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충효는 52번 투광등을 정조준했다. 장갑을 벗고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가슴속이 서늘해왔다. 감았던 왼쪽 눈을 떴다. 가늠자 구멍 안에 들어와 있던 투광등이 밖으로 비껴나갔다. 다시 눈을 감았다. 투광등은 그대로 가늠쇠 끝에 얹혀 있었다. 저것이 간첩의 머리통이라면…… 빌어묵을 놈의 간첩이 왜 안 오나? 몇 사단이라고 했지?…… 간첩이 넘어왔는데도 그걸 못 잡고 말았다고……병신들……제발 나한테만 걸려들어라, 틀림없이 죽여줄 테니까.
간첩을 잡는다는 것은 일종의 신화였다. 그런 일은 이야기 속에서만 있었다. 언젠가 한강 어귀에서 간첩을 사살한 일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지만 동부전선은 사정이 달랐다. 곳곳의 지뢰밭. 한 뼘의 빈 곳도 없는 철책. 험악하기 짝이 없는 지형, 추위, 도무지 파고들 여지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철책선은 태평성대였다. 오발사고를 빼면 사건이라고는 없었다. 그곳은 전선이 아니라 후방에서 받는 2년 동안의 힘겨운 훈련으로 지친 몸을 달래는 휴식처였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는 곳. 높은 사람 행차나 주책없이 쏟아지는 눈 때문에 정규 취침시간을 빼앗겨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밤에 근무호에서 자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도 하나만 확실히 깨어 있으면 순찰장교도 겁나지 않았다. 더욱이 상급부대 순찰대가 지나가면 인터폰으로 미리 연락이 오니까.
와야 잡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충효는 허리를 펴고 내다보았다. 좌우로 늘어선 투광등은 끝이 없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아놓은 꼬마전구처럼 어둠 속의 투광등 행렬은 아름다웠다. 검바우산의 북쪽 비탈을 가로지르는 불의 행렬은 멀리 어둠 한가운데서 갑자기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우리 충효가 군에 가더니 정말 사람이 되었는갑다.”
국민학교 다닐 때 가끔씩 개근상을 타온 외에 상이라고는 받아본 일이 없는 그가 사단장 표창을 받아 포상휴가를 갔을 때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이름을 잘 붙여주었지만 사실 충효는 애물단지일 뿐이었다. 군대 와서 3년 썩으니까 충성은 남들만큼 했는지 모르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효도라 할 만한 일을 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흐흣…… 뭐 잘난 게 있어야 남들보다 충성도 더 하고 효도도 하지…… 간첩이나 한 마리 오면 또 몰라. 하지만 내 복에 그런 행운이 오겠어? 간첩만 한 마리 잡아보지…… 사단장 표창? 흥, 대통령 표창인들 못 받을까? 게다가 상금을 5천만 원이나 받지, 헬기 타고 휴가가지, 사회에 나가서 출세하지…… 하여튼 끝내주는 인생일 텐데 말이야. 그는 1번 크레모아 잭을 지그시 눌러보았다. 나무쐐기로 안전장치를 해놓은 탓으로 잭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하긴…… 알 게 뭐야. 몇 십 년 동안이나 한 번도 눌러보지 않고 인수인계만 되었을 텐데…… 이게 터지기나 할는지? 그는 빳빳이 서서 앞만 보고 있는 김영민을 불렀다.
“저기 1번 접근로에 간첩이 오고 있다. 그라모 니 우짤래?”
“누르고 던지고 쏩니다.”
“뭘?”
“우선 1번 크레모아 잭을 누르고, 그 다음에 수류탄을 던지고…… 그리고 소총으로…….”
“이 짜슥아 이거, 말하는 거 보래이. 그거는 교과서에나 있는기고, 임마. 니 만약에 크레모아가 안 터지믄 우짤끼고?”
“안 터질 리가 있겠습니까?”
“안 터질 수도 있다카이! 누가 눌러보기나 했는줄 아나? 그냥 인수인계 받은기라. 그라이 첨부터 크레모아 누르면 안되는기라.”
“그러면요?”
“잘 보래이. 이 고참이 한수 가르치줄 테니까 저눔아들 오면 보통 몇 인조고?”
“3인좁니다.”
“그래. 3인조 아이가. 그라모 젤 앞에 오는 놈이 철책을 몰래 끊을라카믄 여하튼간에 거기 들어붙어야 될 거 아이가? 다른 놈들은 몇 미터 뒤에 숨어 있겠제? 그라모 얼매나 좋노? 철책에 붙은 놈을 소총 가지고 딱 조준해가지고 단발로 맞추는기라. 그눔아는 뒤질끼고 딴놈은 놀래가 튀겠제? 그때 여유만만하게 크레모아를 타앙 터치는기라. 후폭풍이 여까지 오니까 따악 엎드려서 수류탄 안전핀 뽑아서 휙 던지고…… 그담에 자동으로 놓고 소총을 드르륵 긁어주는 거야. 그라믄 어째 되노? 예광탄이 짝 나가니까. 총알이 어데로 날아가는지 옆 초소에서 보겠제? 그라모 조 위에 대공초소에서 기관총으로 끝내 주는 거지. 살아 도망갈 놈이 어딨노?”
“…….”
“알겠나? 그래만 하모 니는 스타 되는기라, 스타. 상금 타고…… 제대하고 사회에 나가도 팔자 핀다. 강연회나 슬슬 댕기모 끝나는기라.”
“알겠습니다.”
“그라모 순서가 우째 되노?”
“쏘고 누르고 던지고…… 그리고 다시 쏜다…….”
“맞다! 누가 와서 물어보믄 누르고 던지고 쏜다. 그렇게 대답한다 해도 진짜로 간첩이 나타나모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예…….”
“내가 누구냐?”
“예, 소대 왕고참님이십니다.”
“그런데”
“예?”
“이 왕고참이 쫄따구 쏘위한테 쫑코 묵어서 되겠나 안되겠나?”
“죄송합니다.
“니는 내한테 찍힜다, 아나?”
“예, 압니다.”
“반성할 기회를 주까?”
“예.”
“믿어도 될까?”
“됩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정말이야?”
“정말입니다.”
“좋았어. 소대장은 저 밑에 소초에서 선임하사하고 바둑 두고 있을끼고…… 대대 순찰조 오나, 그거나 잘 봐라.”
충효는 다시 판초를 뒤집어썼다.
8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았다. 영민은 52번 투광등을 건너다보았다. 이제 달이 뜨기는 어차피 틀린 일이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째서 그동안 편지가 없었을까? 회사를 옮긴 걸까? 그렇다면 영철이라도 연락을 했을 텐데…… 하기야 내가 집안 소식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야 없지. 못난 아들, 못난 오빠니까……. 아버지는 요즈음도 맨날 동네 복덕방에 나가서 화투구경으로 소일하고 계시겠지? 그놈의 부두 하역 일이란 게…… 아버지 허리를 다친 후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버렸어. 그전엔 그렇게 활달하고 무섭기까지 하던 분이 갑자기 노인처럼 변했으니까. 어머닌 여전히 새벽 4시에 물건 받으러 나가실 거야. 영희가 아침밥 해서 영철이 학교 보내고 출근하자면…… 또 코피가 자주 터지는 건 아닐까? 바보같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난 어떤 일도 잘해낸 것이 없어. 차라리 공고나 상고를 갔더라면 좋았을걸. 까짓 재미도 없는 인문계 학교를 다녀설랑…… 차라리 공부 잘하는 영희를 고등학교 진학시킬 생각으로 일찌감치 공장에나 갔어야 했어.
영민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대할 때까지의 반년을 허송한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노가다 몇 번 따라다닌 외에 별로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기술이든 익혀두어쓰면 특수병과를 ?을 수가 있었을 터이고, 그랬으면 군에서 기술을 좀더 닦아서 제대하면 취직도 수월할 것을……. 그는 몇 번이나 그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멍청하게 서서 북한 땅이나 구경하다 제대하는 수밖에.
편지를 얼른 읽어야지. 그리고 밤새 답장을 생각해두었다가 철수하면 곧바로 써서 보내야지. 뭐라고 할까? 그는 이 병장을 돌아보았다. 아직 깊이 잠든 것 같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고 내려가서 볼까? 아니야, 싫다. 그저 여자라면 좆집이니 깔판이니 하는 말밖에 모르는 인간에게 소중한 편지를 보여줄 순 없어. 그는 잠시만 더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새 답장이나 생각해두어야겠다. 뭐라고 쓸까? 옳지, 그 이야길 써야겠다.
영희야.
오빠는 굉장히 어른이 되었단다. 봄에 만나면 아마 놀랄 거야. 오빠가 칠칠치를 못해서 너는 걱정을 하겠지만 염려 말아라. 난 아주 잘 하고 있으니까.
이젠 뭐든지 자신이 있어. 지난번에 우리 분대가 사격이랑 구보랑 해가지고 사단에서 일등했는데 나도 한몫을 했다. 그때 잘하면 포상 휴가 나갈 뻔했단다. 나 제대하면 용접이나 뭐 그런 기술 배울 거다. 우리 내무반엔 별 사람이 다 있어. 미장이, 용접공, 재단사 하다가 온 사람도 있다. 이야기 들어보니까 기술만 좋으면 월급도 제법 많이 받는데. 너무너무 멋진 고참이 있는데, 한 상병이라고,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 사람도 나보고 프레스나 용접을 배우라고 그래.
미안하다, 영희야.
내가 제대할 때까지만 좀 참으면 될 거야. 오빠가 철이 없어서 네가 너무 속상했을 거야. 난 이제야 그걸 알았단다.
거기까지 썼다고 생각하니 영민은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이 병장을 돌아보았다. 그는 꼼짝 않고 있었다.
“이 병장님, 이 병장님”
영민은 목소리를 낮추어 불러보았다. 작지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됐다! 영민은 조용히 소총을 집어들고 근무 호를 빠져나왔다. 양쪽의 스피커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 주위는 적막했다. 우수수 갈대가 흔들렸다. 일렬로 늘어선 투광대의 행렬은 저 멀리 어둠 한가운데서 끝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 같았다. 영민은 얼어붙은 계단을 조심스레 밟으며 순찰로에 내려섰다. 뒤를 돌아보았다. 이 병장은 계속 자고 있음이 분명했다. 1727번 지주를 한 손으로 잡고 영민은 투광등을 쳐다보았다. 손바닥 위에 불빛이 떨어졌다. 조금 어둡다 싶었다. 바로 아래에 가야겠구나. 그는 발을 내디뎠다. 순간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어둠의 절벽. 불이 나가버린 것이다. 영민은 아래로 쭉 미끄러졌다. 가슴 밑바닥이 우르르 무너졌다. 소총이 떨어졌다. 그는 1726번 지주를 잡고 일어섰다. 근무호를 돌아보았다. 인기척이 없었다. 영민은 한동안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어떡할까? 다시 올라가서 인터폰으로 보고를 하고 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까? 그러다가 오늘밤에 편지를 못 읽게 되면? 그는 망설였다. 그래, 기다려보자. 이러다가 저절로 불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영민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긴 시간이 흘렀다. 아니, 그에게 그렇게 느껴졌을 뿐 사실은 잠깐이었는지도 모른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불은 들어오지 않는다. 철책 가운데를 가로지른 중단철주를 밟고 서서 전구를 매만지던 한 상병의 모습이 생각났다. 만약 필라멘트가 나가버렸으면 어떡하지?…… 아냐, 그렇진 않을 거야. 한 번 만져주기만 하면 될 텐데……
그는 왼손에 쥐고 있던 소총을 순찰로 나무계단에 살짝 걸쳐놓았다. 방한모와 철모를 벗었다. 방한장갑도 벗었다. 실장갑만 낀 손으로 지주를 만져보았다. 희미하게 냉기가 느껴졌다. 그는 양손으로 1726번 지주를 힘껏 쥐고 오른발을 중단철주 위에 올려놓았다. 새벽에 속이 쓰리면 먹으려고 방한복 내피 호주머니에 이 병장 것까지 두 봉지 넣어둔 전투식량이 허벅지와 배를 눌렀다. 그러나 방한복을 벗는 것은 너무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는 다리에 힘을 넣었다. 꺽쇠와 철조망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는 왼손으로 꺽쇠를 잡고 오른손을 뻗었다. 손끝에 갓이 와 닿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얼굴에서는 후끈후끈 열이 났다. 계곡에 습기 가득한 찬바람이 불었다. 왜 전구가 손에 닿지 않을까? 그는 발끝에 힘을 주고 한껏 팔을 뻗었다. 손가락 끝에 둥글고 매끄러운 것이 와 닿았다. 전구다! 가슴속에서 희열이 솟아났다. 그러나 전구가 잡히지 않았다. 그제서야 영민은 자신의 키가 한 상병보다 훨씬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될 거야…….
그때 아래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지? 총이 미끄러졌나? 그는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아! 경보석이 떨어졌구나! 중단철주 위에 포개어놓고 바깥쪽에 페인트로 새로 줄을 그어놓은 세 개의 납작한 돌멩이. 그것은 철책 침투를 발견하기 쉽게끔 설치해둔 보조경보장치였다. 영민은 조급해졌다. 빨리 일을 마치고 제자리에 올려놓아야지. 순찰차가 보면 난리를 칠거야. 그는 다시 전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9
충효는 눈을 떴다. 무슨 꿈을 꾼 것 같았다. 신나는 꿈같기도 하고 악몽 같기도 하고……. 그는 고개를 휘휘 저어보았다. 몸이 뻣뻣하게 굳은 데다 와들와들 떨리기까지 했다. 내가 지금 잠을 깬 건가, 아직도 꿈을 꾸는 건가? 무슨 소리가 났는데……. 그는 천천히 전방을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투광등 때문에 제법 훤하던 왼쪽 계곡마저도 마냥 껌껌하기만 했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간첩이다! 그는 반사적으로 소총을 움켜잡았다. 마음대로 상상하지 마라. 그는 야간 경계수칙을 떠올리고 눈을 크게 떴다. 시커먼 그림자가 철책을 넘어오고 있었다. 간첩이다! 그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가늠자의 야광테 가운데로 그림자가 빨려 들어왔다.
타앙 ―
총성이 정적을 뒤흔들었다.
탕, 타앙 ―
가늠자 안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충효는 소총의 안전장치 레버를 오른손 엄지로 힘껏 밀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소총이 좌우로 요동쳤다. 탄창 속에 남아 있던 열일곱 발의 실탄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갔다. 섞여 있던 몇 발의 예광탄이 어둠을 둘로 갈라놓았다. 그는 1번 크레모아 잭의 나무쐐기를 빼내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손이 떨렸다.
콰앙 ―
불꽃과 굉음이 어둠을 찢어발겼다. 흙덩이가 후두둑 날아들었다. 그는 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순간,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영민! 야, 영민아! 이 새끼 어디 갔지? 야 임마!”
그는 벌떡 일어섰다.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굉음이 일대를 뒤흔들고 있었다. 인접 초소의 모든 화기가 왼편 계곡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예광탄이 그리는 붉은 선들이 뒤엉켜 화려한 죽음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영민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순찰로 계단의 나무 말뚝이 등을 찔렀다. 그는 철책의 쇠 그물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버린 듯 허전했다.
52번 투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영민은 미소지었다.
저것 봐. 달이 떴네. 이젠 편지를 읽어야지…… 그런데 무슨 불꽃놀이일까?
유탄 하나가 투광등을 박살냈다.
영민은 눈을 크게 떴다.
부릅뜬 그의 눈 속에서 달이 졌다. <끝>(200X211)