야. 이틀이 멀다 하고 집합, 줄빳다, 요새 그랬다가는 당장 난리가 나지…… 내가 애들한테 한 건 당한 것에 비하면 반도 안 돼. 근데 날보고 악독하다느니 어쨌다느니 수군거리는 놈이 있으니 말도 안되는 일이야. 내가 그 정도도 안 했어봐. 일찌감치 개판이 되었을걸? 군대는 계급이고 질서 그 자체라구. 누구나 강제로 끌려온 군대고 하기 싫은 일뿐인데 그게 없어봐, 되는 일이 뭐가 있나? 요새 졸병 놈들이 꼭 그래. 고참 보고 아침에 인사를 제대로 하나, 배식할 때 건더기를 하나라도 더 뜨기를 하나? 이건 이등병이나 병장이나 위아래도 없어. 단 한만수놈 때문이야. 그 자식 때문에 잠깐 손을 놨더니 그렇게 변해버린 거야. 김영민이 같은 애가 왜 생겨? 쟨 이등병 때부터 조졌어야 해. 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내무반 정리 시켜놓으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군화 끝선 하나 못 맞추지, 톱질도 제대로 못하지. 깡다구도 없지…… 하긴 전투력 경연 대회 땐 그럭저럭 따라오기는 했는데, 그게 신통하단 말이야. 대대장이 하도 족쳐서 그랬나? 맞아! 소대에서 가만 내버려두는 바람에 저렇게 된 거야. 날 때부터 고문관은 아니라니까. 눈에 불이 번쩍 나게 뺑뺑이 돌리면 저런 애도 하루아침에 싹 달라진다구.
6
“넌 자신감만 가지면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친구야.”
영민은 이를 악물었다. 얼어붙은 땅바닥에 이마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고 허리가 끊어질 듯 저렸지만 그는 넘어지지 않았다. 난 해낼 수 있어. 이 병장 앞에선 엄살 부리고 싶지 않아.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장딴지에 있는 힘을 다 넣었다.
“군대일은 너나없이 힘들어해. 하지만 힘들다고 비굴해지면 정말로 개가 되고 말 거야. 드러나게 반항하지 않고 힘든 일 하면서도 생색내지 않고, 그리고 개인적인 안락함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지는 않는 사람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걸 알아둬. 장교든 고참이든 마찬가지야.”
영민은 항변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에요, 한 상병님. 정말 본의 아니게 깜빡했다구요. 돼지같이…… 이 병장이 저 혼자만 판초 쓰고 자는데 내가 깜박한 건 별로 죄될 것이 없잖아요. 그리고 난 이제 그리 약한 놈이 아니라구요. 난 알아요. 내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어떤 일이든지 스스로 할 수 있어요. 봐요. 지난번에 한 상병님 낙오할 뻔했을 때 말예요. 내가 한 상병님 총을 한참이나 들고 달렸다구요. 목에서부터 흐르는 땀이 코끝에 매달렸다. 속옷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영민은 사단 사령부로 넘어가는 도토리고개를 달리고 있었다. 13킬로그램이 넘는 군장이 등을 짓눌렀다. 물이 가득한 수통과 대검의 무게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께를 긁어댔다. 철모에 가리운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전투복 솔기 사이로 시큼한 땀내가 올라왔다. 장딴지가 팍팍하게 쥐가 날 것 처럼 저렸고 군장 끈과 소총 멜빵에 눌린 어깨는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5분 먼저 출발한 6대대 병력이 우쭐우쭐 코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남은 거리 4킬로, 현재 시간 34분!”
분대장의 구령은 경쾌했다. 이제 6대대를 따라잡고 고갯마루에만 올라서면 만점은 따놓은 당상이야. 영민은 신이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 상병의 호흡과 보폭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벌써 바로 앞에서 달리는 영민의 뒤꿈치를 두 번이나 밟았다. 그는 2열종대의 좌측 맨 뒤였는데 언제부턴지 줄곧 오른손으로 군장 아랫부분을 잡은 채 달리고 있었다. 왼손에는 소총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자세로는 상체를 전혀 쓸 수가 없을 터였다. 영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뒷모습을 보니 이충효도 꽤나 힘겨워 보였다. 그는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내려다보고 달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도토리고개이지만 결코 뛰어서 오르게 만만치는 않았다.
“자! 포상휴가가 보인다! 힘을 내!”
분대장의 음성을 들으면서 영민은 자신이 이처럼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만일 60분 안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면 이건 전화위복이야. 하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3주 동안이나 연습을 했는데 그럴 리는 없어. 마지막 연습 땐 59분 40초 밖에 걸리지 않았잖아? 분대장은 구령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숨이 가빠왔다. 이럴 땐 생각을 해야 된다. 영민은 누이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포상휴가만 나갈 수 있다면…… 첫 구보 때부터 세 번이나 낙오를 한 내가 구보를 잘해서 포상휴가를 간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한 상병님이 좀 이상해. 저럴 리가 없는데. 수요일 오후마다 대대본부에 내려가서 뛴 소대 단위 구보에서 내가 연속 세 번 낙오하고 나서 실컷 기합을 받은 후 밤늦게 올라왔을 때 내게 가르쳐준 이치를 스스로 못 지키다니? 그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구보가 선착순이니, 아니면 단체경기니?”
“단체경깁니다.”
“정말 그러니?”
“예.”
“그러니까 넌 낙오할 수밖에 없는 거야.”
“……?”
“구보는 말야…… 선착순이야. 그것도 가장 잔인한 선착순.”
“예?”
“생각해봐. 보통 선착순은 1등만 살고 나머진 다 죽는 게임이지? 근데 맨 꼴찌만 죽고 나머지는 다 사는 선착순이 있다고 해보자. 하나는 반드시 꼴찌를 하겠지?”
“예.”
“산 사람들이 꼴찌에게 뭐라고 하겠니?”
“병신 같은 놈…… 그러겠죠.”
“하지만 원망하진 않겠지?”
“고맙게 생각하겠죠.”
“그래, 그게 다른 점이야. 보통 선착순에서는 1등이 원망을 듣지. 저 새끼만 없으면 내가 살 텐데. 개새끼, 좆나게 잘 달리네. 이런 식으로 말야. 하지만 구보는 꼴찌 선착순과도 달라. 꼴찌는 경멸당하고 또 저주받고 원망 받고 하여튼 나쁜 건 다 그놈 탓이 되지. 왜냐? 그건 꼴찌 성적이 전체성적으로 되기 때문이야. 잔인하지?”
“예.”
“구보가 단체경기라는 건 저 높은 데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나 맞는 소리야. 직접 뛰는 우리에겐 정말 잔인한 선착순이지. 낙오하는 놈 혼자 죽는 선착순 말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우리 소대가 몇 명 뛰었니?”
“30명이요.”
“선착순 하면 29등 할 자신 있니?”
“예. 29등이라면…….”
“그런데 넌 왜 맨날 제일 먼저 낙오하기 시작하지?”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넌 강박관념 때문에 낙오하는 거야. 스스로 못 뛴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은 다 너보다 잘 달리는 것 같고. 잘 달리는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첨부터 주눅이 드는 거지. 하지만 완전군장을 하고 10km를 달리는 동안 낙오하고 싶은 유혹에 한 번이라도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없어. 당장은 편하게 될 테니까 말야. 낙오는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어. 아무도 낙오하지 않으면 속도가 점점 빨라지니까 제일 못 달리는 사람이 반드시 낙오를 하게 돼. 그러면 나머지는 한숨 돌리는 거야. 갤 끌고가려면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으니까. 속으로는 고맙지.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낙오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거야. 말하자면 누구나가 다 남이 낙오하기를 바라면서 달리는 것이지.”
“그래요. 하지만…….”
“넌 잘 달리려고 하면 안돼. 29등을 목표로 달리란 말야. 하나가 낙오하면 그 다음엔 28등을 목표로 하고. 어때? 29등이나 28등은 할 수 있겠어?”
“예. 그 정도라면…….”
“됐어. 그럼 넌 낙오를 안하게 될 거야.”
“근데 한 상병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달려요?”
“잘 달리긴? 난 늘 꼴찌에서 두 번째를 목표로 잡고 달렸을 뿐이야. 꼴찌선착순에서 이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바로 그것이니까.”
영민은 8등을 목표로 달리고 있었다. 사단사령부에서 나온 시험관들이 하필 영민이 속한 분대에 동그라미를 그렸을 때 운명은 결정되었다. 분대장과 나머지 일곱 명의 고참들 모두가 적이 된 것이다. 3주 동안 구보 연습을 하면서 영민은 한 번도 8등을 놓치지 않았다. 만약 오늘 9등을 하면 대대의 불명예가 모두 내 탓이 된다. 영민은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그런데 잘못하면 한 상병님이 9등을 하게 생겼으니……. 갑자기 뒤가 허전했다.
한 상병이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굽히고 서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에 군장이 삐딱하게 매달려 있었다. 오른쪽 어깨끈이 끊어진 것이다.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졌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분대장이 한 상병의 소총을 빼앗았다. 영민은 그의 철모를 받아들었다. 한 상병은 군장을 어깨 위에 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대오는 흐트러지고 자신감은 땅에 떨어졌다. 코앞에 보이던 6대대 병력이 고개 너머로 사라졌다. 다행히 고갯마루부터 사령부까지는 완만한 내리막과 평지뿐이어서 한 상병은 낙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완전히 풀린 낙오병 하나를 밀고 끌고 가는 6대대 병력의 발뒤꿈치를 밟다시피 사령부 테니스 코트에 들어섰을 때 시험관들은 영민의 등을 탁치면서 스톱워치를 눌렀다. 영민네는 한 덩어리가 되어 쓰러져 누웠다.
60분 24초. 한 상병의 등 뒤에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그는 테니스장 화장실 쪽으로 군장을 들고 사라졌다. 사단 직할의 수색대대를 포함해서 17개 대대 중 2등이었다. 1개 대대에서 1개 분대씩 무작위 추출된 선수들이라 다 마찬가지로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중대장의 위로를 뒤로 하고 영민은 한 상병을 찾아보았다.
그는 양지쪽에 앉아서 군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2등이래요. 군장만 끊어지지 않았어도…….”
한 상병은 맥 빠진 웃음을 지으며 영민에게로 군장을 던졌다.
“봐!”
영민은 눈을 의심했다. 끊어진 군장 끝의 안쪽 면이 깔끔하게 잘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군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서서히 끊어져 나간 것임에 분명했다.
“아니! 누가 이런 짓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왜요?”
“말할 필요가 없어. 남을 흙탕물에 밀어 넣다가는 자기 옷까지 버리게 되는 법이니까 말야.”
“무슨 소리에요?”
“곧 알게 될 거야. 범인은 우리 가운데 있어.”
“설마?”
“설마가 아니야. 포상휴가는 1주일뿐이지만 남은 군대생활은 6개월이니까, 6개월을 편하게 지내는 쪽을 택 하는게 당연하지 않아?”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기울어가는 가을 햇살이 그의 흰 얼굴에 쏟아졌다.
그는 예언자처럼 말했다.
“대가를 받게 될 거야, 반드시.”
정말 금방 대가를 받았다. 화풀이주 겸 위로주 겸 인솔 나온 박 소위가 사준 막걸리를 몇 잔 걸치고 대대본부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대대장의 불호령을 맞은 것이다. 산악의 가을밤은 이미 차가웠다. 영민은 이른다 ‘빤빠물포’의 진수를 맛보아야 했다. 돌밭 같은 대대 연병장. 빤쓰 바람의 아홉 사나이는 개처럼 뒹굴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낮은 포복 앞으로, 높은 포복 앞으로! 뒤로 취침, 철조망 통과 앞으로! 짠밥 찌꺼기가 심심찮게 떠다니는 개울에서 물 포복을 하면서 영민은 무궁화 두 개의 위력을 절감했다. 대대장은 술이 취해 있었다.
“군대에서 2등은 필요없어! 이 자식들…… 무얼 잘했다고 술까지 처먹고 들어와? 나 같으면 임마, 사령부서부터 낮은 포복으로 기어들어왔을 거야! 정신상태가 그 모양이니까 2등밖에 못한 것 아니야?
역시 너희 놈들은 대접해주면 안되는 놈들이야! 그저 개돼지 다루는 것같이 차고 때리고 해야 돼! 이 자식들아, 한 달 가까이 비오큐에서 재우고 쌀밥에 기름끼 멕였으면 뭔가 보답이 있어야 될 거 아니야? 배때기에 비계가 꼈어! 내가 그걸 다 빼줄 테다. 알았나?
뭐하는 거야? 너희 놈들 목욕하라고 물속에 처박은 줄 알아? 포복 앞으로! 어이, 당번! 바께스 가지고 와. 너희들은 철조망 통과!“
돌아눕자 밤하늘이 흔들리고 있었다. 개울물과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눈을 쓱 닦았다. 맑은 가을 밤, 화사한 별무더기가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대대장 당번이 바께쓰로 벗은 몸 위에 시린 개울물을 퍼부었다. 그때 누군가가 울부짖었다.
“어머니이!”
성한 데 없이 긁히고 벗겨지고 멍든 몸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영민은 밤새워 필기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두 시간이나 화풀이를 한 대대장은 사격과 필기시험마저 제대로 못 해낼 경우에는 모조리 영창을 보내버리겠노라고 으르릉댔다. 상병놈이 군장 하나 제대로 준비 못했다고 이충효는 한 상병을 불러냈다. 눈두덩이 시퍼래서 돌아온 한 상병은 밤새 필기시험 교관 노릇을 했다. 보람이 있어선지 이틀 뒤에 있은 사격과 필기시험에서도 각각 2등을 한 영민의 부대는 결국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영창을 보내겠다던 대대장은 어렵게 구해왔노라고 생색까지 내면서 걸쭉한 밀조 막걸리로 회식을 열어주었다. 취사병들이 사병 부식으로 나온 돼지고기를 몇 덩이 삶아왔다.
“그날은 많이들 아팠지? 허허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 응, 남은 과목 잘하도록 내가 용병술을 쓴 거야. 결국 이겼잖아? 난 이길 줄 알았어. 이 막걸리 좋지? 내가 그날 밤에 미리 이야기를 해서 준비시킨 거라니까, 하하하…….”
한 상병은 술을 억병으로 마셨다. 그러나 한마디도 입을 떼지 않았다. 며칠 뒤 분대장과 이충효는 사단장 표창을 받고 일주일 포상휴가를 다녀왔다. 한 상병은 소대원들의 동정을 받았다. 영민은 군장에 칼질을 한 것이 이충효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증거가 없었다. 어쩌면 철책 투입 전의 그 반란이 한 상병에게는 이충효에 대하 개인적인 응징일 수도 있었다.
잔뜩 피가 몰렸는지 머리가 우지끈거리고 귀에서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영민은 뒤로 맞잡은 손을 풀러 눈으로 흘러드는 땀을 훔쳐냈다. 힘들지 않아요. 그날 도토리고개 위를 달릴 때의 한 상병님 만큼은요…… 어지러웠다. 근무호가 빙긍빙글 돌아갔다. 그때 이충효의 음성이 아련하게 밀려왔다.
“그 자식…… 꽤 오래 버티네? 음, 좋았어. 군기 들면 안되는 일이 없다니까…… 그만 일어서!”
영민은 모로 쓰러졌다. 근무호의 지붕이 바람에 술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